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1, 제1장 ― 道可道 非常道

ria530 2013. 5. 6. 08:59

본 게시글 '도덕경'은 김기태선생의 찰나에서 샘솟는 행복의 향 '아, 여기'를 우연히 접하게 되어 너무나 감동된 바 여기에 전주향교 가족들과 공유하고저 연재 합니다. 김기태 선생의 배려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의 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도덕경-1 1장 ― 道可道 非常道

1장 ― 우리의 日常, 거기에 道가 있다


       道可道 非常道,              도(道)를 도라 하면 참된 도가 아니요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이름(名)을 이름이라 하면 참된 이름이 아니다.

       명 가 명     비 상 명


    無名 天地之始,              이름없음(無名)은 하늘과 땅의 비롯함이요

       무명    천 지 지 시


    有名 萬物之母.              이름 있음(有名)은 만물(萬物)의 어머니이다

       유 명    만 물 지 모


      故常無欲以觀其妙,                      그러므로 언제나 무욕(無欲)으로써 그 오묘함을 보고

      고  상 무 욕 이 관 기 묘


    常有欲以觀其요.             유욕(有欲)으로써는 그 가장자리를 볼 뿐이다

       상 유 욕 이 관 기


      此兩者同, 出而異名.                 이 둘은 같은 것인데, 다만 그 이름이 다르다.

      차 양 자 동       출 이 이 명

    同謂之玄,                      이 둘이 같음을 일컬어 현묘(玄妙)하다 하니, 

       동 위 지 현

    玄之又玄,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현 지 우 현


    衆妙之門.                      모든 오묘함의 문(門)이다

       중 묘 지 문

    道―길 도, 말할 도,   常―항상 상, 떳떳할 상,   始―비롯할 시, 처음 시,   故―고로 고, 연고 고, 죽을 고,    欲―하고자할 욕, 바랄 욕,    觀―볼 관, 妙―묘할 묘,    요(邀 책받침換두인변)―가장자리 요, 변방 요, 돌 요,    此―이 차, 이에 차,    異―다를 이,    謂―이를 위,    玄―검을 현, 오묘할 현, 깊을 현,    衆―무리 중, 많을 중

    
    < 뜻풀이 >
    도덕경은 전체 81장으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처음 시작하는 이 1장은 도(道)에 대한 일종의 '선포(宣布)의 장(章)'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부터 도(道)를 말하고자 한다. 도란 '이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리하여 언어(言語)나 문자(文字)에 담을 수 없는 도를 나는 이제부터 언어나 문자를 통하여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그런데 주의깊게 '자신의 삶과의 반추(反芻) 속에서' 가만히 귀기울여 들어보면, 언어를 통할 수밖에 없으나 언어에 갇히지는 않는 그 무엇이 넘실거리며 분명하게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도는 곧 '삶'을 떠나있지 않는 바, 언어 너머의 그 무엇이 그렇게 제대로 들려오기만 하면 우리 자신과 삶은 조금씩 '근본적인 변화'를 맞기 시작하여, 마침내 우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도란 그렇게 단순히 지식적인 무엇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근본에서부터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강한 힘과 직접성을 갖고 있다①. 그러므로 이제 나와 함께 이 도덕경을 통하여 '우리 자신'과 '삶'의 진정한 자유에의 길[道]로 나서보지 않으려는가?" 그렇게 노자(老子)는 지금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① 성경에도 이를 웅변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魂)과 영(靈)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브리서 4:1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도(道)는 곧 '진리(眞理)'를 말한다. 진리의 다른 이름이 곧 도이다. 그것은 참된 것, 영원한 것, 변치 않는 것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모양'이나 '형상(形狀)'에 있지 않으며, 시간의 연속선상에도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너무나 뜻밖에도,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매일 매일 되풀이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일상(日常) 바로 거기에 도(道) 곧 진리가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실이며, 진리는 그토록 가까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눈이 어두워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며, 마음이 닫혀 있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노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머리에서 다시 이렇게 우리에게 말한다.

    "눈을 떠라!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우리의 일상(日常), 우리의 삶 바로 거기에 진리가 있다. 우리는 언제나 진리 안에서 살고 있으며,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떠난 적이 없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자신이 이미 도(道) 그 자체다! 왜 이를 깨닫지 못하는가?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진리에 닿으려는 그 마음만 쉬어라. 그리하면 그대는 스스로 알게 되리니, 진리가 무엇이며 도가 무엇인지를―! 그런데 그렇게 알고 보면 그것은 차라리 '진리'라 할 것도 '도'라 할 것도 없기에, <이름하여> 진리라 하며 <일컬어> 도라 한다는 것을―!"

    道可道 非常道(도를 도라 하면 참된 도가 아니요)……사실이 그렇다. 도(道)는 그 어떤 말이나 개념으로도 규정되지 않으며, 그 어떤 언어로도 정확히 표현되거나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는 언어이전(言語以前) 혹은 언어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는 그 어떤 모양이나 형상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것이 도(道)이다!"라고 하거나 "이러 저러한 것이 진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실이 그러한데도, 그렇게 말하면 도 혹은 진리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아주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들리거나, 아주 높은 차원의 무엇이어서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한 표현들은 단지 도가 우리의 인식(認識)의 차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 도의 실재성(實在性)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우리 눈앞에 있다.

    그런데 그렇게 훤히, 더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추어진 적이 없고 단 한 순간도 드러나 있지 않은 적이 없는 도를, 참으로 묘(妙)하게도, 단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참 기가 막힌 말인데, 나는 앞으로 이 <도덕경 다시 읽기>를 통하여 이를 명백히 밝히고, 우리 눈앞을 가리고 있는 그 무명(無明)을 분명히 벗겨내고자 한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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