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지금은 일곱 살이 된 내 딸애가 네 살인가 다섯 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녀석은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아빠 무릎 위에 달랑 올라앉아서는 사진으로 된 그림책을 펼쳐들며 언제나 이렇게 묻곤 했다. "아빠, 이건 뭐야?" 그러면 나는 녀석의 고사리 손이 가리키는 사진들을 보며, "응, 이건 수박, 그건 진달래, 그건 해바라기, 저건 고양이, 이건 말, 그건 개, 그건 하늘, 이건 구름, 저건 물고기, 그건 사자...." 나는 그렇게 끝없이 그 아이에게 대답해 주곤 했다. 어린 아이가 바라보는 세계(世界)에도 '이름(名)'이 없다. 無名, 天地之始....
'이름(名)'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단순한 것 같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엔 참으로 많은 것들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라는 대상에서 '파'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본래 이름 없는 그것을 그것 자체로서 바라보게 되면, 우선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주의깊고 섬세하게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름'을 통하여는 그것은 조금도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그냥의 단순한 '파'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을 떼어내고 보면 우리는 그것을 무어라고 해야 할 지를 몰라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바라보게 될 터이고, 그러면 그 좁혀진 거리만큼 그것의 섬세하디 섬세한 구조와 모양과 빛깔과 향기가 비로소 우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처음인 듯한 그 새로운 발견에 스스로 놀라며 바야흐로 그것을 살포시 만져보는 데에까지 이르면, 아아 마침내 우리는 그 '생명'의 신비로움에 전율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매일 아침 마시거나 씻는 '물'도 마찬가지이다. '물'이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名)'을 조금 옆으로 밀쳐놓고, 잠시만이라도 찬찬히 그것을 바라보라. 그리고 가만히 그것을 만져 보라. 그러면 하필 그런 투명함과 밀도와 질감(質感)과 시원함을 가진 그것이 여기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신기하지 않은가?
하다 못해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민들레' 한 송이만이라도 그 낮은 키만큼 우리 자신을 낮추어 가만히 들여다 보라. 아아 그 노오란 꽃잎과,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는 그 자태와, 동그랗게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다가 한 줄기 바람이 불 때마다 설레는 가슴 보듬고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꽃씨들의 눈부신 축제와……! 나는 이 보다 더 큰 '기적'을 알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나무'와 '돌'과 '새'와 '흙'과 '별'들에게서, 이름 모를 '풀'들에게서, '태양'과 '햇살'에게서 그 이름들을 떼어내고 가만히 그것을 느껴 보라. 오오, 세상은 온통 '신비(神秘)'와 '기적'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구나!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고, 이토록 넉넉하구나!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그 모든 것들과 함께 또 하나의 '기적'으로 살아있는 '나' ― 우리 모두 ― 는 그러기에 얼마나 누릴 것이 많은가!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가! 아아, 이 텅 빈 충만이여―! 세계(世界)는 이미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구나! 그와 같이 '이름(名)'을 통하여 세상과 사물을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常有欲以觀其요)④, 본래 이름 없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면 놀랍게도 세계(世界)는 온통 기적과 신비 덩어리이다!(常無欲以觀其妙)
④ '이름'은 곧 관념(觀念)이며, 그것은 '언어'와 '생각(思考)'과 '약속'의 공허한 다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또한 '이름'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다. 이름 ― 곧 언어(言語) ― 이 있어야 우리는 인식하고 판단하며 분별할 수가 있고, 바로 그러한 인식활동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의 영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본래 이름 없는 각 사물들에 이름을 붙여보자. 그런데 우리가 붙이고자 하는 그 이름이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가 각 사물들에 붙여서 불러오던 이름들이 있으므로, 이제 기왕의 그 이름들을 그대로 각 사물들에 붙이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 이름 없는 어떤 것에 '산'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그것이 '산'이 되었고, 이름 없는 어떤 것에 '하늘'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하늘'이 되었으며, 무엇인지 모르지만 언제나 일렁이는 거기에 '바다'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그것이 '바다'가 되었다……이것이 '有名, 萬物之母(이름이 붙여지면서 만물이 있게 되었다)'의 뜻이다. 그렇듯 '無名'도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일이며, '有名'도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의 일이다. 그와 같이 '道可道 非常道……'로 시작하는 도덕경(道德經)의 이 1장의 시점(時點)은 언제나 '현재(現在)'이다. 사실 도(道)란 '시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둘 ― 이름없음(無名)과 이름있음(有名), 묘(妙)와 요(요) ― 은 다만 그 이름이 다를 뿐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닌가?(此兩者同, 出而異名) 그러나, 같지만 또한 얼마나 다른가! 오오, 이 사실을 아는 자가 없구나!(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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