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章은 인간이면 누구나 걸려들어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칭찬과 비난'에 관한 글이다. 총욕약경(寵辱若驚)이라하여'총애를 받음과 욕을 먹음에 놀라는 듯하다'라고 시작되지만 나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다 더익숙한 개념인 '칭찬과 비난'으로 풀었다. 그래서 노자의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칭찬과 비난'에 끝없이 끊임없이 끄달리며 살았던 내 어리석은 삶의 긴 얘기를 먼저 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은 -나도 그랬지만 -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살지 못할까? 왜 꼭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남들의 '인정과 칭찬과 비난'에 그토록 민감해 할까(寵爲上 辱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爲寵辱若驚)? 그럼으로서 자꾸만 자기를 꾸미게 되고.....남들의 몫인데도 왜 내가 그 모든 짐을 넘겨 받아 스스로 주눅들고 두리번거리며 끊임없이 그 들을 의식하게 될까?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더니 이는 분명 큰 병통임에는 틀림없다(貴大患若身)
왜 그럴까(何謂貴大患若身)? 그것은 분명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지고 다져지고 강화된,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 대하여 턱없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나'라는 에고(ego)의식 때문이리라(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만약 나에게 그 '나'라는 에고의식- 아상(我相)-이 없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及吾無身 吾有何患)? 마침내 자유하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 '나'라는 에고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까? 다른 길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이 되려는 욕망과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한,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실천과 수행을 버려보라. 그리곤 가만히 있어보라. 그냥 있는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살아보라는 말이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터이니, 그렇게 조금만 기다리라! 조금만...! 그러면 스스로 알게 도리라 모든것을 ...!
맨 마지막 문장은 참으로 절묘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마치 그 '나'라는에고가 실재(實在)하는 양, 끊임없이 거기에 집착하고, 그것을 귀히 여기며 더없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자존심을 챙기며, 거기에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는가? 얼마나 스스로를 높이며 '스스로 살고저(自生)'하는가? 그렇게 자신의 에고에 대하여 더할 나위없이 민감하듯 세상과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진실로 민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고, 가히 세상을 맡길 수 있는것이다(故爲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그런데 그렇게 세상과 사람들은 진실로 사랑할 수 있으려면 어쩔 수 없이 그 '나'라는 에고가 사라져야 한다. 에고로서는 '진실로' 사랑할 수 없다. 에고가 사라질 때 그무아(無我)속에서 저절로 솟구쳐 나오는것이 바로 '사랑'이다. 아아 그러면 이제 그는 비로소 평화로우며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의 사람이 되는것이다. 세상'과 '나'가 둘이 안닌! 아름다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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