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2 -제1장 ―名可名 非常名

ria530 2013. 5. 6. 09:01

도덕경-2- 1장 ―名可名 非常名



    名可名 非常名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참된 이름이 아니다)

 

이 말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본래적이고 변치 않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이름도 <붙여진> 이름일 뿐, 그 이름이 곧 본래부터의 그 사물의 이름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면, 우리들의 분주한 삶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우리를 가만히 굽어보고 있는 저 산(山)을 한 번 보자. 그 '산(山)'이라는 이름은, 그것의 본래 이름이 '산'이어서 우리가 '산'이라고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산'이라고 <이름붙인> 것인가? 너무나 파랗고 푸르러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퍽 쏟아질 것만 같은 저 아름답고 눈부신 하늘은 또 어떤가? 그것이 정녕 '하늘'이어서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는가, 아니면 우리가 '하늘'이라고 <이름한> 것인가?②

    ② 이 점에 대해서는 성경 창세기에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창세기 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그런데 이때의 '아담'은 성경 창세기에나 나오는 태초(太初)의 아담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자신을 가리킨다. 요즘에도 학계(學界)에 보고되지 않은 어떤 별이나 곤충 혹은 식물을 새롭게 발견하면 대개 그 형상(形狀)이나 소리 혹은 최초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그 이름을 붙이지 않는가? 몇년 전에도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어떤 별자리를 발견했다며, 그 이름을 '세종별'로 명명(命名)했다는 기사를 어느 신문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름'들을 붙이고 있다. 성경은 ― 그리고 다른 많은 경전(經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 이와 같이 태초나 혹은 오래 전의 어떤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 관한 얘기이다. 경전의 시점(時點)은 언제나 '현재(現在)'이다.

    만약 '산'이니 '하늘'이니 하는 이름들이 우리가 <붙인> 이름이라면, 그 이름들을 한 번 떼어내 봐도 좋으리라. 그렇게 각 사물들에서 우리가 <붙인> 이름들을 떼어냈을 때, 거기에는 무엇이 남는가? 거기에는 그 어떤 이름도 갖다 붙일 수 없는, 본래 이름이 없는 어떤 대상만 남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무엇일까? …… 모른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참으로 아이로니컬 하게도 우리가 바로 조금 전까지 '산'이라 하고 '하늘'이라 했던 그것에서 우리가 <붙인> 이름들을 떼어내고 보니, 오호라!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냥, 굳이 말하자면,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비단 '산'과 '하늘' 뿐이겠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름이 없다[無名]. 노자가 말하고 있는 '無名 天地之始(이름없음은 하늘과 땅의 비롯함이요)'의 참뜻은 그토록 가까이, 바로 우리 곁,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이 '현재(現在)'에 있다.

지난 1991년 4월 나는 7개월 동안의 지리산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곧바로 경기도 포천에 있는 어떤 수도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시 짐을 꾸리며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땐 정말이지 하루 하루가 견디기 힘들었고, 타는 듯한 내면의 갈증으로 언제나 발을 동동거리며 어디론가 끊임없이 떠나곤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이곳 저곳을 떠다니면서 소용되는 비용은 주로 노가다(공사판의 막일)를 해서 번 돈으로 충당했는데, 내 나이 서른 한 살 때의 봄빛 가득한 4∼6월 석달 동안에도 나는 그렇게 수도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땀을 흘리며 공사판의 막일을 하고 있었다. 철근을 옮기고 벽돌을 져나르고 공구리(콘크리트)를 치는 속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애썼고, 점심을 먹고 난 뒤 모두가 즐기는 짧은 오수(午睡) 시간에도 나는 홀로 공사판의 한 구석에 앉아 고요히 면벽(面壁)하며 '나는 누구인가?'를 되뇌었다.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던 그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난 뒤였는데, 그날따라 유난히도 답답해 오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하며 나는 공사현장 인근에 있는 공터로 잠시나마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때가 아마 5월 중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고, 상쾌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봄을 맞은 만물(萬物)은 자기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온갖 생명력들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텅 비어 잡초만 무성하리라 생각했던 공터는 그러나 이웃 주민들이 가꾸어놓은 듯한 아기자기한 텃밭들로 어떤 정겨움마저 안겨다 주었고, 문득 마주하게 된 그 작은 평화로움에 나는 나도 모르게 살포시 햇살처럼 풀밭 위에 앉아 그 정경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무심코 앉은 자리 바로 앞엔 자그마한 파밭이 정성스레 가꾸어져 있었고, 제법 자란 줄기 위로 하얀 파꽃들이 여기 저기 터질 듯 피어 있었다. 그때 마침 어디선가 마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도 하려는 듯 노랑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아와 마악 그 하나의 파꽃에 앉으려고 하고 있었는데 ― 나는 이 순간의 정경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 저건……, 저건 파가 아니다!"
    "저건 파가 아니다!"
    아아, 그랬다, 그것은 파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파라고 믿었던 그것은 파가 아니었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바로 그 순간, 내가 무심히 바라보고 있던 그 '파'에서 '파'라는 이름(名)이 딱! 떨어져나갔다. '파'라는 대상과 '파'라는 이름은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것이다! '파'라는 이름은 단지 우리가 <붙인> 이름일 뿐 그것은 '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대상에서 하나의 이름이 떨어져 나간 바로 그 다음 순간, 아아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대상들에서 모든 이름들이 한꺼번에 다 떨어져나가 버렸다! 이럴 수가……!
    "그렇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다![無名]③ 모든 것이 본래 이름이 없는 그냥 그것일 뿐이구나……!"
    나는 그 순간의 전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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