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있다.....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 삶의 어느 한 부분 그렇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내 눈앞을 가린 본능적이고도 맹목적인 자기우월감 속에서 있는 그대로이 우쭐거리며 살았던 진실(眞實)은 조금도 보지못한 채 허허로이 우쭐거리며 살았던 것이다..... 내 나이 서른 때 스스로를 못 견뎌 하며 이친듯이 지리산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한동안은 '교직(敎職)마저 사표내고 산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무슨 대단한 훈장처럼 떠벌리고 다녔었고,
깊은 산 속 토굴 속에서의 긴긴 겨울밤을, 초저녁만 되면 이 핑게 저 핑게 대면서 이불속에 드러누워서는 다음 날 아침 해가 중천에 뜨도록 뒹굴거리며 일어나지 않아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남들을 만나기만 하면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마음공부를 하고, 또한 새벽같이 일어나 좌선(座禪)을 하거나 명상(冥想)을 한, 초저녁부터 이불을 깔고 드러누울 생각은 꿈에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으로 표변(豹變)하여 그들 앞에서 자랑스러이 말하곤 했었다. 아아 그렇게 나는 참으로 병이 깊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바로 그 토굴에서 어떤 사람과 밤이 이슥하도록 오랜 얘기들을 나누던 중에 내 모든 삶을 송두리채 뒤바꿔 놓는 운명의 순간이 문득 나에게 찾아왔다.그때 그사람은 끊임없이 내 살아온 과거들을 듣고 싶어 했는데, 그러면 나는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신명이 나서 그동안 내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멋지고 훌륭하게 살아왔으며, 또한 지리산, 이 깊은 산 속까지 들어올 만큼 얼마나 나 자신과 삶에 대해서 진실되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마치 무슨 영웅담 늘어놓듯이, 때로는 스스로를 무슨 비극의 주인공인 양 해가며 끝없이 지껄이고 있었다.
그렇게 손짓 발짓까지해가며 스스로의 훌륭함을 드러내던 그 어느 한 순간, 아아 나는 문득 그 모든 것의 '진실(眞實)'을 보고 말았다! 그것이 얼마나 거짓되고, 가식(假飾)되며, 위선(僞善)으로 가득 차 있는가 하는 것을, 얼마나 자고(自高)한 마음에 스스로를 그렇게 한없이 높은 곳에 올려다 놓고, 세상과 사람을 비아냥거리며 우쭐대며 살아왔던가 하는 것을, 지리산 이 깊은 산 속으로 들어올 만큼 자신과 삶에 대해서 진실되어 몸부림 쳐 오기는커녕, 아아 그 오랜 세월동안 단 한 번도 진실해 본적이 없는 자신의 그 커다란 허구를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새벽 햇살이 하얗게 방안으로 비쳐 들어올 때까지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어릴 적 '잘한다 잘한다'라는 칭찬을 들으면서부터 시작된 그 오랜 세월 동안의 삶과 존재의 한 없는 왜곡을 나는 통곡하고 또 통곡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적어도 더 이상은 나를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남들을 의식하는 마음의 작용 때문에 한동안 힘들긴 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인정'과 '받아드림'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자유해 갔고, 그러던 그 어느 한 순간 또 한 번의 존재의 비약(飛躍)이 찾아와 나는 마침내 그 지난(至難)했던 삶의 모든 방향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참으로 감사하게도 늘 평안하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삶의 새로운 시작이었으며, 사랑으로 충만한 새로운 탄생이기도 했던 것이다. 축복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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