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추천의 글-철학박사 이 완 재

ria530 2013. 5. 6. 09:19

추천의 글

이 책의 저자인 김기태와 나의 인연은 깊다. 그가 영남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면서 부터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즉 나와 사제(師弟)의 인연이 맺어진 것이다. 그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와 나는 늘 가까운 사이로 지내왔다. 가정적으로 불우하여 부정(父情)에 목말라 있었던 그는 내게 "아버지처럼 모시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할 만큼 우리는 남다른 사이였다.그런 관계인지라 김기태를 이해하고 말하는데 있어서는 나도 남 못지 않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그가 이 책을 출판하려 한다면서 내게 '추천의 글'을 청해 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손쉽게 구해 볼 수 없는 값진 책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그것은 <도덕경(道德經)>이라는 책이 불후의 고전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이 책이 김기태라는  사람에 의하여 해설되었다는 뜻에서이다.
  진리의 샘은 다함이 없다. 그리고 만인(萬人)을 위해 열려져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로이 이 진리의 샘에서 진리의 물을 퍼갈 수가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기가 가진 그릇만큼 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대한 고전은 진리의 샘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해설이란 해설자의 그릇만큼 해설하기 마련인 것이다.
거리의 책방에 나가면 <도덕경>해설서는 어디에서나 손쉽게 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김기태의 이 <도덕경> 해설서가 그리도 값진 책이 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인 김기태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소상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학생시절의 김기태는 순직(純直)하고 말이 적고 공부에 충실한 학생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김군은 졸업 후 어쩌려고 하나?  대학원에 진학 할 생각은 없는가?" 하고 물었더니 "글세요 여러가지 생각 중입니다. "하고 명확한 대답이 없었다. 그 후 대학원 응시자의 명단에 김군의 이름은 없었고 졸업 후에도 한참이나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대관령 목장에 일하러 갔다는 것이다.
1년 후 불쑥 나타난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과연 대관령 목장에서 소똥을 치우며 묵언(默言)으로 1년을 보냈다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그 누구와도 말이라고는 하는 법이 없이 외양간에서 묵묵히 소똥만 치고 있으니 관리자의 눈에 이상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뭔가 수상한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여, 여러가지 조사를 해보았으나 별다른 혐의가 없고, 또 상당한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자 사무직 근무를 권하더란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내 거절하고 외양간에서만 1년을 채우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무렵 마침 대구 정화여자고등학교에서 윤리 선생 공채가 있었기에 정보를 제공했더니, 그 공채에 응하여 다행히 교사로 채용되었다.얼마간 교직생활에 열정을 쏟는 듯하더니 1년이 지난 어느날 불쑥 찾아와 하는 말이 사표를 내어야겠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저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이 주제넘게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위선적이고, 자기기만인 듯하여 도저히 더 이산 계속할 수 없습니다."는 것이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운 직장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것이 안타까워 여러가지로 말려 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지리산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약 2년 후 그는 다시 나타났다. 그동안 그는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빈집을 손보아 그곳에 살면서 책도 읽고 명상도 하고 또 그곳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수도자들과 대화도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얻은 듯 오랜동안 그를 따르며 기다리던 여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몄다. 그리고 그는 대구 영남일보 신문사 교열부 계약사원으로 취직하여 나름대로 단란한 신혼생활을 보내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새로이 전개된 인생에 대한 회의(懷疑)가 다시 그를 엄습한 듯했다. 그는 교열기자직을 팽개치고 공사판 노동자로 뛰어 들었다. 그 무렵은 내가 국선도(國仙道)수련에 열중하든 때인데, 새벽 다섯시에 도장에 나가다 보면 도시락만 댕그러니 들고 공사판으로 향하던 그를 종종 만나곤 했다.
그 후 또 한창 소식이 없더니 어느 날 그가 밝은 얼굴로 찾아왔다. "이제 그렇게 목마르게 구하던 바를 얻었습니다. 이제 제 구도(求道)의 길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깨달음의 세계라는 것이 바로 이 현실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그동안 상주(尙州)의 어느 조그만 암자에서 수도(修道)하겠다는 것이다. 수도는 뜻같이 이루어지지 않고 답답한 마음은 한이 없어 깨달음이 아니면 차라리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져갔던 쌀과 돈을 몽땅 버리고 그 날로 단식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6일만이라던가 어느날 갑자기 시원하게 마음이 내려앉고 눈 앞이 환하게 열리더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갈망하던 그 신비로운 깨달음의 세계가 바로 이 현실의 그대로일 뿐 아무런 별다른 것이 아니더란 것이다.


이것이 김기태가 걸어온 인생의 과정이요 수도의 역정(歷程)이다. 이때 이후 그는 남을 일깨우고 가르치는일에 열중하고 있다. 인연이 닿는대로 모임이 이루어지는대로 <논어(論語)>도 강의하고, <중용(中庸)>도 강의하고, <도덕경(道德經)>도 강의해 왔다. 나도 그의 도덕경강의록 일부를 읽어 보았다. 과연 분명한 깨달음의 흔적이 있었다. 그의 도덕경 강의는 어느 해설서에서나 볼 수 있는 문자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의 지혜에 대한 전달이었다. 이것은 어떤 <도덕경> 주석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드는 살아 있는 말들이었다.

나는 이즈음 김기태를 '김도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이제 김도사는 나의 스승일쎄. 김도사의 그 깨달음으로 나의 미혹(迷惑)을 깨우쳐 주게"라고. 한퇴지(韓退之)의 사설(師說)에 스승이란 나이와 지위의 고하(高下)에 관계없이 도를 깨달은 자가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제 김기태는 뭇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 한 권을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읽어보면 김기태가 과연 스승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될것이다.


                                                                                                             2003.6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이 완 재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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