명언집

121주 명언121-130

ria530 2012. 12. 3. 10:42

121주 명언 : 내면적 덕성(德性)의 가치가 중심 되는 건강한 가치관을 되새겨 봅니다.[금주 명언] - 流水之爲物也不盈科不行이니라[독음] - 유수지위물야, 불영과 불행.[한자] - 흐를 류/ 물 수/ 어조사 지/ 할 위/ 성질 물/ 아니 불/ 찰 영/ 웅덩이 과/ 아니 불/ 갈 행[출전] - 孟子(맹자)』〈盡心章句上(진심장구상)[해석] - 흐르는 물의 성질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나아가지 않는다..[어구풀이] 流水之爲物也(유수지위물야) : 흐르는 물의 성질이라는 뜻으로, 순리(順理)를 어기지 않는 물의 성질에서 본질적인 인간 윤리의 도덕적 가치를 비유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은 여기서 본질, 성질 등의 의미]不盈科 不行(불영과 불행) :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감싸는 수용의 개념과 모든 것을 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갖춤의 개념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설] - 盈科而後進(영과이후진) 고사는 동양 철학 대부분의 사상들이 항상 진리의 본질에 근접한 순수함으로 표현하는 ''의 본질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바로 금주에 제시된 명언이 출전이 된 고사로 물의 성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를 유가가 지향하는 도덕적 군자(君子)의 덕성과 실천력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순리(順理)를 거역하는 법이 없는 물의 성질에게서 배우고 본받아야 할 가치는 무엇보다 강한 포용력입니다. 그렇기에 도가(道家)의 노자(老子) 역시 "최상의 선의 가치는 물과 같다. 물은 모든 만물의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대중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도()에 가깝다" [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노자]고 했습니다.학문과 덕성을 모두 갖춘 도덕적 군자의 가치가 도덕적 가치를 체득하고 성취하는 여부에 따라 외면적으로 발휘하는 수준의 차이를 나타나게 한다고 할 정도로 무엇보다 참된 정의의 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갖추는 길이 자기 수양의 근본이 된다는 맹자(孟子)의 주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거나 흐름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일이 벌어지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도도히 흐르는 중심 줄기는 인위적 힘이 거역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혹 인위적인 힘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벌어지는 피해는 역시 인위적 힘으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특히 현대의 발달된 문명의 힘으로 거대한 대하(大河)도 움직일 수 있다는 식의 섣부른 오판이 가져다 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의 초래를 되새기거나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결국 인간 덕성(德性)의 바른 가치를 회복하고 실천하는 길은 곧 올바른 학문 수양의 지침과 자세가 되기에 충분하며, 그러한 학문과 덕성의 균형잡힌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 시대를 이끌고 갈 올바른 인간형이 아닐까 합니다.감사합니다..

 

122주 명언 : 내면적 자기 수양의 덕성(德性)을 쌓는 계기를 마련해 봅니다.[금주 명언] - 無聽之以耳하고 而聽之以心하라.[독음] - 무청지이이, 이청지이심.[한자] - 없을 무/ 들을 청/ 어조사 지/ 써 이/ 귀 이// 말이을 이/ 들을 청/ 어조사 지/ 써 이/ 마음 심[출전] - 莊子(장자)』〈人間世篇(인간세편)[해석] -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어구풀이] 無聽之以耳(무청지이이) : 귀로 듣지 말라는 뜻으로, 외물(外物)에 현혹되어 움직이기 쉬운 청각 같은 감각에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진정한 내적인 수양의 가치는 외물에 움직이기 쉬운 감각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而聽之以心(이청지이심) : 마음으로써 듣는다는 뜻으로, 객체로서의 인간 주체를 대변할 수 있는 주체적인 마음으로 인식하라는 의미인데,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얻는 출발은 인간 주체의 핵심인 마음을 깨끗이 하는 수양의 방법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해설] - 내적인 자기수양을 통해 바른 덕()을 쌓아나가는 길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항상 기본적인 심신수양의 가치 덕목입니다. 특히 속세의 차별과 시비(是非), 불평등으로부터 탈피하거나 극복하라고 역설하는 도가(道家)의 가치에서는 무엇보다 인간 주체의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무욕(無慾)과 초월의 수양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는데, 바로 이러한 점을 금주의 명언이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네 마음을 집중 통일해서 물사(物事)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을 것이며,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를 통해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며 마음은 인상을 받아들일 뿐이지만, 기라는 것은 공허한 것으로서 모든 대상에 대응할 수 있다. 도는 이 공허한 속에서 달성된다. 정신의 공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심재'이다 "[ 若一志, 無聽之以耳, 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 而聽之以氣, 聽止於耳,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齋也.莊子·人間世]무념무사(無念無私)의 참된 수양의 가치를 얻기 위해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부단한 자기 노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한의 세계 속에서 차별과 불평등이 난무하는 속세를 초월하는 수양의 과정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영역에서도 그 적용이나 대처가 크게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삶의 역정이나 현실 인식을 되새이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이런 名言이 지닌 가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특히 우리 사회가 지닌 병폐 가운데 지나친 자기 과시나 맹목적 타인 추종 등 일류지향이나 출세주의에 빠진 천박한 세태를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明鏡止水(명경지수)와 같은 심성의 회복을 위해서 말입니다.감사합니다.

 

123주 명언 :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건강한 사회 규범을 되새겨 봅니다.[금주 명언] - 人而不仁이면 如禮何, 人而不仁이면 如樂何.[독음] -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악하.[한자] - 사람 인/ 말이을 이/ 아니 불/ 어질 인/ 같을 여/ 예절 례/ 어찌 하// 사람 인/ 말이을 이/ 아니 불/ 어질 인/ 같을 여/ 음악 악/ 어찌 하[출전] - 論語(논어)』〈八佾篇(팔일편)[해석] - 사람이면서 어질지 않으면 예를 무엇하며, 사람이면서 어질지 않으면 음악을 무엇하리오?[어구풀이] 人而不仁 如禮何(인이불인 여례하) : 사람이면서 어질지 못하면 예를 무엇하리오라는 뜻으로, 인간 본연의 가치를 체득하지 못한 사람에게 외형적인 치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하고 있다. 결국 진정한 인간 도리의 완성을 이루려는 노력이 그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음 구절[ 如樂何 ]까지 재차 강조하고 있는 의미입니다.[해설] - 名分(명분)實利(실리)의 조화로운 추구는 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사람들의 이상 속에 話頭(화두)로 등장하는 주된 관심의 대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 시대 思潮(사조)의 흐름을 가늠하고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방향타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名實相符(명실상부)한 결과를 만들기 위한 많은 시행착오와 끊임없는 노력들은 우리 주변과 우리 역사 속에서 되새길 수 있는 우리들의 소중한 정신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명분과 실리가 부딪치는 상황이 연출될 때 우리의 과거는 대부분 명분에 집착해온 측면이 있어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명분마저 망각할 때 발생하는 원칙과 정당성의 상실을 염려하는 차원에서는 일면 일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균형 잡힌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언제나 작은 성과마저 잃는 계기가 되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지나친 실리 추구의 몰인정과 비인간이 아니라면 언제나 두 가지의 상반된 논리가 서로 상충되지 않고 조화의 과정과 승화의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야 함은 당연할 것입니다.개인적 차원의 노력과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외면하는 사회란 없지만, 개개인의 속성들이 전체의 사회 구성체를 만들어 나가는 방향에서는 최소한의 구심점이나 접점이 있어야 하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건전한 사회 규범의 정착과 건강한 사회 정의의 실천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병폐들을 바로잡는 계기로 작용함과 동시에 보다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 풍토를 만들어 나가는 초석이 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금주의 명언이 제시하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 가치의 완성에 대한 논의는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바른 인간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가치로 작용했습니다. 자기 수양의 기본 가치가 사회 규범 속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고, 인격의 완성체로서의 진정한 자아의 실현이 최우선의 가치 덕목으로 규정되던 과거 전통사회의 속성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 본연적 속성과 실천적 가치는 높이 평가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외형과 결과만이 중시되고 치중하는 현대 우리사회의 단면을 바라보면 전통사회가 지녀온 최소한의 건강한 가치 척도를 바르게 인식하고 계승하는 작업 역시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라 할 것입니다." 예절은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장례는 화려하게 치장하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 [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同篇> ]윗 구절 역시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함을 되새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가치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고 실천과 가치가 바로 선 그런 모습의 아름다운 사회를 추구해야 합니다. 인간 본연의 바른 가치가 우선되는 가치 중심이 맹목적 집단으로부터 본연의 인간으로 회복되어 소외와 불평등이 해소된 그런 사회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맹목적 집단 숭배의 탈을 벗고 본연적 인간 가치의 바탕이 제대로 실현되는 그런 사회라야 우리들의 아름다운 인간 가치가 실현되는 따뜻한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만연된 폭력의 미화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길이고 추악한 야만의 전쟁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24주 명언 : 학문적 완성의 추구는 곧 인간성의 완성이어야 함을 되새겨 봅니다.[금주 명언] - 博學而詳說之將以反說約也이니라.[독음] - 박학이상설지 장이반설약야.[한자] - 넓을 박/ 배울 학/ 말이을 이/ 상세한 상/ 말씀 설/ 어조사 지// 장차 장/ 써 이/ 돌이킬 반/ 말씀 설/ 간략할 약/ 어조사 야[출전] - 孟子(맹자)』〈離婁章句下(이루장구하)[해석] - 널리 배우고 상세하게 말하는 것은 장차 돌이켜 간략하게 말하기 위해서이다[어구풀이] 博學而詳說之(박학이상설지) : 널리 배우고 상세하게 말한다는 뜻으로, 일반적인 학습을 통한 배움의 정진(精進)을 말하는 것인데, 통속적으로 무조건 많은 학습과 많은 연구를 하는 이유가 사회적 성공과 성취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맹목적 자기 과시를 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博學多識(박학다식)한 학문 성취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將以反說約也(장이반설약야) : 장차 돌이켜 간략하게 말하려는 것이라는 뜻으로, 진정한 학문적 수양의 완성은 본질적인 자기 성찰로 인간 본연의 도리를 꿰뚫어 체득하기 위함으로 의미를 제시한 것입니다. 곧 인간성을 발로를 회복하고 확인하는 길이 진정한 학문 수양 및 인격 수양의 조화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할 것입니다.[해설] - 학문 연마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될 때마다 항상 그 본질적 가치와 현실적 이해가 상충하는 모습을 흔히 보아옵니다.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법관이 되었다는 말이나 국민 건강을 위해 의사의 사명감을 다하겠다는 말이 지닌 가치가 지닌 지고지순(至高至純)함을 어느 누구도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법관이나 의사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기준이 이러한 순수한 가치가 아닌 사회적 신분상승의 전형적 표본이나 부와 명예를 일시에 획득하는 확실한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는 현실입니다.그럼으로 인해 이러한 부와 명예를 획득하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맹목적이리만큼 엄혹한 경쟁논리만이 횡행하는 삭막한 상황만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어린 학생들이 내몰린 현실은 공동체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여건은 사라지고 피아(彼我)의 전쟁 속에서 무조건 고지를 점령해야만 한다는 식의 암담한 현실만이 존재하게 된 형편일 것입니다. 시 한 편에 심취하면서 삶의 가치와 인생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 여유와 본연의 역할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 출발은 역시 바른 가치관과 건강한 사회적 인식의 회복이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금주의 명언이 제시하고 있는 본질적 가치가 바로 이러한 왜곡된 사회 현실을 바로잡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맹자의 이러한 주장을 우리의 현대사회가 제대로 되새겨야 합니다. 자기 과시와 맹목적 신분상승을 위해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 연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가치와 진리를 체득함으로 인해 바른 인간성을 회복하고 그러한 바른 가치관이 우리들의 생활과 사회 속에 뿌리내리고 활용되기 위해서 배움의 정진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 정의의 바른 가치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주위를 돌아볼 것도 없이 우리 자신부터 지나치리만큼 심한 체면 유지나 자기 신분 과시와 같은 단편적인 사고와 인식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자기 완성의 과정이 제자리를 잡을 것이고, 이러한 건전한 문화가 정착될 때 우리 사회의 건강 척도 역시 상승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25주 명언 : 참된 사회정의의 실현은 正道를 바탕으로 한 隨時處中의 본질적 가치가 실천되는 것입니다.[금주 명언] - 待小人不難於嚴이나 而難於不惡이며, 待君子不難於恭이나 而難於有禮니라.[독음] - 대소인 불난어엄 이난어불오, 대군자 불난어공 이난어유례.[한자] - 대우할 대/ 작을 소/ 사람 인/ 아니 불/ 어려울 난/ 어조사 어/ 엄할 엄/ 말이을 이/ 어려울 난/ 어조사 어/ 아니 불/ 미워할 오// 대우할 대/ 임금 군/ 아들 자/ 아니 불/ 어려울 난/ 어조사 어/ 공손할 공/ 말이을 이/ 어려울 난/ 어조사 어/ 있을 유/ 예절 예[출전] - 菜根譚(채근담)』〈前集(전집)[해석] - 소인을 대함에 있어 엄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미워하지 않기는 어려우며, 군자를 대함에 있어 공손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예를 지니기는 어려운 것이다.[어구풀이] 待小人 不難於嚴(대소인 불난어엄) : 소인을 대하는 데는 엄격함에 어렵지 않다는 뜻으로, 단순한 소인잡배(小人雜輩)에 대한 인도책(引導策)을 제시한 것이지만 본격적인 가치로 보자면 기존의 질서체계 속에서 관습적인 방법으로 엄격한 통제와 제어만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而難於不惡(이난어불오) : 미워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렵게 여긴다는 뜻으로, 기존의 선입견으로 재단하고 규정해 버림으로 해서 보다 전향적인 포용력을 지니기가 어렵다는 의미인데, 역시 기존의 왜곡된 질서 체계 속에서 전향적인 방향으로 포용과 함께 자기 혁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待君子 不難於恭(대군자 불난어공) : 군자를 대하는 데에 있어 공손함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구절의 기본적인 해석으로 의미를 보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바른 자세에 대한 표현이지만, 역시 기존의 질서 체계에 안주하고 머물러 변화를 도외시하는 속성을 비유적으로 제시해 봅니다.而難於有禮(이난어유례) : 본질적인 예의 가치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정중한 예의의 가치를 넘어서면 왜곡된 아첨으로 전락하고 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역시 기존의 왜곡된 질서 체계의 극복하고 개혁하기 위한 중요한 가치는 본질적인 정도의 원칙이 바로 적용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제시해 봅니다.[해설] -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참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부단한 노력으로 살아가면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실천에 옮긴 성현(聖賢)들을 많이 접하곤 합니다. 이러한 전통사회 지식인들의 모습은 언제나 단순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앞서 누차(屢次)에 걸쳐 확인했던 화두(話頭)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昨今)의 현실은 우리들에게 또 다시 바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정의를 외치게 하고, 개인의 이기적 속성에 일침을 가하는 고전의 명구(名句)들을 되새김에 있어 조금도 식상(食傷)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은 현실의 모순점을 제대로 집어내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구조적 기틀을 마련하는데 아직 미흡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물론 획일적이거나 타율적인 정신 개조(改造)를 논한다면 또 다른 병폐와 모순을 양산하는 결과만 벌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많이 경험해 왔습니다. 과거의 관() 주도의 사업이나 관변단체(官邊團體)들의 구호성 행사 등은 대표적인 전시행사의 표본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세워야 할 바른 가치는 무엇보다 개인적 수양(修養)의 축적이 자연스럽게 사회 공동체가 미래지향적인 바른 사회정의로 귀결되는 실천적 가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금주의 명언에서 수용해야 할 가치는 정도(正道)를 지키면서 포용과 관용을 베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인배(小人輩)에게 제시될 바르고 엄정한 가치는 지켜져야 하지만, 언제나 관용과 포용으로 감싸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를 함께 걸어가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라 할 것이고, 군자에게 정중하고 공손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정도(正道)이지만, 그것이 정도를 넘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식의 왜곡된 권도(權道)만을 꾀한다면 그것은 이미 정도를 무너뜨린 결과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결국 상식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 투명성과 일관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삶과 정신적 가치가 바른 덕성(德性)과 실천의 의지(意志) 속에서 정도(正道)를 지켜나가면서 포용과 배려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여기에 아울러 우리가 반드시 경계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가치는 기존의 질서가 왜곡된 권도(權道)로만 유지된 질서라면 그러한 질서를 바로잡는 길을 단순한 이분법적인 현실론으로 동일한 양보를 요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곡된 질서를 바로잡자는 주장에 대해 그 왜곡 자체를 인정하면서 동일하게 양보하라고 한다면 그 왜곡은 이미 바로잡힐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맹목적 양비론(兩非論)과 양시론(兩是論)으로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을 수 없듯이 대립하고 있는 두 양상을 바라볼 때 진정한 대승적 합의는 단순한 동일분할식의 타협이 아닌 본질적 가치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하는 방향에서 타협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중용(中庸)의 가치는 고정불변(固定不變)의 고집이 아닌 정도(正道)를 바탕으로 한 수시처중(隨時處中)의 대응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겨 봅니다.감사합니다..

 

126주 명언 : 진정한 자기 완성의 길은 실천적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인합니다.[금주 명언] - 不經一事不長一智니라.[독음] - 불경일사 부장일지[한자] - 아니 불/ 지날 경/ 한 일/ 일 사// 아니 불/ 길 장/ 한 일/ 지혜 지[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省心篇(성심편)[해석] -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나지 않는다.[어구풀이] 不經一事(불경일사) : 한 가지 일을 겪지 않는다는 뜻으로, 직접이든 간접이든 다양한 경험과 사고를 통해서 폭넓은 이해의 폭을 갖지 못하고 편협되고 좁은 사고와 행동을 하는 부족한 사람들의 행실을 의미합니다.不長一智(부장일지) : 하나의 지혜도 자리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과 타인에게 올바른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지혜라는 것은 바로 명확한 사물과 사회 속의 대인관계의 영속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바른 실천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해설] - 우리는 주위에서 학문적 교양을 많이 습득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세월동안 전문적인 경지까지 오른 많은 대가와 장인 등을 접하면서 값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에 경의를 표하곤 합니다. 그것은 많은 노력과 경험이 바탕이 된 값진 결실이기에 더욱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까지 모두가 대가가 되어야 한다거나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평범한 삶의 자세 속에서도 우리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올바른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세가 겸비된다면 그 누구라 하더라도 참된 인생을 누린 것이라 할 것입니다.금주의 명언은 예로부터 아주 흔하게 접해왔으면서도 그 기본적인 가치를 소홀하게 여기기 쉬운 바른 경험에 대한 글귀입니다. 올바른 경험과 실천이 바탕이 된 지혜이라야 그 지혜의 힘이 개인에게는 인생 역정의 바른 지침이 될 것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근자에 많은 담론으로 제기되고 있는 유년기의 인격형성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어린시절 자연과 호흡하며 훈훈한 정서를 마음 속에 쌓아온 기성세대들과 달리 근자의 어린이들은 자연보다 인공에 더 길들여져 따뜻한 인성과의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점을 많이 지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맹목적인 과거 회귀를 요구하거나 수박 겉 핥기 같은 일회성 이벤트의 제공이 아닌 보다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필요성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르고 여름철 벌레는 얼음을 알지 못한다[井蛙不知海 夏蟲不知氷]'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편협된 사고의 틀을 깨고 보다 넓은 이해와 실천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소중한 글귀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는 무조건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단순한 우려 때문에 맹목적 세계화를 주창하며 신사유람단식의 해외 관람 정도로 그 경험의 가치를 폄하시키는 일도 흔히 있습니다. 이제 무엇보다 우리가 바로 인식하고 체득해야할 소중한 가치는 건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올바른 실천이 뒷받침되는 진정한 경험일 것입니다.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간접적인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경험의 가치가 올바른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지혜를 길러내는 것이라면 역시 소중한 삶의 일면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27주 명언 :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존하는 공동체적 가치관의 바른 형성을 기대합니다.[금주 명언] - 善人者不善人之師, 不善人者善人之資니라.[독음] - 선인자 불선인지사, 불선인자 선인지자.[한자] - 착할 선/ 사람 인/ 놈 자/ 아니 불/ 착할 선/ 사람 인/ 어조사 지/ 스승 사// 아니 불/ 착할 선/ 사람 인/ 놈 자/ 착할 선/ 사람 인/ 어조사 지/ 바탕 자[출전] - 老子(노자)』〈27[해석] -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선한 사람의 자본이다.[어구풀이] 善人者 不善人之師(선인자 불선인지사) : 선한 사람은 선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善人不善人을 지배하고 누르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자세에서 자신을 완성시켜나가는 인도자인 스승과 같은 대상으로 그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선악(善惡)이나 호불호(好不好)의 차별이 아닌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상호 보완의 관계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不善人者 善人之資(불선인자 선인지자) :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바탕이 된다는 뜻으로, 자신의 참된 의 가치 역시 부족한 不善을 채워나가는 바탕이 될 때 참된 ''의 가치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不善'의 미흡함이 ''의 이상을 높일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는 바탕이라는 의미로 선인이 선인다울 수 있는 그 '본질적 바탕'을 제공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해설] - 우리는 냉험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차별과 대립의 논리 속에 옹졸한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그것이 본질적 인간 가치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배자들이 세워놓은 왜곡된 강요물의 체계에 종속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초월하기에는 여간해서는 쉽지 않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논리나 인간은 세속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욕구와 욕망에 사로잡혀있다는 식의 논리가 왜곡된 허위와 허식의 체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의지를 꺾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상적 가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는 참된 자유와 평화는 지상(至上)의 가치로 여기고 있음에는 이론(異論)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자유와 무위(無爲)의 이상을 인식하는데 그 단초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금주의 명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이자, <老子(노자)>에서 일관되게 얻는 참된 '無爲自然(무위자연)'의 가치일 것입니다.()과 악()의 가치조차 강점자(强占者)의 호불호(好不好) 여하에 따라가는 왜곡된 인식의 편견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간 본연의 가치 역시 회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면서 신뢰와 배려의 참된 가치를 망각해 왜곡된 차별적 유한의 굴레에 속박 당하는 길인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선하지 못한 사람'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 식의 종속 관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스승과 제자나 배움과 가르침의 관계처럼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유가(儒家)'敎學相長(교학상장)'이나 '斅學半(효학반)'의 이상적인 가치와도 서로 일면 통하면 부분이 있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인간 본연의 참된 사랑과 자유의 가치를 잃을 것이고 혼돈과 혼란 속에서 왜곡된 질서를 강요받을 것입니다.[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老子> 同章) ] 서로 함께 공존하는 공동체적 삶의 가치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流水不腐(유수불부)]'고 합니다. 편협된 사고와 왜곡된 구조 속에 매몰된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타인과 공존하는 공동체적 가치관을 체득하기 위한 실천이 이루어질 때 건전한 자신과 건강한 사회가 함께 만들어지리라는 것을 되새겨 봅니다.감사합니다..

 

128주 명언 : 냉철한 자기 주관의 바탕에는 엄정한 가치관의 성립이 있어야 함을 확인합니다.[금주 명언] - 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이니라.[독음] - 불의이부차귀 어아 여부운.[한자] - 아니 불/ 옳을 의/ 말이을 이/ 부유할 부/ 또 차/ 귀할 귀/ 어조사 어/ 나 아/ 같을 여/ 뜰 부/ 구름 운[출전] - 論語(논어)』〈述而篇(술이편)[해석] - 의롭지 못하면서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다.[어구풀이]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 : 의롭지 못하면서 부유하고 귀하다는 뜻으로, 사회의 보편적 정의에 어긋나는 행위로 얻어진 부와 귀에 대한 것인데, 부와 귀에 대한 본질적인 거부나 외면이 아니라 원칙에 어긋나지 않은 정당한 노력으로 얻어진 부와 귀가 아닌 정의의 가치에 부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얻거나 얻어진 부유함과 귀함에 대한 거부를 논하기 위해 '不義'를 강조하고 있습니다.於我 如浮雲(어아 여부운) : 나에 있어서는 마치 뜬구름과 같다는 뜻으로, 부질없이 정처없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관심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본질적인 인간 도리를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가치는 不義를 극복한 참된 진리이지 세욕에 의해 지배되고 물든 권력과 명예는 인간이 배척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해설] - 공자(孔子)의 부귀관(富貴觀)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진정한 가치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금주의 명언은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바른 사회 정의의 가치와 이상적 개인관의 실천을 위한 덕목으로 회자(膾炙)되어 온 대표적인 명언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정의의 건강 척도가 다소 떨어지는 시대엔 또 다시 安貧樂道를 강조되고 외치게 되는 완전하게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획일적 가치를 주장하거나 주입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의 보장 속에도 역시 최소한 기본적인 가치체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도 보편타당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보편타당성의 수위나 정도를 조절하고 합의하는 노력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책임이자 의무라는 것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우리가 살아온 지난 반세기 이상의 세월은 우리들에게 지나치리만큼 권위와 획일에 의해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로 인한 폐해를 논하자면 이루 다 나열할 수도 없겠지만, 무엇보다 선악의 구별까지도 획일적 대상으로 치부한 결과 악에 대항하기 위한 악을 필요악(必要惡) 이상으로 정당화하고 당연시했고, 더 나아가 일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조차 그러한 不義를 판단하고 단죄하며 바른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가치 판단의 혼돈을 야기시킴으로 해서 건강한 사회 정의의 가치마져 훼손되는 결과가 벌어진 것입니다.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삶의 이상적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최우선의 덕목으로 꼽은 安貧樂道의 가치는 선비정신으로 표현되는 이상적 가치관의 전형으로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불완전한 사회 현실 속에서 치우치고 왜곡되는 사회 현상을 막고 긍정적 방향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역할을 할 수 있는 安貧樂道의 가치덕목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본적인 인식바탕에 내재될 수 있도록 바른 가치관의 형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29주 명언 : 無慾餘裕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강한 자아 확립을 갈망합니다.[금주 명언] - 非無安居, 我無安心也. 非無足財, 我無足心也니라.[독음] - 비무안거 아무안심야, 비무족재 아무족심야.[한자] - 아닐 비/ 없을 무/ 편안할 안/ 거할 거/ 나 아/ 없을 무/ 편안할 안/ 마음 심/ 어조사 야// 아닐 비/ 없을 무/ 족할 족/ 재물 재/ 나 아/ 없을 무/ 족할 족/ 마음 심/ 어조사 야[출전] - 墨子(묵자)』〈親士篇(친사편)[해석] - 편안한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요. 만족할 재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만족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어구풀이] 非無安居 我無安心也(비무안거 아무안심야) : 편안한 거주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편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묵자(墨子) 겸애(兼愛)의 본질적 가치가 개인의 마음가짐의 동질성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보고 있기에 결국 중인(衆人)으로부터 군자(君子)까지 겸애교리(兼愛交利)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마음가짐의 수양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非無足財 我無足心也(비무족재 아무족심야) : 만족할 재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 마음이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역시 개인의 마음가짐의 수양을 확인할 수 있도록 반복적 댓구(對句)로 강조하고 있습니다.[해설] - 인간의 보편적인 에로스적 사랑이라고까지 표현하는 묵자의 겸애의 바탕은 역시 동질적 포용을 전제하고 보편적인 사랑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성을 무시한 공허한 이상적 주장이라고 유가(儒家)에게 비난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묵자의 논리 자체를 역설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 결핍된 공동체의 사랑을 회복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정서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편으로 표현된다면 또 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무욕(無慾)의 가치가 추락한 사회에서 물질과 배금주의에 만연된 사회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진단과 방편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거국적 차원의 캠페인으로부터 사회적, 지역적 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식 개선 작업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삭막한 인심과 냉랭한 세태는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이 있음을 자각한다면 밝은 희망 역시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주변사람들을 배려(配慮)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길이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 속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 삶의 가치와 목표는 누구나 서로 다를 것이고, 그러한 가치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방법 역시 서로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와 가치가 타인과의 공존이나 공유가 아닌 일방적인 독단적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장인정신이니 선비정신이니 하는 고유의 바른 삶의 전형 역시 타인과의 어우러짐 속에서 그 궁극적 목표이자 가치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금 열정적 참여와 노력 속에서 값진 성과와 결과를 기대하고 성취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이기심의 표출이 제대로 구별되고 공과(功過)가 인정될 때 우리 사회의 밝은 희망도 지속되리라 봅니다.감사합니다.

 

130주 명언 : 謙遜淸貧의 가치가 중심된 사회의 모습을 기원합니다...[금주 명언] - 福生於淸儉하고, 德生於卑退니라.[독음] - 복생어청검 덕생어비퇴. [한자] - 복 복/ 날 생/ 어조사 어/ 맑을 청/ 검소할 검// 덕 덕/ 날 생/ 어조사 어/ 낮을 비/ 물러날 퇴[출전] - 韓非子(한비자)[해석] - 복은 청렴하고 검소한 데에서 생기고, 덕은 자신을 낮추어 물러나는 데에서 생긴다..[어구풀이] 福生於淸儉(복생어청검) : 복은 청렴하고 검소한 것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진정한 자신의 노력과 자기극복의 자세에서 삶의 참된 가치인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비자의 직설적 현실 인식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德生於卑退(덕생어비퇴) : 덕은 자신을 낮추고 물러설 줄 아는 것에서 생긴다는 뜻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배려와 사랑의 자세는 자기 겸손과 자기 절제로부터 시작됨을 확인시켜주는 덕목입니다.[해설] - 고래(古來)로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제어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노력은 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가들의 주된 해결 노력의 대상으로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냉엄한 현실 인식 속에서 보다 주지적(主知的)인 대안들을 역설한 한비자 역시 인간 속성의 제어와 참된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청빈(淸貧)(謙遜)이라는 덕목까지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사상과 철학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로 자기 제어의 방법이 그 위상을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할 것입니다.앞서 많은 명구(名句)들에서 거듭 다루었던 자기 제어의 다양한 역설들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금주의 명언에서 다시 직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본질적 가치를 확인하는 길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다시 한 번 본연의 심성을 자극하는 차원 정도에서 벌써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앞서 다루었던 포용과 사랑의 실천[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泰山 不讓土壤, 河海 不擇細流.<十八史略>) ]"까지 함께 수용한다면 그 가치의 효과는 더욱 배가되리라 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사람들의 무감각한 반복적 행위를 통해 익숙해진 사고와 행동이 선악(善惡)과 호불호(好不好)의 인식 단계를 넘어선 모습들을 쉽게 보아옵니다. 양심(良心)을 팽개쳐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까지 지탄받는 사람들로부터 사소한 행위라 하더라도 도덕적 불감증에 익숙해진 주변의 모습들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도와 건전한 가치관의 부재에 대한 걱정을 논하지 않을 수는 실정인 것입니다. 여론의 주도층이나 사회적 공인(公人)들에 대한 건강한 도덕성 요구 못지 않게 우리 모두의 정신적 가치관의 건전성을 회복하는 길 역시 시급한 문제일 것입니다.목적을 위해 수단을 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듯이, 작은 한 걸음의 과정부터 아름답고 소중하게 실천해 나갈 때 참된 개인의 자기 극복과 함께 건전한 사회 정의의 인식과 정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실천과 참여가 뒷받침된 자기 절제와 배려의 자세를 강조해 봅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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