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이 장의 풀이는 성경 얘기로부터 시작해 보자. 성경 요한복음 4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유대를 떠나서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화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가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데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로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라......"(요한복음 4:3~29)
이야기가 참 재미있다. 행로에 피곤하여 우물가에 앉은 예수와 그때 마침 그곳에 물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장면인데 처음엔그냥 단지 목이 말라 물 좀 달라 하는 예수의 말로 시작된 이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얘기로 이어지고 마침내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외치기 시작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 뜻밖이기도 하고 엉뚱하기까지 한 대화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이물은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새물이 되리라." 라는 예수의 말에 여자가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대답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때 예수는 난데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아니 이게 무슨 말일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구하는 여인에게 예수는 왜 느닷없이 여인의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 것일까? '생수'와 남편'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여자가 "주여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을 때 예수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남편'은 무엇일까?
남편이라....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혹여 이것이 진정으로 내 영혼을 채워주고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저것이 나를 진실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일까 하여 끊임없이 찾고 추구하는 어떤 대상을 가리킨다. 오늘 날 그 '남편'은 사람에 따라서는 '돈'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으며 '학벌'이나 '출세' 혹은 '권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칭찬'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깨달음을 향한 '명상'과 '수행'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남편'이 도덕경의 이 장에서는 '오색'이니 '오음'이니 오미(五味)니 혹은 '치빙전렵'이니, 난득지화니 하는 것들로 표현되고 있는것이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이러한 것들을 추구해 왔고 또한 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마치 그러한 것들을 더 많이 가지고 누릴수록 더 큰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있기라도 한듯이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던가? 인류의 그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과 오늘날의 이 물질만능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그리고 분명히 말할 수 있지않은가? '아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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