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장(章)을 뚯풀이 하기 전에 '미운아기오리' 이야기 부터 먼저 한것은 두 얘기가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장(章)이 너무나 따뜻하다. 옛날에 도(道)를 잘 닦은 사람은 미묘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수 없나니(古之善爲道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대뜸 정말 도를 잘 닦아 미묘하고 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뭔가 비범하고 그득하며, 우리와는 뭔가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 듯한, 그래서 감히 범접하지 못할 어떤 깊이와 풍모(風貌)를 가진 사람을 말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진정으로 도를 잘 닦아 미묘현통한 사람은 미묘현통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는 오히려 더욱 미묘현통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네 이 평범한 일상(日常)과 삶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 사실은 너무나 미묘현통하여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世界)가 아닐까? 미처 그런 줄을 모르니, 우리는 끊임없이 미묘현통한 道를 따로이 구한 것이 아닐까?
대저 오직 알 수 없기에 억지라도 그 모습을 형용해 보면(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그러나 이 대목에서, 그리고 이후의 설명을 해나가기 전에 먼저 우리의 오래고도 깊은 편견(偏見) 하나를 시적해 두고 싶다. 그것은 도 혹은 '깨달음'에 관한 우리의 상(相)인데 우리는 그것에 대해 너무 좋게만 말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연중에 '성(聖)'과 '속(俗)을 구별해 두고, 언제나 聖과 결부하여 道 혹은 깨달음을 설명하려 하는데, 아니다 속(俗)과 구별된 聖은 없으며, 사실은 俗 그것이 바로 聖이다. 나는 그런 관점에서 옛적에 道를 잘 닦은 사람의 모습을 형용해 나가는 노자(老子)의 말들을 해석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들은 마치 '오리'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본 '미운 아기오리'를 자꾸만 연상시킨다.
豫兮若冬涉川 (예혜약동섭천) 猶兮若畏四隣 (유혜약외사린) 儼兮其若客 (엄혜기약객) 渙兮若氷之將釋 (환혜약빙지장석) 敦兮其若樸 (돈혜기약박) 曠兮其若谷 (강혜기약곡) 混兮其若濁 (혼혜기약탁)
儼:의젓할 엄. 渙:흩어질 환. 樸:통나무 박. 曠:밝을 광.
머뭇거리는 모습은 마치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모습은 마치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하며 삼가는 모습은 마치 손님 같고 풀어진 모습은 마치 녹아내리는 얼음 같다 그 질박한 모습은 마치 다듬지 않은 통나무 같고 그 텅 빈 모습은 마치 골짜기 같으며 한데 뒤섞인 모습은 마치 탁한 물과도 같다.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겨울에 시냇물 건너듯 머뭇거리는 모습은 마치 삶의 길을 -때로는 하루하루의 일상(日常)조차- 제대로 걷지 못해 머뭇거리고, 넘어지고, 깨어지기가 일쑤인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을 연상케하며(豫兮若冬涉川), 그런 속에서 우리는 삶의 단 한 순간도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서성이고, 망설이고, 주저하며, 언제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두리번거리고 있지 않은가(猶兮若畏四隣)?
또한 그 삼가는 모습이 손님 같다 했는데, 이는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갔을 때, 어디에 앉든, 무엇을 만지든 항상 조심스럽고, 괜스레 주눅들어 쭈뼛거리게 되는 모습에서 삶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늘상 자신 없고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말하고 있으며(儼兮其若客), 풀어진 모습이 마치 녹아내리는 얼음같다 함은, 꽁꽁언 얼음은 강하고 정제(整齊)되어 보이며,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깊이마저 느끼게 하건만, 그것이 녹아내리고 있으니, 그것은영락없이 어딘가 허물어지고, 질서잡혀 있지 않으며, 볼품 없는 우리의 모습이구나(渙兮若氷之將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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