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직(敎職)에 있을 때의 일이다. 정심시간이 막 지난 5교시 수업을 할 때였는데, 나른한 봄날 오후였기에 수업을 하다 보면,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다 못해 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몇 있다. 그러면 대개는 수업을 하다 말고 창문을 열개하거나, 간단한 몸풀기를 통해 잠들을 깨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날엔가는 문득 짓궂은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실험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창가에 앉아 따뜻한 봄햇살을 맞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어떤 학생을 깨우며 내가 말했다.
"얘야 너는 생긴 것도 장미꽃처럼 생겼더니, 자는 모습도 어쩜 그렇게 장미꽃을 닮았니?" 그랬더니 조금 전까지 부스스 하고 미안해 하던 그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미소를 가득 띠면서 하는 말이 "어머나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사람 볼 줄 아시네요! 어쩜!"하는 것이었다. 하하하.... 그래서 다음날엔 다른 반의 5교시 수업을 들어가 또 어제처럼 심히 졸고 있는 어떤 학생을 깨우며, 이번엔 이렇게 말해 보았다. "얘야 너는 생긴 것도 호박꽃 처럼 생겼더니 자는 모습도 어쩜 그렇게 호박꽃을 닮았니?" 그랬더니 이 여학생은 갑자기 잠이 확 깬다는 듯, 그리고 심히 짜증 섞인 어투로 "선생님! 왜 그러세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제가 수업신간 중에 졸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문책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의 좀 거친 항변에 나도 깜짝 놀랐지만, 어쨌던 우리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이렇게 깊이 물들어 있는 것이다. 정말 장미꽃은 예쁘고 호박꽃은 그렇지 않은 가? 아니다! 장미꽃은 장미꽃이고 호박꽃은 호박꽃일 뿐이다. 거기 어디에도 '우열(優劣)'은 없다. 그 둘은 서로 다를 뿐, 비교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이것은 비단 장미꽃과 호박꽃의 경우에만 해당되는가? 자연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말이 아니가? 결국 '우열(優劣)이란 사물에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는 인간의 마음 -이름 하여 분별심(分別心)- 이 만들어낸 허구(虛構)가 아닌가?
자, 그렇다면 어번엔 우리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보자, 지금 이 순간의 '나', 지금 여기에서의 '나'는 '부족'하거나 혹은 '잘난' 존재인가? 아니다 나는 단지 나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I am who I am) <비교>하면 '부족'과 '잘남'이 나타나지만, 그리하여 그 허구에 스스로 끌려다니며 한없이 주눅들기도 하고, 또한 허망히 우쭐거리게도 되지만, 그냥 '나'를 나로서 '현재'를 '현재'로서,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서 바라보는 눈이 내 안에서 뜨이면 '나'는 '현재'는 그리고 하나 하나의 사물은 모두가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절대자(絶對者)들이요, 절대한 순간들 뿐, 그 어느 것 하나 그 어느한 순간도 높이거나 경홀히 할 수 없음을 알게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만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그리고 이러한 자각속에서 진정한 '자기로부터의 해방(解放)'이 찾아온다.
그러니 보라! '깨달음'이란, 그리고 우리네 '삶과 영혼의 자유'란 달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눈 하나가 달라지면 '비교선상의' 그 자리가 바로 절대(絶對)의 자리인 것이다.그렇듯 우리는 이미 이 자리에 와 있다! 아니, 우리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다. 단지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을 뿐! 아아 우리는 이미 더할 나위 없는 풍요의 자리에 와 있다! 우리는 이미 '근원(根源)'이다.
근원으로 돌아감을 가로데 고요함이라 하고 (歸根曰 靜)....진실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진실로 '지금' '여기'가 근원임을 알게 되면, 그땐 고요함이 찾아온다. 내 영혼에는 비로소 쉼이 오고, 마음에는 한없는 평화가 깃든다. 아아 나는 비로소 나 자신(自我)이 된 것이다(是謂復命)
자기 자신(自我)을 앎을 '상(常)' -참된 것, 영원한 것, 변치 않는것,-이라 하고, 이 상(常)을 아는 것들 밝다한다(復命曰常 知常曰明) .... 그렇다. 자기 자신을 알면 모든 것을 안다. 내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아니, 곧 그것이다!(I am that)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이 흉사(凶事)를 짓게 되나니 (不知常 妄作凶).....이때의 '흉사(凶事)'는 흉사의 모양을 알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하여 비교에서 오는 모든 간택(揀擇)이 사라지고 (容乃公), 이는 곧 자기 자신과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됨을 의미하며(公乃王), 이 '주인됨' 그것이 곧 하늘이요 道이다(王乃天 天乃道).
도는 영원하나니(道乃久).....이때의 '영원'은 곧 '지금이 순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영원'이라는 관념은 허구다. 영원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다만 '현재'를 살라. '현재'는 언제나 새로우며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이 '현재' 속에 올올이 다 녹아들어 있다. 아아, 그리하여 우리가 이 '현재'에 눈 뜰 때, 그때 우리의 온 존재와 온 생명도 함께 깨어나 삶과 더불어 넘실넘실 지복(至福)이 춤을 추게 되리라!(沒身不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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