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주 명언 : 관용과 배려로 세상사는 희망을 되새겨 봅니다.◈ [금주 명언] - 尺有所短하고 寸有所長이니라.◆ [독음] - 척유소단, 촌유소장.◆ [한자] - 자 척/ 있을 유/ 바 소/ 짧을 단// 치 촌/ 있을 유/ 바 소/ 길 장▶ [출전] - 『楚辭(초사)』 《卜居(복거편)》◈ [해석] - 자[尺]라도 짧아 보이는 수가 있고, 촌(寸)이라도 길어 보이는 수가 있다.☞ 尺有所短(척유소단) : 자(尺)도 짧은 바가 있다는 뜻으로, 자[尺]는 촌(寸)에 비해서 길지만 길이를 재는 상황에 따라서는 짧아 보일 수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곧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은 상황이나 경우에 따라서 그것을 바라보는 가치 척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언제나 고정불변의 것으로 규정하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참고로 ‘寸(촌)’과 ‘尺(척)’은 길이의 단위로 寸은 ‘치’라 하고, 尺은 ‘자’라 합니다. 10寸이 1尺(척)에 해당하고, 환산하면 1寸은 3.03Cm이고, 1尺은 30.3Cm입니다. 아울러 1寸은 10分(분-푼)이고, 10尺은 1丈(장-길)입니다.☞ 寸有所長(촌유소장) : 촌(寸)도 긴바가 있다는 뜻으로, 寸(촌)은 자[尺]에 비하면 짧지만, 재는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서는 길게 보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세상의 모든 사물들과 현상들을 항상 나쁜 점만 있거나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긴 것이 나쁠 수도 있고, 짧은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떤 사물이든지 모두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에 속단하거나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해설] -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들과 상황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주관과 신념을 올바르게 지키고 키워나가는 것은 쉬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강한 의지와 올바른 신념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주변의 훌륭한 인물들을 접할 때마다 그러한 의지와 신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쌓아왔을까 하는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 분들의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이 사회를 보다 희망차게 변화시키고 만들어 나가려는 아름다운 모습들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높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극단적 의사나 행동의 표현으로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금주의 명언은 ‘尺短寸長(척단촌장)’이라는 고사성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초(楚)나라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 처음 등장하는 말로 유배를 간 굴원은 충성심만은 변함 없었지만, 답답한 마음을 풀길이 없어 당시 복관(卜官)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고, 이에 복관은 금주의 명언과 이어 “물건도 부족할 경우가 있고 지혜라도 밝지 못한 경우가 있으며, 점이라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신령함에도 통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다.[ 物有所不足 智有所不明, 數有所不逮 神有所不通. ]”고 하면서 마음과 뜻이 행하는 바대로 하라고 점괘를 말합니다. 이렇게 사물은 보는 상황과 경우에 따라서 달리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극단이나 단정으로 사물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용과 포용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관용과 포용은 개인적 수양의 값진 자산일 뿐만 아니라, 함께 나누며 공존하는 계기로 작용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양극화의 폐단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의 바탕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162주 명언 : 자기 완성의 노력과 사회 참여의 관계에 대해서...◈ [금주 명언] - 知之者不如好之者요, 好之者不如樂之者니라.◆ [독음] -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 [한자] - 알지/ 어조사 지/ 놈 자/ 아니 불/ 같을 여/ 좋아할 호/ 어조사 지/ 놈 자// 좋아할 호/ 어조사 지/ 놈 자/ 아니 불/ 같을 여/ 즐거울 락/ 어조사 지/ 놈 자▶ [출전] - 『論語(논어)』 《雍也篇(옹야편)》◈ [해석] -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으로, 단순한 수동적 지식 습득 및 암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인 능동적 관심 속에서 체득하는 것이 보다 더 값진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낙지자) :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으로, 자기 것으로 체득해 소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 실천으로 사회 속에서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참된 참여의 가치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설] - 우리는 흔히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더 값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적으나마 가지고 있는 것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단순 암기식 지식 습득에 치우친 교육 방법 및 제도에 대한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류 만능주의에 몰입된 그릇된 풍토로 인해 교육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맹목적인 성장 일변도로 인해 발생되는 많은 문제점까지 야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금주의 명언은 참된 성장과 완성의 가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아주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가치는 그저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만이 아닌 공동체의 삶 속에서 함께 나누며 공유할 때 진정한 실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지금 가진 것보다 하나를 더 갖기 위한 이기적 행위를 쉽게 목격하게 되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탐욕적 행위 또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기적 행위들이 결국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은 이루 다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은 유가(儒家) 사상의 사상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오래 전부터 진정한 학문 수양을 위한 정진의 자세로 많이 전해져 오던 명구입니다. 이렇게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학문 수양의 전형적 방법처럼 회자되던 명언이지만, 이제는 단순한 개인적 수양의 가치를 넘어 공동체적 삶의 방향을 수반할 수 있는 실천적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과 재발견에서 얻을 수 있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실천적 가치를 얻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사랑과 희망의 밝은 내일일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63주 명언 : 過猶不及의 가치를 되새겨봅니다.◈ [금주 명언] - 榮輕辱淺하고, 利重害深이니라.◆ [독음] - 영경욕천, 이중해심.◆ [한자] - 영화로울 영/ 가벼울 경/ 욕할 욕/ 천할 천// 이익 리/ 무거울 중/ 해로울 해/ 깊을 심▶ [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省心篇(성심편)〉◈ [해석] - 영화가 가벼우면 욕됨이 얕고, 이익이 무거우면 해로움도 깊다.▶ [어구풀이] ☞ 榮輕辱淺(영경욕천) : 영화로움이 가벼우면 욕됨이 얕다는 뜻으로, 지나친 명예욕이나 권력욕이 오히려 화를 부르고 욕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利重害深(이중해심) : 이익이 무거우면 해로움이 깊어진다는 뜻으로,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손해를 부르고 해로움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해설] - ‘安貧樂道(안빈낙도)’의 가치를 최고의 이상적 삶의 척도로 여겼던 과거 지식인들의 모습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단순히 고전이나 역사 속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새겨 봅니다. 더욱이 물질적 축적의 정도를 행복의 척도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일부 왜곡된 풍토 속에서는 더 없이 이질감이 드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무욕(無慾)의 가치를 되새기면서 자신을 단속하는 계기로 금주의 명언을 제시합니다.‘사랑을 받으면 욕됨을 생각하고, 편안함에 있으면 위태로움을 생각하라.[得寵思辱, 居安慮危. <同章>]’는 표현에서 자신의 개인적 절제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면, 금주의 명언에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통용되어 본질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하는 보다 큰 가치를 얻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욕이나 해로움을 당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잠언(箴言)으로도 금주의 명언은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마음의 성찰(省察)이 자기 본연의 양심을 회복하고 올바른 삶의 방향을 이끄는 가치로 작용할 때 다른 외물(外物)에 물들거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삶을 바르게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금 무욕(無慾)의 가치와 過猶不及(과유불급)의 교훈을 되새겨 봅니다.감사합니다.
164주 명언 : 마음의 수양을 통한 깊이 있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금주 명언] - 操則存하고 舍則亡하여, 出入無時하여 莫知其鄕은 惟心之謂與인저.◆ [독음] - 조즉존 사즉망 출입무시 막지기향 유심지위여 ◆ [한자] - 잡을 조/ 곧 즉/ 있을 존/ 버릴 사/ 곧 즉/ 없을 망// 날 출/ 들 입/ 없을 무/ 때 시// 없을 막/ 알 지/ 그 기/ 마을 향// 오직 유/ 마음 심/ 어조사 지/ 이를 위/ 어조사 여▶ [출전] - 『孟子(맹자)』 《告子章句上(고자장구상)》◈ [해석] - 잡으면 남아있고 버리면 사라져버려 때 없이 드나들어 정처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을 이르는 것이다..☞ 操則存 舍則亡(조즉존 사즉망) : 잡으면 있고, 버리면 없어진다는 뜻으로, 자신의 지조가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태의 마음이란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로 들고 의미입니다.☞ 出入無時 莫知其鄕(출입무시 막지기향) : 때도 없이 드나들어 정처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주관과 지조 여하에 따른 흔들림뿐만 아니라, 작은 외형적 영향에 따라서도 변화하고 흔들리는 마음에 대해 다시 강조해서 예를 들고 있는 의미입니다.☞ 惟心之謂與(유심지위여) : 오직 마음을 이르는 것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지조와 외풍에 흔들리는 마음을 단정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의미입니다.▣ [해설] - 현실의 바탕에서 자기 수양(修養)의 기치가 최우선 과제였던 유가(儒家)의 입장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 어떤 것보다 앞선 논리였습니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우리네 마음을 어떻게 해야 다잡고 올바른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대해서 많은 주장이 있었고, 맹자 역시 팽개치듯 ‘잃어버린 양심(良心)을 다시 회복[求其放心而已矣]’하는 길만이 본연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이렇게 자그마한 외풍이나 영향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약한 마음을 단련하고자 했던 수양은 오랜 세월동안 나름의 방법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연마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자세가 바로 자기수양의 바탕으로 설정된 <대학(大學)>이 제시하고 있는 정심(正心)의 가치입니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大學>]” 마음이 바른 이성의 가치로 정립되지 않으면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 현상은 작은 감각적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의 수용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을 바로 하기 위해 항상 살아있는 의식으로 자신을 단속하는 노력이 지속될 때 마음이 모든 것을 주관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바른 마음이 제자리를 잡을 때, 시청각적으로 수용되는 정보의 가치가 제대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집과 욕심으로 가득한 비이성적이고 비양심적인 검은 마음까지도 주변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맑고 투명한 마음들에게 둘러 쌓인다면 점차 희석되어 본연의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을 유도할 수 있다는 희망어린 마음으로 바른 마음을 위한 작은 노력과 실천을 다짐해 봅니다.감사합니다.
165주 명언 : 도덕적 정당성에 기초한 생활 철학의 가치를 생각해 봅니다.◈ [금주 명언] - 子帥以正이면 孰敢不正이리오.◆ [독음] - 자솔이정 숙감부정.◆ [한자] - 아들 자/ 거느릴 솔/ 써 이/ 바를 정// 누구 숙/ 감히 감/ 아니 불/ 바를 정▶ [출전] - 『論語(논어)』 《顔淵篇(안연편)》◈ [해석] - 당신이 바른 것으로 거느린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子帥以正 孰敢不正(자솔이정 숙감부정) : ‘당신이 바른 것으로 거느리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라는 뜻으로, 위정자의 입장에서 바른 정도를 실천한다면 아랫사람들도 자연히 바른 길을 따라오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帥’는 본래 ‘장수(수)’인데, ‘거느리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솔)발음이 되고, ‘率(솔)’과 같은 의미입니다. ▣ [해설] - 사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정당성이 모든 사람들의 의식의 저변에 자리잡고, 구체적 실천 운동으로 건강한 사회성이 유지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아직도 크게 개선되지 못한 도덕적 불감증에 대한 논의를 다시 제기합니다. 이러한 반복적 논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개인적 성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의 바른 방향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공자(孔子)의 정치사상에 대한 본질적 가치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금주의 명언은 당시 노(魯)나라 정치적 실권자였던 계강자(季康子)에 대한 비판적 표현이었기 때문에 실질 정치계에서 많이 인용되곤 합니다. 강한 어조로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다’라고 정치의 정의를 세우면서 직설적으로 자신의 바른 처신으로부터 모든 정치 행위가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물론 굴절된 당시 노나라의 정치 상황을 명분론(名分論)에 입각해서 바른 가치를 세우려했던 공자의 사상을 부각시키지 않더라도 워낙 본질적인 논리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 적용하더라도 직설적인 효과는 충분할 것입니다. 앞서 다루었었던 솔선(率先)의 중요성에 대한 공자의 주장[其身 正 不令而行, 其身 不正 雖令不從.(자신의 몸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여지고, 자신의 몸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느니라)<論語>] 역시 최소한의 바른 가치가 올바로 실현되는 세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할 것입니다.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많은 왜곡된 관행들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획일적 시행보다는 모든 사람들의 바른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될 때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교과서에 제시된 도덕적 정당성마저 무시되고 현실과 괴리가 생긴다면 보다 더 큰 미래의 희망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166주 명언 : 바른 언행(言行)의 신중한 실천 윤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금주 명언] - 輕諾必寡信하고 多易必多難이니라.◆ [독음] - 경락필과신 다이필다난.◆ [한자] - 가벼울 경/ 승낙할 락/ 반드시 필/ 적을 과/ 믿을 신// 많을 다/ 쉬울 이/ 반드시 필/ 많을 다/ 어려울 난▶ [출전] - 『老子(노자)』 《제63장》◈ [해석] - 가벼운 승낙은 반드시 신뢰가 적고(잃고), 쉬운 것이 많음은 반드시 어려움이 많아진다.☞ 經諾必寡信(경락필과신) : ‘가벼운 허락은 반드시 믿음이 적다’는 뜻으로, 지나친 경솔함으로 너무 쉽게 상대방에게 승낙을 하게 되면 결국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상실되어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보다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처함으로 해서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참된 가치를 잘 보전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多易必多難(다이필다난) : ‘쉬움이 많은 것은 반드시 어려움이 많게 된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안일하고 쉽게 대처하게 되면 결국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보다 더 어렵고 신중하게 실천해 나간다면 오히려 아무런 어려움 없이 더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 [해설] -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작고 사소한 일이나 별 생각 없이 저지르는 잘못들이 결국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경솔함은 항상 삶의 경계에 있어서 우선시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러한 경솔함이 자신의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단순한 실수의 단계를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하기도 합니다.튼튼한 기반과 노력의 과정을 무시하고 조급하게 최고와 제일만을 지향하다가 벌어지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면, 금주의 명언에서 노자가 역설하려 했던 신중(愼重)하고 치밀(緻密)한 생활 태도는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대를 꿰뚫는 삶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것에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일어난다. 이 때문에 성인은 결코 큰일을 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큰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同章>]이와 같은 노자의 역설적 주장은 곧 우리들의 미숙하고 가벼운 삶의 자세를 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거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노자는 여기에 한 가지 더 값진 가치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원망에 보답하길 덕(德)으로써 한다.[報怨以德(보원이덕)]’는 것입니다. 이러한 포용력은 보다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보듬고 감싸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값진 가치가 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67주 명언 : 신중함과 경솔함의 조화로운 실천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금주 명언] - 雖有智慧라도 不如乘勢하고, 雖有鎡基라도 不如待時니라.◆ [독음] - 수유지혜 불여승세 수유자기 불여대시.◆ [한자] - 비록 수/ 있을 유/ 지혜 지/ 지혜 혜/ 아니 불/ 같을 여/ 탈 승/ 형세 세// 비록 수/ 있을 유/ 호미 자/ 호미 기/ 아니 불/ 같을 여/ 기다릴 대/ 때 시▶ [출전] - 『孟子(맹자)』 《公孫丑章句 上篇(공손추장구 상편)》◈ [해석] - 비록 지혜로움이 있더라도 운세를 타느니만 못하고, 비록 농기구가 있더라도 때를 기다리느니만 못하다.☞ 雖有智慧 不如乘勢(수유지혜 불여승세) :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운세를 타느니만 못하다’는 뜻으로, 어떠한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려 하더라도 아주 운 좋게 쉽게 이루어지는 결과에 대해서는 당해낼 수 없는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많은 재능과 능력을 지녔더라도 상황과 시기에 맞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더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雖有鎡基 不如待時(수유자기 불여대시) : ‘아무리 농기가 있어도 때를 기다리느니만 못하다’는 뜻으로, 우수하고 편리한 농기구를 아무리 잘 갖추고 있더라도 당장 싹이 나오게 하고 수확을 거둬드릴 수는 없는 것이듯이 때에 맞게 시기를 잘 이용해야 더 편리하고 더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바른 시기에 맞는 분명한 실천력이 동반될 때 보다 더 분명한 효과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基(기)는 錤(기: 호미)의 의미입니다.] ▣ [해설] -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합니다. 또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짠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더라도 제대로 활용을 못한다면 그 재료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한정 구슬을 꿰고만 있을 수도 없고, 소금을 무한정 넣어도 안 됩니다. 적당한 양을 사용해야 멋진 보배와 맛있는 음식 맛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아무런 활용을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경솔한 대처나 맹목적 접근으로 낭패를 당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결국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과 능력을 계발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나면 그러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고 알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다양한 경험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금주의 명언은 맹자가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제(齊)나라가 모든 배경적인 조건이 잘 갖추어진 때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인용한 당시의 속담 구절입니다. 맹자의 주장은 이전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은 아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덕을 베풀어 후대까지 이름을 드날리게 된 성군이 되었지만, 맹자 당시의 제나라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인정(仁政)을 베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백성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맹자의 주장은 언제나 진정한 임금은 여민동락(與民同樂)할 수 있는 왕도(王道)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제나라의 상황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왕도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나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한 때 삼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자성의 소리와 함께 실천이 따르지 않는 무분별한 주장만 난무하는 상황을 모두 겪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들의 모습은 대화와 타협보다 맹목적 자기 외침이나 경솔한 상황 대처로 좌충우돌(左衝右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보다 신중하면서도 보다 더 가시적인 실천 가능한 노력이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양보와 포용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중심이 되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사회 정의의 참된 실현을 위해 모두의 분발이 필요하리라 봅니다.감사합니다.
168주 명언 : 배려와 사랑의 따뜻한 삶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금주 명언] - 口舌者는 禍患之門이요, 滅身之斧也니라.◆ [독음] - 구설자 화환지문 멸신지부야.◆ [한자] - 입 구/ 혀 설/ 놈 자/ 재앙 화/ 근심 환/ 어조사 지/ 문 문/ 멸할 멸/ 몸 신/ 어조사 지/ 도끼 부/ 어조사 야▶ [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 《言語篇(언어편)》◈ [해석] -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몸을 망치는 도끼이니라.☞ 口舌者 禍患之門 滅身之斧也.(구설자 화환지문 멸신지부야) : 입과 혀라는 것은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몸을 멸하는 도끼이니라. 곧 신중하지 못한 말은 온갖 재앙과 환난의 근본이 되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무서운 도구가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와 같이 작은 부정의 경계는 보다 더 큰 긍정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잠언(箴言)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형적인 구절입니다.▣ [해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의 소중함이나 신중함에 대한 역설들은 언제나 쇠락을 모를 정도로 우리들의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는 값진 양식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모습이 다소 미흡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의사표현의 신중함에 대한 잠언들이 재론의 재론을 거듭하더라도 그 가치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금 금주의 명언에서 말의 신중함에 대한 잠언을 제시하는 이유 역시 언어 구사의 적절성과 신중성과 함께 언행의 올바른 실천을 되새기는 작은 당부와 바람 때문입니다. 말의 신중함은 또 이런 명언을 만들어 냅니다.“남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가 마치 부드러운 솜과 같지만, 남을 해치는 말은 그 날카롭기가 마치 뾰족한 가시와 같다. 그러니 일언반구라도 그 소중함은 천금의 가치가 있고, 한마디 말이라도 남을 해치는 것은 그 아프기가 마치 칼로 베는 것 같다”(利人之言 煖如綿絮, 傷人之語 利如荊棘, 一言半句, 重値千金, 一語傷人, 痛如刀割. <同章>)반갑고 다정하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 뿐만아니라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밝고 건강한 생활 자세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작지만 값진 가치를 되새기며 다시금 작은 실천을 시작할 때입니다. 감사합니다.
169주 명언 : 공존과 공유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를 위해서..◈ [금주 명언] - 人之過也는 各於其黨이니, 觀過에 斯知仁矣니라.◆ [독음] -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 [한자] - 사람 인/ 어조사 지/ 허물 과/ 어조사 야/ 각각 각/ 어조사 어/ 그 기/ 무리 당/ 볼 관/ 허물 과/ 이 사/ 알 지/ 어질 인/ 어조사 의▶ [출전] - 『論語(논어)』 《里仁篇(이인편)》◈ [해석] - 사람의 허물은 각기 그 유형에 따라 있으니, 허물을 보면 이에 그 어짐을 알 수 있다.☞ 人之過也 各於其黨(인지과야 각어기당) : ‘사람의 허물이란 것은 저마다 그 유형이 있다’는 뜻으로, 여기서 ‘黨(당)’은 보통 무리나 집단의 의미로 비슷한 색깔을 드러내는 그런 부류의 동류(同類)라는 뜻으로 보는데, 자신의 사고(思考)와 행위(行爲)의 범주는 자신이 처한 동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실수나 허물 역시 그러한 동일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觀過 斯知仁矣(관과 사지인의) : ‘허물을 보면 이에 그 어짐을 알 수 있다’는 뜻인데, 누구나 살아가면서 벌어지고 일어나는 실수나 허물은 결국 그 사람의 범주에서 형성되어 온 그자신의 됨됨이가 자연스럽게 반영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설] - 환경 요인의 중요성은 三遷之敎(삼천지교)의 고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귤화위지(橘化爲枳)나 마중지봉(麻中之蓬)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보다 나은 환경과 여건을 위해 개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결국 사회를 발전시켜온 동기와 요인이 되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의 노력이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에만 우선순위를 삼았을 때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소외계층이 발생하는 양극화(兩極化)와 같은 모순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문제점들을 방치한다면 과거보다 외형적 발전을 있을 수 있지만, 보다 더 나은 방향의 사회를 보장하거나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금주의 명언으로 제시한 구절은 예로부터 다양한 해설과 공자(孔子) 사상의 본질적 물음까지 다루어왔던 다소 이설(異說)이 있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이미 도식화 된 군자와 소인의 인간됨의 구분으로 그 사람의 허물과 실수까지 필연적 선악(善惡)으로 규정하거나, 인간성에 대한 규격화된 결과론으로 접근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그럼에도 금주의 명언에서는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본질적 물음에 대해서는 개인이 처한 집단이나 동류의 범주에서 또 다른 척도를 찾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환경과 범주를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개인적 인산성의 회복 뿐 만아니라 사회정의의 회복까지 함께 이루어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자 합니다.이는 결국 이미 고착되어 있는 편협한 환경에 지배되는 삶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을 올바른 방향의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들만의 잔치나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 모두가 공감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의 희망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감사합니다.
170주 명언 :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가득하길 기원하면서...◈ [금주 명언] - 君子는 不鏡于水하고 而鏡于人하니라.◆ [독음] - 군자 불경우수 이경우인.◆ [한자] - 임금 군/ 아들 자/ 아니 불/ 거울 경/ 어조사 우/ 물 수/ 말이을 이/ 거울 경/ 어조사 우/ 사람 인▶ [출전] - 『墨子(묵자)』 《非攻篇(비공편)》◈ [해석] - 군자는 물로 거울을 삼지 않고,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不鏡于水 而鏡于人(불경우수 이경우인) : ‘물로 거울을 삼지 않고 다른 사람을 거울로 여기다’는 뜻으로, '于(우)' 대신 '於(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근자에는 '無鑑於水(무감어수)'로 의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묵자의 본의는 전쟁의 폐단은 국가의 존망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非攻(비공)’의 논리를 역설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외형적 자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일시적 성과가 있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해치는 결론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 물로 거울을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을 찾을 수 있다면 보다 본질적인 자신의 본 모습을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의미로 표현한 것입니다. 묵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로 거울을 삼으면 얼굴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길흉(吉凶)을 볼 수 있다.[ ‘鏡于水 見面之容, 鏡于人 則知吉與凶. ]”▣ [해설] - 또 다시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의 인사와 덕담을 주고받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마다 주변의 모습을 돌아보고 보다 나은 방향의 미래 모습을 그려 보면서 다시금 타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되새겨 보는 일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각박한 우리의 현실에서는 더욱 가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에서 묵자(墨子)가 말하고 하는 바를 인류의 평화를 바탕으로 한 겸애(兼愛)의 주장으로 크게 이해하거나, 작게 개인적인 수양의 차원에서 자기겸손의 자세로 받아들이더라도 무관합니다. 보다 근본적인 가치는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삶의 자세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가치가 중심이 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의 자세는 결국 우리들의 행동거지까지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시금 ‘돌이켜서 자신에게서 구한다’는 ‘反求諸己(반구저기)’의 가치를 되새기는 마음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또 다시 사랑과 나눔의 가치가 구호로 들려오더라도 식상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새 해에는 지난 과거보다 보다 더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생소하거나 꺼려지지 않는 포근한 마음자세가 모든 분들의 마음속에 가득하길 기원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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