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22 제8장 무분별의 현재에 눈을 뜨다-3

ria530 2013. 5. 6. 09:08

도덕경-22 제8장 무분별의 현재에 눈을 뜨다-3

 

 

心善淵(마음은 깊은 연못과도 같이 고요하고)
그렇다.그렇게 무분별의 '善地'에 거할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어느 때나 깊고도 고요하다. 커다란 연못의 표면이 아무리 격렬하게 파도친다 하드라도 그 깊은 내면에서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고요할 뿐이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고요하다'라고 하는 것은 결코 어떤 '모양'에 있지 않다(無相). 다시 말하면 그것은 격렬한 파도처럼 잠시도 가만 있질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리거나 요동하는 모양과 구별되고 대비된 의미의 '고요'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때의 '고요함'이란 정확히 말하면 '격렬한 파도 그 자체가 되는 것'. '흔들리고 요동침 그 자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아 이를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섬세하게 그 민감한 부분까지를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도록 표현할 수  있을까?

이를 혜능(蕙能)은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어육진중(於六塵中)에 불이불염(不離不染)하야 래거자유(來去自由)가 卽是般若三昧며 自在解脫이니....六塵을 떠나있지도 않고 그것에 물들지도 않아 육진이 오고 감에 자유함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라고 여기어서 육진이란 '격렬한 파도'혹은 '흔들리고 요동치는' 온갖 번뇌와 망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하루의 삶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온갖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을 말한다. 그 속에는 '불안'도 있을 수 있고, 미움, 짜증, 성냄, 기쁨, 의심, 회의, 등등 온갖 것들이 있을 수 있는 바, 그것들을 떠나있지도 않고[不離] 또한 물들지도 않아[不染] 그것들이 오고 감에 자유함 - 그 모든 것들이 그냥 그렇게 물처럼 흐르도록 내어버려 둠 - 이 바로 진정한 '고요함'인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요동치는 번뇌를 버리고 따로이 보리(菩提)라는  '고요함'을 구하고 있지 않은가?


與善人(줄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
물을 보라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끝없이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주기만 할 뿐이다.거기 어디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주목이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가? 물은 언제나 그 냥 그 렇 게 할 뿐 이 다! 아아 그것은 바로'나 없음(無我)'이 아니가! 그 '나 없음'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사랑이며 與善人이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 무아와 무한한 사랑이 바로 우리의 本來面目이며 우리의 본질은 바로 사랑이다! 아아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토록 아름다운 본래 모습을 망각한 채 안타깝게도 유리하는 백성이 되어 있구나!

言善信(말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것은 이를테면 아는 것은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혹은 있는 것을 있다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 그리고 긴것은 기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는 것이다. 얼마나 단순한가? 진리 혹은 진실은 이토록 단순것이다! 아아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일이 되어 버렸는가?
예수도 말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내느니라"(마태복음 5:37)
공자도 논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知之爲 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것 이것이 진정한 앎이니라". (爲政篇 第二)

政善治(최선의 다스림을 베풀고 )

무엇이 '최선의 다스림'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잘 다스리는 것일까? 그것은 다 스 리 려 하  지 않 는 것 이 다! 내 안을 '다스리려'하지 말라. 그냥 두라 '완전함'과 '깨달음'이 좋다 하여 끝없이 끊임없이 자신을 채근하여 자신 안의 온갖 다양한 생명들을 주눅들게 하지 말라. 그 하나의 '좋아 보이는것'을 위하여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닦달하고 통제하고 조절하지 말라. 아아 그렇게 자신을 억압하지 말라! 이제 그만 하라. 진리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단지 있는 그대로 자신의 '현재'를 살라 다만 그것이면 족하다! 道常無爲而無不爲--도는 언제나 함이 없으되 되어지지 아니하는 바가 없구나!~(도덕경 37장)

事善能(모든일에 최선을 다하며)

'최선'이라는 것도 내 밖에 따로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無相). 언제나 어느 때나 모두가 본 받아야 할 '최선'이란 우리의 관념과 생각 속에만 존해한다. 그리고 그것은 허구다. 그렇다면 '事善能'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모든일'이라고 하는 것은 다만 내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매일 매일의 일과나 사람과의 관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내 안의 일들 곧 하룻동안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온갖 다양한 느낌과 감정과 생각 등등의 마음의 작용과 흐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한다(事善能)'는 것은 내면의 그 어떤 것도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또한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다만 있는그대로의 자신을 올올이 살아 낸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곧 '無分別의 現在'를 산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냥 사는>모습이다. 진리는 바로 거기에 있다.

動善時(움직일 때는 최선의 때를 따라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의 '최선의 때'라는 것을 따로이 두거나 따로이 가리는 바로 그러한 분별만 내려지면 모든 때가 '최선의 때'임을 알리라! 얼마나 가슴 벅찬 우리네 삶인가!

夫唯不爭 故無尤
대저 오직 다투지 않기에 허물이 없다. 다시 더 무엇을 말하리요!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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