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주 명언 : 보다 건강한 도덕성 책무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해 봅니다.◈ [금주 명언] - 君子는 務本이니 本立而道生이니라.◆ [독음] - 군자 무본, 본립이도생.◆ [한자] - 임금 군/ 아들 자/ 힘쓸 무/ 근본 본// 근본 본/ 설 립/ 말이을 이/ 도리 도/ 날 생▶ [출전] - 『論語(논어)』 <學而篇(학이편)>◈ [해석] -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날 것이다.▶ [어구풀이] ☞ 君子 務本(군자 무본) :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뜻으로, 도덕적 가치관을 최우선의 덕목으로 삼는 군자의 기본적인 책무로 모든 사물의 본질적인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本立而道生(본립이도생) : 근본이 서면 도가 생겨난다는 뜻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건강하고 건전한 가치관이 바탕이 된 인격 형성이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확고한 도덕적 삶의 실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고,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사회질서의 기본적인 가치가 올바로 형성되면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측면으로도 접근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해설] - 윤리적 전통이 강하게 토착된 동양의 정서 속에서 인격(人格)의 완성체로까지 규정하고 설정된 ‘君子(군자)’에 대한 정의는 그 대칭적 인간형인 ‘小人(소인)’에 대한 매몰찬 비판과 함께 이상적 가치 실현이라는 고결한 가치와 책무를 부여받아 왔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고 몽매한 민중들을 선도한다는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군자다움’에 대한 논의는 孔子 당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安貧樂道(안빈낙도)의 이상 추구 속에서 엄격한 자기절제의 책무를 이상적 전형으로 제시하고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지엽말단(枝葉末端)을 배격하고 본질에 힘쓰는 君子의 가치는 개인적 도덕성의 제고 뿐만아니라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건강한 가치규범을 뿌리내리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효용가치는 막중하다는 것이 금주의 명언에 담긴 가치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이상적 가치규범의 실천에 있어서 공자(孔子)는 무엇보다 가깝고 쉬운 자신의 주변으로부터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효도(孝道)와 공경(恭敬)이라는 것이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 [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同章> ]”결국 공자가 제시하고 있는 인간다움의 회복은 기본적인 인간 도리(道理)의 실천이라 할 수 있는 효제충신(孝悌忠信)으로부터 시작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공존과 화합의 이상적 가치 실현의 입장에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바른 계승 및 발전은 언제나 隨時處中(수시처중)을 소중한 가치 척도로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효도(孝道)와 공경(恭敬)의 덕목은 사랑[愛]과 자애로움[慈]이 더해질 때 그 가치가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듯이 언제나 일방적 진행이 아닌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공유하고 공존할 수 있는 조화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그럼으로 해서 이러한 공유 의식의 발로가 공자(孔子)의 정명논리(正名論理)와 혼일될 때 전통적 가치가 우리 현실 속에서 그 생명의 빛을 힘껏 발하게 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52주 명언 : 다시금 새 해를 맞이하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 봅니다.◈ [금주 명언] - 欲觀千歲 則審今日하고, 欲知億萬 則審一二니라.◆ [독음] - 욕관천세 즉심금일, 욕지억만 즉심일이.◆ [한자] - 하고자할 욕/ 볼 관/ 일천 천/ 해 세/ 곧 즉/ 살필 심/ 이제 금/ 날 일// 하고자할 욕/ 알 지/ 억 억/ 일만 만/ 곧 즉/ 살필 심/ 한 일/ 두 이▶ [출전] - 『荀子(순자)』〈非相篇(비상편)〉◈ [해석] - 천 년을 보고자 한다면 오늘을 살피고, 억만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 둘을 살펴야 한다.▶ [어구풀이] ☞ 欲觀千歲 則審今日(욕관천세 즉심금일) : 천 년 앞을 보고자 한다면 오늘을 살펴보라는 뜻으로, 먼 장래의 일을 알려고 한다면 먼저 오늘의 일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欲知億萬 則審一二(욕지억만 즉심일이) : 억만을 알고자 한다면 하나 둘을 살피라는 뜻으로,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들이 실마리를 풀어나가면 억만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을 모두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설] - 다시금 세모(歲暮)의 훈훈한 정을 나누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기가 돌아왔습니다. 이젠 ‘사랑’이라고 말하던 지난 한 해의 시작을 아직 정돈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또 다시 새로운 한 해의 말하고 있는 모습을 돌아볼 때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편린들이기에 어쩔 수 없나 봅니다.그럼에도 또 다시 登高自卑(등고자비)로 한 해와 새 해를 함께 조감해 보고자 합니다. 시작이 있었기에 마무리가 있듯이 작고 낮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삶의 방향은 언제나 처음처럼 변함 없는 가치를 잃지 않는 자세가 참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알고 하나로 만을 알며, 미명으로부터 밝음을 알게된다’[ 以近知遠, 以一知萬, 以微知明. <同章>]는 순자(荀子)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보며 지금의 모습을 통해서 내일의 모습을 그려보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등고자비(登高自卑)의 바른 실천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친다면 또 다시 세모의 시기에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 둘을 살펴 억만을 아는 것만이 아닌 그 하나 둘과 함께 하고 서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더 소중한 가지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봅니다.그것은 작고 낮은 곳을 지향하는 무욕(無慾)의 마음이라도 좋고, 청빈(淸貧)의 가치로 바른 가치를 회복하는 실천의 행동이라도 좋습니다. 그렇기에 ‘小國寡民(소국과민)’을 외치던 노자의 말씀이나 ‘安貧樂道(안빈낙도)’를 역설한 공자의 실천 모두가 우리 주변에서 함께 나누어야 할 소중한 참된 가르침인 것입니다.한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복 된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153주 명언 : 개인적 수양이 사회적 책무로 확장됨을 확인해 봅니다.◈ [금주 명언] - 富潤屋이요 德潤身이니 心廣體胖이니라.◆ [독음] - 부윤옥 덕윤신, 심광체반.◆ [한자] - 부유할 부/ 윤택할 윤/ 집 옥/ 덕 덕/ 윤택할 윤/ 몸 신// 마음 심/ 넓을 광/ 몸 체/ 편안할 반 ▶ [출전] - 『大學(대학)』◈ [해석] - 부귀함은 집안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자신을 윤택하게 하니, 마음이 넓으면 몸이 편안해진다.☞ 富潤屋(부윤옥) : 부유함은 집안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으로, 기본적인 의식주가 선결된 상태의 가정 경영이라야 최소한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로 볼 수 있습니다.☞ 德潤身(덕윤신) : 덕행은 자신의 몸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으로, 건전한 삶의 가치를 바탕으로 외부로 발현되는 덕행(德行)이라면 그 효과는 단순한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값진 자신이 됨을 대구의 의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心廣體胖(심광체반) : 마음이 넓으면 몸도 편안하다는 뜻으로, 외적 행동이 이미 어떤 외물(外物)에도 구애받음이 없이 편안하고 넓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거지(行動擧止) 역시 편안하고 너그럽게 실천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해설] - 우리들은 흔히 삶의 가치나 방향을 논하는 자리에서 내강외유(內剛外柔)를 많이 거론합니다. 내실을 강인하고 확고하게 견지한 바탕에서 외부로 표출되는 실천 자세를 오히려 부드럽게 유지함으로 해서 포용력과 친화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주장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돌아볼 때 진정 內剛外柔를 견지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기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이렇듯 고금을 막론하고 군자(君子)의 덕(德)을 갖춘 도덕적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근자의 언론지상에 오르내리는 고위공직자 등의 왜곡된 도덕 관념으로 인한 탈편법적 행태를 접할 때, 맹목적인 일방적 비난을 쏟아낼 수 있는 깨끗한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하고 되돌아보면 역시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의 건강성과 청결성의 척도를 논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중첩되곤 합니다.군자의 덕을 실천할 수 있는 도덕적 가치의 실천방향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大學(대학)》에서 출전을 찾을 수 있는 금주의 동양명언이 外剛內柔의 가치를 확고하게 담보할 수 있는 개인적 수양 차원의 협의의 의미 이해로부터 출발했다면, 心廣體胖(심광체반)의 가치 실현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건강도의 확인은 광의의 효과로 생각하기에 충분하리라 봅니다.금주의 명언에 이어지는 군자의 책무인 성의(誠意)의 가치를 확인[ 故 君子 必誠其意. <同章>]하면서,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체득보다 성의정심(誠意正心)의 가치가 더 소중하게 여기지는 현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볼 때, 지덕체(智德體)의 균형적 건강을 이룰 수 있는 조화로운 인간 유형의 완성을 위해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54주 명언 : 개인적 신뢰의 바탕이 사회적 공동체의 책무임을 확인해 봅니다.◈ [금주 명언] - 明鏡은 所以察形이오 往者는 所以知今이니라.◆ [독음] - 명경 소이찰형, 왕자 소이지금.◆ [한자] - 밝을 명/ 거울 경/ 바 소/ 써 이/ 살필 찰/ 모양 형// 갈 왕/ 놈 자/ 바 소/ 써 이/ 알지/ 이제 금▶ [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 《省心篇(성심편)》◈ [해석] - 밝은 거울은 모양을 살피는 것이요, 지나간 일은 지금을 아는 것이다.☞ 明鏡 所以察形(명경 소이찰형) : 밝은 거울을 보는 이유는 모양을 살피기 위한 때문이라는 뜻으로, 표면적인 의미는 외형적 치장에 치중하는 이유는 자신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도구 등을 활용한다는 비유적 표현으로 볼 수 있으나, 기저에 깔린 의미를 부여해 보면 자신의 현재 행동을 볼 수 있는 수단의 하나인 외형적 척도의 비유를 밝은 거울에 둠으로써 모든 행동거지를 투명하게 비춰볼 수 있는 도구이자 타인에게도 언제나 드러나 감출 수 없는 도구로 거울을 활용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往者 所以知今(왕자 소이지금) : 지난 일을 돌이켜 보는 것은 지금을 알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지난 행동들을 돌아보는 것은 바로 지금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척도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해서 일상의 행동에 신중함을 자각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해설] - 근자의 우리 사회의 투명도와 건강도의 척도는 과거의 권위주의 시절의 사회상보다 많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변화의 폭을 실감하곤 합니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이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이지만, 이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에 물들어 있던 일부 사람들의 크고 작은 항변의 모습에 아직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이 남아있는 것도 우리의 현실일 것입니다.아무튼 아직 사회적 건강도가 만족할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도덕적 가치가 완전히 무시되는 일이 이제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위안을 삼는다면, 그나마 희망이란 단어가 더욱 제 빛을 낼 수 있는 토대가 다져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금주의 명언에서 제시하고 하는 의미는 과거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자성(自省)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공동체적 가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합니다. 건강도를 재는 척도는 역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언제나 공동체적 책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자신의 언행이 담보되고 보장될 때 높이 올라갈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아울러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적 지도 계층 사람들의 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행동과 사회적 책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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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주 명언 : 바른 삶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포용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금주 명언] - 寵辱若驚하고 貴大患若身이라.◆ [독음] -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한자] - 총애할 총/ 욕될 욕/ 같을 약/ 놀랄 경// 귀할 귀/ 큰 대/ 근심 환/ 같을 약/ 몸 신▶ [출전] - 『老子(노자)』 《제13장》◈ [해석] - 총애와 굴욕에 마치 놀라는 것처럼 하고,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마치 자신의 몸 같이 한다. ☞ 寵辱若驚(총욕약경) : 총애와 오욕에 대해 놀라는 것처럼 한다는 뜻으로, 세상의 명예나 영예를 얻는 일이나 치욕과 굴욕을 겪는 일 등은 표면적으로는 상대적인 극과 극으로 보이지만 모두 인간의 삶 속에서 쉽게 마주치는 현상들이기에 이러한 현실세계의 현상들에 대해 초월할 수 있는 가치를 얻는 길은 역시 조심스럽고 신중한 대처로부터 이룰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세속적 삶으로만 접근하면 명예나 권력의 추구가 지상과제가 될 수 있으나, 결국 그러한 명리로 인해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일을 흔하게 접하면서 치욕에 대한 도피나 모면 보다 더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 바로 명리 추구의 과정과 결과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구절로 볼 수 있습니다. ☞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 :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자신의 몸과 같이 한다는 뜻으로, 큰 근심인 大患 역시 세속적 삶에서 추구하는 명리(名利)를 의미하는데, 바로 대환의 원인과 결과를 양산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시 寵辱若驚과 유사하게 명리 추구의 세속적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이러한 명리 추구를 자신의 삶에 직결시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처럼 세상의 명리를 신중하게 접근한다면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해설] -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진 위에 왜곡된 개인주의가 이기적 삶의 양태로 변질된 현대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그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비민주적이고 맹목적인 권위주의가 팽배하던 과거에 비해 보다 투명하고 건전한 사회 풍토로 변화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다시금 우리 사회가 옮겨가야 할 이상적 사회상을 이루기 위해 전통의 고전속 행간에 녹아있는 진실된 가치를 엮어나는 작업 역시 의미 있는 일임을 자부하고자 합니다.극과 극이 통한다는 논리를 단순히 양비론적 시각으로만 해석하면서 부정적 가치판단의 혼탁함으로 사회의 불균형적 기득권 질서만을 강요하고 있는 아직까지도 잔존하는 일부 이기적 부류의 비민주적 행태들을 너무 오래도록 보아왔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정의의 질서를 회복하기까지 아직도 많은 난관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금주의 명언이 제시하고 있는 무욕(無慾)의 가치를 사회 질서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타인과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바른 삶의 가치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자신의 몸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타인의 몸을 귀중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몸을 명리를 쫓는 도구로만 함부로 쓰고 있으니 어찌 곤경과 파멸에 이르지 않겠는가?’ 곧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어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야말로 천하를 맡길 수 있고, 자기 몸을 아껴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야말로 천하를 맡길 수 있는 것이다.[ 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托天下. <同章>]”결국 진실한 무위(無爲)의 가치를 체득한 사람이어야 만이 얽힌 실타래를 순리대로 풀어나가듯이 왜곡된 현실세계의 혼돈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 개인적 차원으로도 작은 염치(廉恥)를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56주 명언 : 過猶不及이 바탕이 된 이상적 사회 정의의 실현을 되새겨 봅니다.◈ [금주 명언] - 門內之治는 恩揜義하고 門外之治는 義斷恩이니라.◆ [독음] - 문내지치 은엄의, 문외지치 의단은.◆ [한자] - 문 문/ 안 내/ 어조사 지/ 다스릴 치/ 은혜 은/ 가릴 엄/ 의리 의// 문 문/ 바깥 외/ 어조사 지/ 다스릴 치/ 의리 의/ 끊을 단/ 은혜 은▶ [출전] - 『禮記(예기)』 《喪服四制篇(상복사제편)》◈ [해석] - 문 안의 다스림은 은혜로움이 의리를 덮어야 하고, 문 밖의 다스림은 의리가 은혜로움을 단절해야 한다. ☞ 門內之治 恩揜義(문내지치 은엄의) : 문 안의 다스림은 은혜로움이 의리를 가려야 한다는 뜻으로, ‘門內’는 곧 가정을 의미하는 것이고, 가정의 가족 상호간 구성원리는 무엇보다 사랑과 은혜가 바탕이 된 화목(和睦)의 가치가 가족 원리의 덕목으로 자리잡아야 된다는 의미인데, 이는 유가의 이상적 가치 실현의 본질적 바탕을 효제(孝悌)에서 찾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수양의 틀이 그 전형을 갖추는 시발점으로 가족 구성원간의 사랑과 화목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門外之治 義斷恩(문외지치 의단은) : 문 밖의 다스림은 의리가 은혜로움을 단절해야 한다는 뜻으로, ‘門外’는 사회나 국가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회 구성원간의 본질적 가치 원리는 최소한의 정의와 원칙이 바로 선 바탕에서 관용과 포용의 덕목이 공동체적 사회 구성의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다소 엄격한 사회 공동체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설] - 유학(儒學)의 기본 원리인 ‘자기 수양을 바탕으로 한 사회 공동체의 건설’의 기치 ‘修己治人(수기치인)’의 가치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개인적 수양이 사회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가치 실현의 접근은 역시 가정의 질서가 무엇보다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어른에 대한 효도(孝道)와 공경(恭敬)의 덕목이 개인적 수양의 완성체계를 설명함과 동시에 사회 전반을 꿰뚫을 수 있는 이상적 가치 실현의 대상으로까지 연장시키고 있는 주장[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효도와 공경은 인을 행하는 근본일 것이다). <論語>]들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상적 사회와 국가 건설의 요체를 개인적 인격 수양의 틀로부터 찾으려는 개인과 사회의 강한 결속이 그 바탕에 깔려있는 가치 논리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그 틀을 벗어난 사회와 국가 영역에서의 원리 작용은 단순히 동일시되거나 완전히 다른 체제로 접근해서는 원활한 사회 구성의 가치가 실현되지 못함은 분명합니다. 두 가지 다른 영역 속에서 본질적 가치의 실현과 이상적 사회관의 완성을 함께 이룰 수 있는 방향제시를 하고 있는 것이 금주의 명언이 지닌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치 실현의 방향 제시는 단순한 중세의 시대적 한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는 수단으로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이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예로부터 사사로운 감정이나 정에 이끌려 대의를 해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은혜를 과도하게 베풀면 도리어 원망을 받게되고, 사랑이 지나치게 넘치면 도리어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恩深則怨生 愛多則憎至. <亢倉子>]’는 옛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공동체 사회의 가치를 해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행위들을 쉽게 접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망각한 몰지각한 행위들이 넘쳐나는 사회적 병폐 속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랑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 모델을 고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일은 개인적 기쁨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물론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가치를 바탕에 두고 이루어지는 이상적 실천이 아니라면 문제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도를 넘어선 삭막한 ‘냉정주의’만이 모든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온정과 냉정의 사이에서 자칫 왜곡되거나 편협한 판단이나 선택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본질적인 사회 정의의 가치를 체득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적 통념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사회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한 공동체 사회 속에서의 진정한 정직함이란 ‘가족의 잘못을 냉정하게 고발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기는 데에서, 진실로 강직함을 찾을 수 있다[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論語> ]’ 논리가 왜곡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57주 명언 : 심신의 단련과 수양을 얻을 수 있는 바른 조화를 생각해 봅니다..◈ [금주 명언] - 逸生於勞而常休하고, 樂生於憂而無厭이니라.◆ [독음] - 일생어로이상휴, 낙생어우이무염.◆ [한자] - 편안할 일/ 날 생/ 어조사 어/ 수고로울 로/ 말이을 이/ 항상 상/ 쉴 휴// 즐거울 락/ 날 생/ 어조사 어/ 근심 우/ 말이을 이/ 없을 무/ 싫증낼 염▶ [출전] - 『明心寶鑑(명심보감)』〈정기篇(정기편)〉◈ [해석] - 마음의 편안함은 몸의 수고로움에서 생겨야 항상 편안하고 도의 즐김은 마음의 근심에서 생겨야 싫증이 없는 것이라.▶ [어구풀이] ☞ 逸生於勞而常休(일생어로이상휴) : ‘逸’은 마음이 편안함을 얻은 것을 말하는데, 그 편안함이 육체의 건강한 노동과 노력을 성취해서 얻어지는 것이라야 진정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休’는 불안함 없이 진정으로 편하게 쉬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樂生於憂而無厭(낙생어우이무염) : ‘樂’ 역시 아무리 큰 즐거움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음과 정신의 바른 가치관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야 오래도록 즐거움의 가치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해설] - 근자에 유행처럼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웰빙’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사회적 현상처럼 사람들의 생활 습관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하게 됩니다. 의식주 전반에 퍼지고 있는 웰빙 바람으로 인해 과거의 다소 획일적인 풍토나 맹목적 성과지향의 습성 등을 완화시키고 변화시킨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큰 부분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질이 향상되는 바탕에 보다 근본적인 자기 완성의 바른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외형적이고 피상적인 성장은 또 다른 사회적 병폐를 만들 수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회 양극화의 심각한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공동체적 삶의 사회적 공감대를 올바르게 형성할 수 있는 바른 가치관의 정립은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사람들이 추구하고 누리려고 하는 안락(安樂)함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깊이 있게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금주의 명언이 주는 교훈입니다. 육체가 편안하면 정신도 편안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육체의 노동과 노력이 수반되는 바탕 속에서 편안함을 얻어야 그것이 진정한 마음의 편안함이 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깊이 되새겨야 할 가치입니다. 또한 노동이나 노력보다 일신의 편안함을 더 찾으려는 나태함은 단순히 개인의 육체적 비만을 초래하는 피상적 문제보다 노동과 노력을 통해서 얻으려는 건전성보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한탕주의에 빠지는 반사회적 풍토까지 조장하게 되는데 그 심각성이 더하다는 것입니다.금주의 동양명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편안할지언정 육체는 수고롭지 않으면 아니 되고, 도를 즐길지언정 마음은 근심하지 않으면 아니 되니, 몸이 수고롭지 않으면 게을러서 피폐해지기 쉽고, 마음이 근심하지 않으면 거칠고 음란하여서 안정되지 않는 것이다. [ 心可逸 形不可不勞, 道可樂 心不可不憂. 形不勞則怠惰易弊 心不憂則荒淫不定. <同章>]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참된 건강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건전한 가치를 잃지 않는 자세를 간직하시기 바랍니다.“편안하게 즐기려는 자가 어찌 근심과 수고로움을 잊을 수 있겠는가?” [ 逸樂者 憂勞 豈可忘乎. <同章> ]감사합니다.
158주 명언 : 나눔과 배려가 우선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금주 명언] - 自見者不明하고, 自是者不彰하며, 自伐者不功하고, 自矜者不長이니라.◆ [독음] - 자현자불명 자시자불창, 자벌자불공 자긍자불장◆ [한자] - 스스로 자/ 드러낼 현/ 놈 자/ 아니 불/ 밝을 명// 스스로 자/ 옳을 시/ 놈 자/ 아니 불/ 빛날 창// 스스로 자/ 뽐낼 벌/ 놈 자/ 아니 불/ 공 공// 스스로 자/ 자랑할 긍/ 놈 자/ 아니 불/ 길 장▶ [출전] - 『老子(노자)』〈24章(장)〉◈ [해석] - 스스로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하는 사람은 빛나지 않으며,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이룰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구풀이] ☞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자현자불명 자시자불창) :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사람은 빛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자기 자신만을 드러내려하고 옳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고, 다른 사람보다 두르러지게 드러나는 것도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곧 타인과 사회 속에서의 공존과 공유가 아닌 허식(虛飾)에 사로잡힌 자만으로 인해 바른 가치를 얻지 못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見’은 (견)으로 보는 견해와 (현)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견)으로 보면 ‘자기 눈만 본다’는 뜻에서 자기 주관만 따른다는 뜻이 되고, (현)으로 보면 자신만을 드러낸다는 뜻이 됩니다.☞ 自伐者不功 自矜者不長(자벌자불공 자긍자불장) :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공을 이룰 수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자기 과시와 자랑을 일삼게 되면 결국 공도 헛되게 되고 오래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앞 구절에 이어서 허위에 빠진 쓸모 없는 행위로 인해 올바른 가치마저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伐’은 본래 ‘치다’, ‘베다’는 뜻이지만, ‘자랑하고 뽐낸다’는 뜻도 있습니다. ▣ [해설] - 밀림과 같은 자연 속에서나 통용되던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이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삭막한 현실을 드려다 보면, 강자가 약자를 감싸기보다는 자신들의 논리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려는 데서 야기되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는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희망과 공존을 화두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내일을 흐리게만 할 수는 없다는 너무도 단순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에서 노자가 역설하고 있는 주장은 아주 간결합니다. 허위(虛僞)로 가득 찬 인간들의 허망한 행위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무욕(無慾)을 바탕으로 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강조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꿈치를 들고 서 있으면 오래 서있을 수 없고, 다리를 벌려 머뭇거리면 오래 걸어갈 수 없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同章>]” 바로 헛되고 억지스러운 행위로는 절대로 제자리를 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자는 이러한 허위로 치장된 억지 행위들은 ‘먹다 남은 찌꺼기 밥이고, 쓸데없는 행위[餘食贅行]’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체득할 때만이 참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서로 배려하며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은 탐욕과 이기로 사로잡힌 허식(虛飾)을 떨쳐버리고자 노력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나눔과 기부의 문화가 인색하기만 한 우리 사회에서도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선행을 하는 분들이 있기에 아직은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나눔이나 배려를 넘어 현재 우리 사회 전반을 강하게 휘어 감고 있는 메마른 강자의 논리를 억제하고 함께 나누며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우리 모두의 더 많은 참여와 실천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탐욕[貪(탐)]과 성냄[瞋(진)]과 어리석음[痴(치)]’이라는 인간의 삼독(三毒)을 치유해야 한다는 불가(佛家)의 가르침 역시 인간의 허위를 바로잡아 참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는 점에서는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감사합니다.
159주 명언 : 자기 수양의 근본적 자세에 대해서 되새겨 봅니다..◈ [금주 명언] - 見賢思齊하며, 見不賢而內自省也이니라.◆ [독음] - 견현사제, 견불현이내자성야.◆ [한자] - 볼 견/ 어질 현/ 생각할 사/ 가지런할 제// 볼 견/ 아니 불/ 어질 현/ 말이을 이/ 안 내/ 스스로 자/ 살필 성/ 어조사 야▶ [출전] - 『論語(논어)』〈里仁篇(이인편)〉◈ [해석] - 어진 이를 보면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며, 어질지 못한 이를 보거든 속으로 스스로 반성할지니라.▶ [어구풀이] ☞ 見賢思齊(견현사제) : 어진 이를 보면 가지런해지기를 생각하라는 뜻으로, 부러움을 살 수 있는 훌륭한 선행을 하는 사람을 접하면 당연히 자신도 그와 같은 선행을 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 見不賢而內自省也(견불현이내자성야) : 어질 지 못한 이를 보면 안으로 스스로를 반성하라는 뜻으로, 부족하고 잘못된 악행을 하는 사람을 접하면 단순히 그 악행을 꾸짖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역시 그와 같은 악행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나 두려워하며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해설] - 타인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우리 사회의 아쉬운 단면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자화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서 여간해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욕심에 대한 자기 반성과 성찰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 수양을 길을 찾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생활 속 삶의 모습은 언제나 타인과의 삶과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타인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알아나가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자기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은 곧 자신이 바라보는 타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타인의 모습은 결국 자신의 거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관용과 포용으로 타인을 감싸고 이해하는 선행의 실천과 함께 보다 근본적으로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자기 성찰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리라 봅니다.금주의 명언은 오래 전부터 자기 반성을 통한 자기수양의 기본적인 잠언으로 수 없이 회자되어 온 구절입니다. 다시금 되새기며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회복해야하는 이유는 자신을 통해서 타인을 볼 수 있고,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자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사람들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러한 다름의 인정은 곧 자신과 타인의 바른 공존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는 것입니다.작으나마 反面敎師(반면교사)를 실천할 수 있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
160주 명언 : 의로움의 출발은 자기 제어로부터 시작됨을 확인하고 나서...◈ [금주 명언] - 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하라.◆ [독음] - 무위기소불위, 무욕기소불욕.◆ [한자] - 말 무/ 할 위/ 그 기/ 바 소/ 아니 불/ 할 위// 말 무/ 하고자할 욕/ 그 기/ 바 소/ 아니 불/ 하고자할 욕▶ [출전] - 『孟子(맹자)』〈盡心章句(진심장구)〉◈ [해석] -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며,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내지 말지니라.▶ [어구풀이] ☞ 無爲其所不爲(무위기소불위) : 하지 않아야 할 것은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의롭지 못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그렇게 의롭지 못한 일을 남에게 시키지도 말아야 한다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無欲其所不欲(무욕기소불욕) : 원하지 않는 것은 욕심내지 말라는 뜻으로, 욕심내지 말아야 하는 의롭지 못한 일은 욕심내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역시 자신이 싫어하는 의롭지 못한 것을 남으로 하여금 바라게 하지 말하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 [해설] - 진정한 사회 정의의 기준조차 모호해 진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들을 보면서, 무능보다 부패를 더 인정하려는 세태나 자기 아집과 고집에 사로잡혀 타인을 포용하고 배려하는데 인색한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본질적으로 지적하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일깨우는 작은 실천에 주목하고자 합니다.‘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 己所不欲 勿施於人. <論語> ]’는 공자의 말은 개인적인 삶의 가치를 완성하는 길은 자기 성실의 실천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완성으로 이루어진 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곧 자기 수양의 노력이라 할 수 있는 ‘忠(충)’의 완성은 타인에게 베풀어져 나가는 ‘恕(서)’의 실천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던 맹자였기에, 그러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실천이 자기 완성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맹자의 이러한 타인에 대한 자기 수양의 실천 자세는 ‘정의’에 대한 불변의 역설을 통해서 한층 더 강화되고 견고해 지게 됩니다. 누구의 마음 속에나 내재되어 있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미워할 줄 아는 마음’, 곧 羞惡之心(수오지심)의 인식과 실천의 한 방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금주의 명언인 것입니다.의롭지 못한 사소한 행위들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의롭지 못함을 자각하는 마음이 무뎌지고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은 불의(不義)가 결국 더 큰 부조리와 부패를 낳는다는 것은 자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운데에는 그 불의를 저지르는 당사자의 잘못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방관과 무관심, 묵인이 더 큰 잘못일 것입니다. 바로 맹자가 말한 ‘羞惡(수오)’의 마음으로 정의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불의함을 부끄러워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는 노력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나 사회의 불의를 보고 강한 비판과 질타를 할 수 있는 불의를 미워하는 마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사회 정의를 바로 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회적 변혁을 통한 정의로움의 정착보다 개인적 이해에 따른 이득 챙기기에 앞장서고 있는 우리 사회의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 속에 금주의 명언이 강조하고 있는 자기 수양을 위한 자기 제어의 실천가치를 되새기며, 더 큰 정의(正義)의 가치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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