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나는 어려서 부터 자주자주 칭찬을 들으면서 자랐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그저 착하고, 잘 생겼고, 인사성 밝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다고 칭찬을 들으면서 자랐고, 조금 더 자라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며, 매사에 모범적이라는칭찬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언제나 '잘한다 잘한다'라는 말들이 끊이질 않았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은 수줍어하면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 내심 우쭐해 하곤 했었다.
그렇게 천진하게 칭찬을 들으면서 자라던 나는 그러나 세월이 흘러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나도 모르게 자신은 '언제나 그리고 무엇이든 잘해야 화는 사람'이라는 무의식적인 요구와 부담으로 몰고갔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언제나 그리고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보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로 하여금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거나 간에 내면 깊은 곳에는 끊임없이 남들을 의식하게 했으며, 아아 그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살기보나는 남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고 포장하고 미화하고 왜곡하는 끝없는 가식(假飾)속으로 나를 몰아 넣었다.
그 천진하든 아이가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아 그 거짓과 속임의 오래고도 아득한 세월이여--! 자신의 잘난 부분은 끝없이 부풀리고 못나고 잘못된 부분은 끝없이 숨기고 감추려고만 했던! 그리하여 급기야 나중엔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진정 스스로는 자류로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어버렸던! 그러나 또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내 나이 스물네 살 때의 일이다. 그때 나의 삶의 모토는 '살아있자' 뜨겁게 살아 있자!였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돌아본 나의 모습은 그것과는 너무나 먼 거리의 게으르고, 권태로우며, 한없이 자기방기(自己放棄)만을 일삼은 휑한 몰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썩어 있군나.....' '이래선 안된다. 살아있자! 그래 나는 살아 있어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며 <뜨겁게 살아 있기 위해> 나는 구미 금오산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에 삭발을 하고 들어갔다.그때의 기억과 일들은 나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아아 얼마나 처절히 다짐하며, 결심하며, 산을 올랐던지!
<뜨겁게 살아있기 위해> 하나 가득히 책을 넣은 배낭을 무겁게 등에 메고 왼손에는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남비와 작은 등산용 버너, 그리고 약간의 쌀과 밑반찬 등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 손에는 간단하게 나마 책걸상을 손수 만들어서 쓸려고 준비해 묶어 놓은 합판과 각목 등을 들고서 얼마나 비오듯 땀을 흘리며 그 가파를 산기를 올랐던지! '살아 있어야 해....살아 있어야 해....!' 아아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 게으른 인간이며, 무언가 결심한 일에 대해서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을 넘어 작심삼초(作心三秒)였다. 그렇게 힘겹게 산을 올라가, 그 다음날 종일토록 뚝딱거리며 책걸상을 만들어 그야말로 <뜨겁게 살>준비를 다 마쳐놓고는 정작 성실하게 정말이지 <뜨겁게 살아야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너무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게을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아 있어야 해,....!'를 연발하며 산을 올랐던 그 마음은 너무나 쉽게 잊혀져 버리고 - 언제나 그랬듯이!- 삭발까지 해가며 열심히 하리라고 거듭 다짐하고 계획했던 자기완성을 향한 공부화 노력은 본능적인 무책임과 게으름 앞에 맥없이 무너져 생색과 자기변명만이 남았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더해 가는 자기방기(自己放棄)속에 조금씩 권태가 덧보태어지고, 이윽고 시간마져 지겨워하게 될 때쯤이면 나는 또 습관처럼 화들짝 놀라는 것이다. '아니 떠나오기 전과 똑 같은 모습이 아닌가!' '아아 내가 .....또..... 썩어 있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그 진 날들 동안 정말이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는 자신을 몹시도 자조(自嘲)하고 질책하면서 마치 그런 자신의 부끄러움을 황급히 묻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허겁지겁 산을 내려와 버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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