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주 명언 : 원칙과 상식의 바탕 속에 바른 인격 성장의 단초를 마련해 봅니다.◈ [금주 명언] - 廉者는 牧之本務요, 萬善之源이요, 諸德之根이니라.◆ [독음] - 염자 목지본무 만선지원 제덕지근.◆ [한자] - 청렴할 렴/ 놈 자/ 기를 목/ 어조사 지/ 근본 본/ 일 무// 일만 만/ 선할 선/ 어조사 지/ 근원 원// 여러 제/ 덕 덕/ 어조사 지/ 뿌리 근▶ [출전] - 『牧民心書(목민심서)』〈律己六條(율기육조)〉◈ [해석] -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어구풀이] ☞ 廉者 牧之本務(염자 목지본무) : 청렴함은 목민관의 본무라는 뜻으로, 목민관(牧民官)의 본질적 마음 자세는 그 어떤 능력이나 재능보다 사심(私心)을 배제한 바른 인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萬善之源 諸德之根(만선지원 제덕지근) : 모든 선행의 근원이요 여러 덕행의 뿌리라는 뜻으로, 청렴함의 본질적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선행이나 덕행의 원천이자 본질적 바탕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청렴함의 중요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해설] - 《牧民心書(목민심서)》 전편에 나타난 부패한 지배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착취와 폭정에 신음하는 민초들에 대한 동정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이상적인 사회 체제까지 모색하게 한 실학의 집대성자(集大成者)로서의 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산이 집적 목격하며 체감한 억압받던 당대의 민초들의 삶은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지만, 개개인의 심성과 덕성의 수양 역시 아주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 구조의 개혁에 대한 다양한 방향 중에서도 민초들의 삶에 직결되는 목민관(牧民官)의 자세나 심성이야말로 개혁의 요체가 되었던 것입니다.다산의 역설은 무엇보다 청렴(淸廉)에 대한 언급과 절용애인(節用愛人)에 대한 실천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중한 언행과 예(禮)의 실천을 모범적으로 솔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렴한 심성의 수양이 본질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지난 반세기 동안의 현대 우리 사회에 야기된 모순들인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의 구조적 심화나 부패와 비리가 만연된 어두운 사회 현실에 대한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힘을 얻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우리 삶 주변에서 느끼는 개개인들의 청렴도의 체감지수는 미흡한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 이기심이나 관행적 행태들로 인해 만들어진 왜곡된 현상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해 하면서도 언론에 주목되는 계층들에 대해서는 엄격한 청렴성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소 미흡한 사회 의식의 수준은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다음 과정일 것입니다. 다산(茶山)이 우리에게 남긴 개혁적 의식의 체득(體得)은 시공을 초월해서 소중한 사회적 가치로 정착시켜야 할 것입니다. 거창한 학술적 구호이나 현실성을 무시한 거리감 있는 제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의 가치관 속에 최소한의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고 지켜질 수 있는 그런 청렴한 마음자세를 정립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자세와 함께 작은 규칙부터 바로 실천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금주의 명언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감사합니다...
142주 명언 : 원칙과 상식의 사회상이 대중적 가치관을 정착되길 기원해 봅니다.◈ [금주 명언] - 治官엔 莫若平이요, 臨財엔 莫若廉이니라.◆ [독음] - 치관 막약평, 임재 막약렴.◆ [한자] - 다스릴 치/ 관리 관/ 없을 막/ 같을 약/ 평평할 평// 임할 임/ 재물 재/ 없을 막/ 같을 약/ 청렴할 렴▶ [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立敎篇(입교편)〉◈ [해석] - 관청의 일을 처리함에는 공평함 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해서는 청렴함 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어구풀이] ☞ 治官 莫若平(치관막약평) : 벼슬을 다스리는 것에는 공평한 것만 같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관리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공평무사(公平無私)함을 최우선의 원칙으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莫若’은 비교형 문장의 최상급의 표현으로 ‘~한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는 의미로 최상급의 비교를 표현합니다.☞ 臨財 莫若廉(임재막약렴) : 재물에 임해서는 청렴한 것만 같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관리의 직분에 있어 청렴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신뢰받는 공직자의 원칙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설] - 지난 권위주의 시절의 수많은 병폐 중에서도 정권(政權)과 금권(金權)이 국민들 위해 군림(君臨)하며 인권과 자유를 속박하던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는 조금씩이나마 치유되고 변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지록위마(指鹿爲馬)나 호가호위(狐假虎威)의 고사와 같은 씁쓸한 행태를 접하곤 합니다. 결국 바른 의식의 정립이나 사회 정의의 정착을 위한 개개인의 노력과 자성의 실천은 변함 없고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함을 확인하게 됩니다.지난주 다산(茶山)의 《牧民心書(목민심서)》를 통해 환기를 부각한 청렴(淸廉)함의 가치는 재론을 거듭하더라도 식상할 수 없는 원론적 가치입니다. 지난 시절 잘못된 관행이나 왜곡된 권위를 휘두르는 비리 공직자들의 횡포에 눈물 흘리던 힘없는 서민들을 수 없이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각인된 우리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모습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잊거나 덮어두려는 자세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메스로 환부를 도려내듯이 완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고통스러운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함께 자성(自省)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공직자의 위상은 공복(公僕)으로서의 기본적 위상과 함께 공평(公平)과 청렴(淸廉)의 원칙이 직무 수행의 도리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기에 다시금 금주의 명언으로 소재를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공평과 청렴이 공직자에게만 해당되는 가치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공존되는 최상의 가치여야 한다는 점을 항상 되새겨야 합니다. 학연이나 지연 등에 사로잡혀 있거나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의 사욕(私慾)이나 사심(私心)을 배제될 수 있는 사회정의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의 가치관이 먼저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정함과 청렴함이 특별함이 아닌 평범한 가치가 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원칙과 상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활 자세를 함께 되새겨 봅시다. 감사합니다.
143주 명언 :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바른 사회 정의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기원합니다.◈ [금주 명언] - 不責人小過하며 不發人陰私하며, 不念人舊惡하라.◆ [독음] - 불책인소과 불발인음사 불념인구악.◆ [한자] - 아니 불/ 꾸짖을 책/ 사람 인/ 작을 소/ 허물 과// 아니 불/ 나갈 발/ 사람 인/ 음지 음/ 사사로울 사// 아니 불/ 생각할 념/ 사람 인/ 옛 구/ 악할 악▶ [출전] - 『菜根譚(채근담)』〈前篇(전편)〉◈ [해석] - 남의 작은 허물을 책하지 말며, 남의 사적인 비밀을 발설하지 말며, 남의 지난 잘못을 생각하지 말라.▶ [어구풀이] ☞ 不責人小過(불책인소과) : 남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라는 뜻으로, 허물에 대한 질책은 당사자에게 반성이나 극복의 여지를 남겨놓고 지적과 책임을 물어야 함이 최소한의 배려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미미한 허물마저 공개적으로 공격하고 지나치게 몰아가서는 그 자신 역시 올바른 덕성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경계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不發人陰私(불발인음사) : 남의 사적인 비밀을 발설하지 말라는 뜻으로, 개인적인 차원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은 설사 그것이 다소 사회적인 불협(不協)함이 있다하더라도 역시 감싸고 보듬어 줌으로써 그 불협함을 해소하고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들춰내고 발설하는 것만을 능사로 여긴다면 그 자신 역시 그 폐해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不念人舊惡(불념인구악) : 남의 지난 잘못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그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 난 뒤라는 것을 전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재론과 반복적으로 들춰내는 일이라면 바른 덕성으로 감싸지 못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해설] - 원한(怨恨) 맺힌 반목(反目)과 질시(疾視)로 인한 사회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은 우리의 아픈 현대사의 질곡을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책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바른 사회정의(社會正義)의 척도로 가늠한다면, 어설픈 화해나 감싸기 등으로 덮어버리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너무도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인 왜곡된 현대 역사가 실존하고 있기에 반드시 바른 민족정기와 민주적 정통성의 이름으로 이를 바로잡기 위해 환부를 도려내는 듯한 아픈 극복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원칙과 상식이 통용되고 대우받는 사회, 개인을 넘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회 가치의 중심이 되는 그런 세상이 전제될 때, 아름다운 덕성(德性)을 지닌 건강하고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렇기에 금주의 명언에 표현된 주장은 우리 현대 사회의 단면을 단편적으로만 대입한다면 말단적 병폐를 가리기 위해 본질적 환부를 덮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반민족적 친일행각을 펼치던 부역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사회 요소를 점유하고 있는 현실은 그 친일파 개인들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 근본을 담당해야 할 바른 정의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왜곡된 현대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진실 규명조차 화합과 발전을 해치는 저해요인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친일파들의 궤변이 금주의 명언을 곡해하는 일을 막는 것 역시 금주의 명언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또한 금주의 명언에 제시된 구절 세 가지 내용은 바른 덕성을 기를 수 있고 해로움을 멀리할 수 있는 길[ 三者 可以養德 亦可以遠害. <同章> ]이라고 했지만, 그 바탕과 전제 조건에는 반드시 본질적 정의의 가치가 정립되고 실현된 뒤에야 빛을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질곡과 왜곡으로 점철된 우리의 뒤틀린 현대사를 바로잡는 길은 바른 사회정의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지름길이고, 그러한 사회정의의 가치 회복은 언제나 자기성찰의 깊은 반성이 함께 할 때 진정한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봅니다.감사합니다..
144주 명언 : 자기 성찰을 바탕으로 바른 사회 정의의 기틀이 마련되기를 기원합니다.◈ [금주 명언] - 朽木은 不可雕也며, 糞土之牆은 不可杇也라.◆ [독음] - 후목 불가조야, 분토지장 불가오야.◆ [한자] - 썩을 후/ 나무 목/ 아니 불/ 가할 가/ 조각할 조/ 어조사 야// 더러울 분/ 흙 토/ 어조사 지/ 담 장/ 아니 불/ 가할 가/ 흙손 오▶ [출전] - 『論語(논어)』〈公冶長篇(공야장편)〉◈ [해석] -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더러운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으로 다듬을 수 없다.▶ [어구풀이] ☞ 朽木 不可雕也(후목 불가조야) :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미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한 나무에 조각을 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의미인데,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재여(宰予)가 한참 일해야 할 시간에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비유적으로 표현할 말입니다.☞ 糞土之牆 不可杇也(분토지장 불가오야) : 더러운 흙의 담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역시 썩고 더러운 흙으로 쌓아 올린 담은 흙손으로 손질을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음으로 다시 한 번 제자 재여를 질책하는 표현입니다.▣ [해설] -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에게 확산되는 병균의 진행을 막고 확실한 원인치유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환부를 도려내는 고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다수의 병폐들을 해결하는 것 역시 적당히 덮거나 외면하고 회피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철저한 자성(自省)과 자기 변화의 모습이 뒤따르지 않고서도 일신(日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에서 공자(孔子)가 제자 재여(宰予)에게 가하는 질책은 가혹하리 만큼 신랄합니다. 이러한 신랄한 질책은 그 한 제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모든 제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질책이었고, 공자 자신에게도 다시금 일신(日新)하는 자성(自省)의 확인이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바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치로 평천하(平天下)의 이상을 추구하던 공자(孔子)였기에 언변에 능했던 제자 재여(宰予)였지만, 군자(君子)의 가치를 잃고 있었던 그를 엄하게 질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자는 재여의 미흡함에 대해 금주의 명언에 제시한 비유적 표현으로 질정(叱正)을 하면서 재여로 하여금 자신의 대인관(對人觀)까지 변했다고 합니다. “ 전에 나는 남을 대함에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실을 믿었지만, 이제 나는 남을 대함에 그의 말을 듣고서도 그의 행실을 살피게 되었으니 재여로 하여금 내가 이렇게 사람 대하는 태도를 고치게 되었다.”[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論語> 同句 ]그만큼 공자가 군자(君子)로서의 본질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보다 확고한 실천적 행위까지 다시금 되새기게 된 이유는 흐트러지고 변질되는 현상을 회복해야만 하는 절실함이 표출된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대명제를 확신하기에 우리 사회의 다방면에서 표출되고 있는 다양한 외침들은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과적으로 보다 나은 다음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작금의 현실은 민의(民意)를 거부하고 왜곡하는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 행태를 자행하는 무리들의 준동(蠢動)으로 인해 울분을 토로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그 울분의 목소리들이 우리 민족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희망의 목소리로 승화된다면 다시 한 번 우리의 민주주의 역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와 진보의 첩경은 역시 개개인의 건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사회정의의 확립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감사합니다..
145주 명언 : 진정한 名實相符의 가치 회복이 사회 정의 실현의 첩경임을 확신합니다.◈ [금주 명언] - 枉己者는 未有能直人者也니라.◆ [독음] - 왕기자 미유능직인자야.◆ [한자] - 굽을 왕/ 자기 기/ 놈 자// 아닐 미/ 있을 유/ 능할 능/ 곧을 직/ 사람 인/ 놈 자/ 어조사 야▶ [출전] - 『孟子(맹자)』〈滕文公下篇(등문공하편)〉◈ [해석] - 자신을 굽히는 사람은 남을 곧게 바로잡아 줄 수 없는 것이다.▶ [어구풀이] ☞ 枉己者(왕기자) : 자신을 굽히고 잘못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작은 절개와 같은 것은 쉽게 버리더라도 큰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명분을 버리더라도 실리만 얻으면 된다는 식의 이해타산(利害打算)적인 이기적 인간형의 개념으로 제시된 것인데, 맹자의 제자 진대(陳代)가 스승에게 어느 정도는 자신을 굽히더라도 큰 것을 취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枉尺而直尋’의 질문에 대해 철저한 비판과 이해를 시키기 위한 맹자의 굳은 신념을 표명하기 위해 거론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 未有能直人者也(미유능직인자야) : 남을 곧게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는 뜻으로, 이미 자신을 굽힌, 곧 기본적인 신념과 절개마저 꺾은 사람이 어떻게 남의 굽힘을 바로잡을 수 있겠냐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로서의 맹자의 굳은 지조를 엿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해설] -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현상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 국가적으로까지 명분(名分)과 실리(實利)가 상충되는 현상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원론적인 개념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조화롭고 원만한 해결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입니다. 또한 한쪽으로 기우려는 현상을 놓고 갑론을박(甲論乙駁)하는 과정 역시 토론과 참여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마련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곡되고 포장된 논리로 건전한 사회 정의의 가치에 반하는 인습(因習)의 관행이나 혐오스럽고 불쾌한 비이성적 행태들로 인해 명분과 실리의 진정한 가치가 실종된 건강하지 못한 사회 현상들을 접하는 일이 많은 것 역시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금주의 동양명언은 공자(孔子)의 비례물동(非禮勿動)의 가치를 새삼 확인하며, 대의(大義)를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할 수 있는 이상적 실천가치를 회복하고자 했던 맹자의 굳은 신념을 되새길 수 있는 일화의 내용입니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호소하던 맹자에게 다소 정도에 벗어나 절개(節槪)을 일부 손상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제후들에게 찾아가 유세를 해야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제자 진대(陳代)의 질문에 대해 맹자(孟子)는 비굴한 타협으로 명분(名分)을 손상시킬 수도 없고, 그러한 타협 속에 얻는 실리(實利) 역시 본질적 기반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사냥터지기인 우인(虞人)의 일화나 진(晉)나라 대부 조간자(趙簡子)의 말몰이꾼인 왕양(王良)의 일화를 예로 들면서 비례물동(非禮勿動)의 명분 수호와 맹목적 실리 추구의 병폐를 함께 일깨워주고 있습니다.맹자에게 호소했던 제자 진대(陳代)의 표현대로 ‘한 자쯤을 굽혔다가 한 길(여덟자)를 편다’는 ‘枉尺而直尋(왕척이직심)’의 논리가 횡행하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사회 현상이나, 작은 절개[小節]는 버리더라도 큰 절개[大節]을 얻으면 된다는 식의 편법과 탈법의 병폐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정도(正道)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경진해야 할 것입니다.맹자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고사가 양비론(兩非論) 조장(助長)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군자삼락(君子三樂)의 본의를 왜곡하는 천박한 논리전개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의식에 일침을 가하면서 보다 건강한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다짐해 봅니다.감사합니다.
146주 명언 : 늘 처음처럼 간직할 있는 무욕(無慾)의 참된 가치가 중심된 사회를 그려봅니다.◈ [금주 명언] - 民之從事는 常於幾成而敗之니, 愼終如始하면 則無敗事니라.◆ [독음] -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한자] - 백성 민/ 어조사 지/ 따를 종/ 일 사/ 항상 상/ 어조사 어/ 거의 기/ 이룰 성/ 말이을 이/ 패할 패/ 어조사 지// 삼갈 신/ 마칠 종/ 같을 여/ 처음 시/ 곧 즉/ 없을 무/ 패할 패/ 일 사▶ [출전] - 『老子(노자)』〈64章〉◈ [해석] - 사람들이 일하는 것 항상 거의 다 이루어질 듯 하다가 실패한다. 끝을 삼가는 것이 늘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어구풀이] ☞ 民之從事(민지종사) : 백성들이 일에 종사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民’은 ‘人’으로 보는 것이 좋은데, 세상 사람들의 맹목적이리만큼 지식 이변도의 추구나 욕망 추구를 위한 행위들을 일컫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常於幾成而敗之(상어기성이패지) : 항상 거의 이루려다가 실패하곤 한다는 뜻으로, 인욕(人慾)에 물든 인간 세상의 왜곡된 구조로 인해 본질적인 가치가 완성되지 못하고 항상 불완전하고 불균형적인 현실세계의 순수하지 못한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愼終如始 則無敗事(신종여시 즉무패사) : 마무리를 신중하게 하는 것을 처음처럼 한다면 일을 실패하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언제나 처음처럼 고집과 집착,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본래의 바탕과 본연의 가치를 완성할 수 있기에 진정한 참된 무위의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해설]누구나 자신의 과욕(過慾)으로 인해 패착(敗着)까지 이르는 자가당착(自家撞着)과 같은 일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이나 사회, 국가적인 범주에서도 자주 목격하게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욕(無慾)의 가치가 지닌 소중한 교훈을 자주 망각하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인간 속성의 불확실성에 기인하는 원죄(原罪)의 성격으로 규정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이룩하고 만들어 왔던 역사의 연속성에서 살펴보면, 정체와 신속의 경중(輕重)이 있기는 했지만 인류의 발전과 진보의 과정으로 지금까지 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닌 불완전한 속성으로 인해 발생되는 다양한 차별과 대립의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노력 역시 무욕(無慾)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되살려 준 금주의 동양명언은 그 가치와 효능을 억지와 고집이 아닌 순응(順應)과 무위(無爲)에서 찾고 있습니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라 하더라도, 그것은 털끝같이 작은 싹에서 나는 것이며, 구 층이나 되는 높은 누대(樓臺)라 하더라도 그것은 한줌의 흙더미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며, 천리나 되는 먼 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발 밑의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라도 해보려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실패를 하는 것이며, 쥐고 놓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자는 잃고야 만다. [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爲者敗之 執者失之. <同章> ] ”집착과 고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무욕(無慾)과 무위(無爲)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역시 처음을 잊지 않고 처음처럼 변함 없는 틀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점이 바로 노자가 말한 순수한 무위(無爲)의 정치(政治)입니다.구태(舊態)를 벗고 상생(相生)과 통합(統合)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는 정치인들에게 늘 처음처럼 변함 없는 초심(初心)을 잃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물론 원칙과 상식마저 망각된 왜곡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극복할 수 있는 안목(眼目)을 기르는 일 역시 우리 자신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47주 명언 : 건강한 가치관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참된 도덕적 수양의 가치를 되새겨 봅니다.◈ [금주 명언] - 寧爲小人所忌毁언정 毋爲小人所媚悅하라.◆ [독음] - 영위소인소기훼 무위소인소미열.◆ [한자] - 차라리 년/ 될 위/ 작을 소/ 사람 인/ 바 소/ 꺼릴 기/ 훼방할 훼// 말 무/ 될 위/ 작을 소/ 사람 인/ 바 소/ 아첨할 미/ 기쁠 열▶ [출전] - 『菜根譚(채근담)』〈前集〉◈ [해석] - 차라리 소인에게 꺼리고 비방을 당하는 사람이 될지언정, 소인의 아첨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어구풀이] ☞ 寧爲小人所忌毁(영위소인소기훼) : ‘차라리 소인에게 꺼려지고 비방을 당할지언정’이라는 뜻으로, 올바른 덕성과 소신으로 바른 행동을 하는 군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상식과 원칙의 적용을 무시하고 악행을 일삼는 소인배들이 꺼리고 항상 훼방을 놓으려고 한다는 부도덕한 사회 현상에 대한 경계의 차원에서 표현된 구절입니다.. ※ 爲~所~ : ~에게 ~을 당하다. [피동형 관용 문장 구조] ☞ 毋爲小人所媚悅(무위소인소미열) : ‘소인에게 아첨받고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으로, 소인배들의 아첨을 좋아하고 소인배들의 친밀함에 기뻐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역시 소인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확인시켜주는 구절입니다. 온갖 아첨과 편녕(偏佞)의 현상을 극복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성찰과 자기 반성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경구(警句)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할 것입니다. ※ 寧~毋~ : 차라리 ~할지언정, ~하지 말라. [선택적 비교형 문장 구조] ▣ [해설] -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민주적 소양과 건전한 가치관을 지닌 올바른 시민상을 정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은 건강한 도덕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올바른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도덕적 인간형이 되는 길이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맹목적 경쟁논리만이 사회적 기반을 재단하는 방편으로 인식되고 있는 왜곡된 구조가 심화되고 있기에 건강한 가치관과 올바른 사회 정의를 외치는 것이 다소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삼 강조하고 되새길 수 있는 고전의 경구(警句)를 통해 보다 명확한 사회정의 정립의 기틀을 확인하고 단속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보았습니다.소인배(小人輩)와 친근하고 그들의 칭송과 아첨에 화답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 사람 역시 소인배라는 것에 이론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러한 소인배가 우리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위치와 지위를 차지하고 기득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왜곡된 구조를 확대 재생산해 오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아울러 인격의 완성체로서의 바른 사회 구성원의 지상 과제처럼 그 확고한 전형을 이끌어 왔던 군자(君子)들에 있어서도 소인배들에 적용된 구조적 관념이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차라리 군자에게 꾸짖음을 받고 바로잡힘을 당할지언정, 군자에게 포용(包容)을 받지 말라.[ 寧爲君子所責修 毋爲君子所包容. <同句>]”수동적인 사고와 피동적 생활자세로 적극적인 삶을 개척하지 못한다면, 그 역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없음이 분명할 것입니다. 소수의 특정 인물이 이 사회와 역사를 이끄는 것이 아닌 평범한 개인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분명히 자각하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바른 사회 정의를 확립할 때 우리 사회의 가치관 역시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다시금 새로운 시대적 소명은 사랑과 배려가 바탕이 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되새겨 봅니다.감사합니다.
148주 명언 : 삶의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승화할 수 있는 건강한 실천력을 되짚어 봅니다.◈ [금주 명언] - 寧塞無底缸이언정 難塞鼻下橫이니라.◆ [독음] - 영색무저항 난색비하횡.◆ [한자] - 차라리 녕/ 막을 색/ 없을 무/ 밑 저/ 항아리 항// 어려울 난/ 막을 색/ 코 비/ 아래 하/ 가로 횡▶ [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省心篇(성심편)〉◈ [해석] - 차라리 밑이 없는 항아리는 막을 수 있을지언정, 코 아래 가로 질어 있는 입은 막기 어려운 것이다..▶ [어구풀이] ☞ 寧塞無底缸(영색무저항) : ‘차리리 밑이 뚫어진 항아리는 막을 수 있을지언정’이라는 뜻으로, 외형적이고 가치부여를 할 필요성이 없는 사물이나 현상들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수정과 변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상적 틀을 수정하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중심에서 본질을 왜곡할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밑 빠진 항아리에 비유든 것인데, 여기서 항아리를 비유로 제시한 것은 밑이 빠진 항아리는 어떤 것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교체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평범한 질그릇마저도 그것을 수정하고 고치기란 간단하지 않음을 제시함으로써 다음 구절의 언행의 신중함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할 것입니다.※ 寧(녕)~ : 차라리 ~할지언정☞ 難塞鼻下橫(난색비하횡) : ‘코 아래 가로질러 있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뜻으로,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담을 수 없기에 언행의 신중함을 강조하는 의미인데, ‘입’이라는 의미를 ‘코 아래 가로질러 있는 것’이라는 다소 희화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입에서 나오는 말의 신중함을 새삼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찮은 곳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설] - 말의 신중함이나 소중함에 대한 고전의 글귀는 다양합니다. ‘口禍之門(구화지문)’으로 대별되는 말의 신중함에 대한 성어나 ‘男兒一言重千金(남아일언중천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의 소중함에 대한 구절들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고금을 막론하고 절대 가치로 그 지위와 의무를 다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잠언(箴言)이나 경구(驚句)들이 단순히 개인에게 국한된 선악의 판단 기준으로만 작용해 오고 있는 평가에서는 보다 거시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미흡함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언행의 신중함과 소중함에 대한 화두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건강 척도의 바로미터로 작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바른 인식과 실천력의 배가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맹목적 반목과 질시를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가치 척도의 기준이 사회적 구심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미 왜곡될 대로 왜곡된 모순 구조에 대한 반성이나 재정립 과정도 없이 과거의 악습과 병폐를 적당히 묻어버리면서 가면을 쓴 듯한 화합은 특히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근자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상생(相生)’ 논리가 자칫 왜곡된 사회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저한 자기반성의 과정과 왜곡된 모순 구조의 재정립을 위한 노력이 동반될 때 그 변화의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서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정신적 가치와 올바른 실천력을 배가시켜야 합니다. 또한 우리 전통의 이상적 ‘선비정신’ 역시 그 강고(强固)한 자기단속과 사회 공헌의 최우선 실천력 등을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정신을 통해 그 가치를 충분히 공유해 왔습니다. 우리 시대의 도덕적 건강성을 값진 전통의 가치에서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를 당부하고자 합니다.고착(固着)이 아닌 ‘隨時處中(수시처중)’의 가치 수단으로 말입니다.감사합니다..
149주 명언 : ‘自强不息’의 참된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기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봅니다.◈ [금주 명언] - 篤信好學하며 守死善道니라.◆ [독음] - 독신호학 수사선도.◆ [한자] - 돈독할 독/ 믿을 신/ 좋아할 호/ 배울 학// 지킬 수/ 죽을 사/ 착할 선/ 도리 도▶ [출전] - 『論語(논어)』〈泰伯篇(태백편)〉◈ [해석] - 독실하게 믿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써 지켜 도를 높여라..▶ [어구풀이] ☞ 篤信好學(독신호학) : ‘돈독하게 믿고 배움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유가(儒家)의 본질적 가치 속에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의 과정으로 다양한 수양법이 제시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의 소중한 수양법으로 전해오는 ‘篤信好學’의 구절은 강고한 실천력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가능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곧 다음 구절의 ‘守死’나 ‘善道’의 공과를 확고하게 담보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篤信’과 ‘好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守死善道(수사선도) : ‘죽음으로 지키고 도리를 높인다’는 뜻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얻고자하는 가치가 자신의 신념을 확고하게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실천력 역시 건강하고 건전한 상식적 원칙이 공감할 수 있는 사회 정의의 실현일 때만이 그 실천력이 효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해설] - 자신의 신념을 지키거나 대의를 위해 목숨마저도 기꺼이 던지던 인물들에 대한 고금(古今)의 평가는 범인(凡人)들이 왈가왈부(曰可曰否)할 수 있는 성격을 넘어 강고한 의식 속에서 바른 가치의 회복을 확인시켜주며 강한 감동으로 자연히 가슴을 여미며 숙연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당대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 참된 가치의 실현을 위해 인고(忍苦)의 실천력을 담보한 삶을 영위한 인물들에 대한 논의의 시점에서 범인에 지나지 않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 주변의 삶이 최소한의 바른 가치관의 정립을 위한 작은 정성이나 노력 여하를 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수기치인(修己治人)의 가치를 지상의 과제로 설정하고, 나아가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조화를 통한 인간 도리의 이상적 실현을 사회의 실현 덕목으로 설정하고 있는 유가(儒家)의 입장에서는 강고한 자기 수양의 과정을 우선적 성취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점이 당연합니다. 곧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실천 덕목이나 금주의 명언에서 제시하고 있는 篤信好學의 가치 역시 자기완성의 규격화된 일례로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은 다음과 같은 실천덕목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가고 도가 없으면 숨을 것이니라.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는 가난하고 천함이 수치요,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 때에는 부유하고 귀함이 수치이니라.[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論語> 同句]”이러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이상적 가치를 구체화시켜 표현하고 있는 실천 덕목의 다양한 방편들이 단순한 과거의 이론으로 허공 속에 맴도는 구호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개인과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의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실천할 때 전통의 참된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상식과 원칙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통용될 수 있는 본질적 가치가 특별하거나 시혜(施惠)적인 것이 아닌 평범한 생활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 전반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리라 봅니다.감사합니다.
150주 명언 : 자성(自省)을 통한 포용과 나눔의 가치를 되새겨 봅니다.◈ [금주 명언] - 善建者不拔하고 善抱者不脫이니라.◆ [독음] -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한자] - 착할 선/ 세울 건/ 놈 자/ 아니 불/뽑을 발// 착할 선/ 감쌀 포/ 놈 자/ 아니 불/ 벗어날 탈▶ [출전] - 『老子(노자)』 <54장>◈ [해석] - 잘 세우는 것은 뽑혀지지 않으며, 잘 감싼 것은 빠져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구풀이] ☞ 善建者不拔(선건자불발) :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진정한 무위(無爲)의 도(道)가 참으로 튼튼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면 절대로 뽑힐 수가 없다는 의미로, 참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길이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인류로까지 확대되어 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善抱者不脫(선포자불탈) : 잘 감싸 안은 것은 벗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역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가치가 충만된 세상은 무욕(無慾)의 순박한 생활철학이 가득한 진정한 이상적 세상의 실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고자 거듭 재론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해설] - 무욕(無慾)과 무지(無知)의 진리가 충만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이 실현되는 이상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도가(道家)의 원리 역시 평범한 개인의 삶이 순수하고 건강하게 영위될 때 그 원리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생활원리 자체가 순리를 따르지 않거나 시대에 역행하는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모순들이 잔존하거나 중첩된다면, 그 어떤 이상적 주장도 생활 속에 침잠할 수 없을 것입니다.금주의 명언에서 주장하는 노자의 논리 역시 심오한 無爲自然의 가치로 접근하면서 인간세계의 본질적 물음으로 응대하며 논쟁하는 철학적 가치 접근의 방법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현실 속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할 수 있는 평범한 생활 철학으로 접근될 수 있는 추동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가치를 활용하기에 손색이 없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온 세상 가득히 무위(無爲)의 도(道)가 미치기 위해서는 순박하고 건강한 삶의 가치로 진실된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출발점을 삼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와 국가, 인류로 확장시켜 나가자는 논리 노자의 역설이 다음과 같이 펼쳐집니다.“ 도로 몸을 닦으면 그 덕은 참된 것이 되고, 도를 내 집에 닦으면 그 덕은 쓰고도 남게 되고, 그 도를 내 마을에 닦으면 그 덕은 영구할 것이고, 그 도를 내 나라에 닦으면 그 덕은 풍부할 것이고, 그 도를 천하에 닦으면 그 덕은 널리 보편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몸으로 남의 몸을 보고, 내 집으로 남의 집을 보며, 나의 고을 일로 남의 고을 일을 보며, 내 나라 일로 남의 나라 일을 볼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천하가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알 수 있다. [ 修之於身 其德乃眞 修之於家 其德乃餘 修之於鄕 其德乃長 修之於國 其德乃豊 修之於天下 其德乃普 故 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鄕觀鄕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老子 同章>]”바로 이러한 논리는 현실적 효용성 차원에서는 유가(儒家)에서 표현하는 ‘明明德 親民 至於至善(명명덕 친민 지어지선)’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학지도(大學之道)의 실천적 효용성의 수용면에서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보여집니다.동양의 보편적 철학이 현대 우리 사회의 저변에 작용하는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만,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위한 동기 유발 측면에서는 거창한 철학적 논지보다는 개개인의 생활 원리가 순박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작은 구절이라도 그 효용성을 찾기에는 충분하리라 봅니다. 바로 금주의 명언이 보여주고 있는 작은 정성이 아닐까 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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