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텅 밈에 이르기를 지극히 하고, 고요함을 지키기를 돈독히 하면(致虛極 守靜篤)...... 다시 말하면 '허정하면' 곧 '우리의 마음이 텅 비고 고요하면'이라는 말이다. 이는 또한 '우리의 분별심이 내려지면 '이라는 말인데, 그러면 만물이 무성하게 일어나지만 -이 때의 '만물'은 우리안의 만물을 가리킨다. 곧 시시로 때때로 일어나 우리자신을 금새 사로 잡아버리는 짜증, 분노, 미움, 게으름, 불안,막막함,슬픔, 기쁨 등등의 온갖 번뇌(煩惱)와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가리킨다.- 나는 그 돌라감을 보노라(萬物竝作 吾以觀復)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노자는 다시 이 부분을 환기(喚起)하는 듯한 말을 한다. '대저 만물은 많고도 성(盛)하지만 제각각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夫物芸芸 各復歸其根)'라고,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오해하고 있거나 착각하게 되는 표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근원으로 돌아간다(復歸其根)'라는 말이다. '근원으로 돌아간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대뜸 정말 돌아갈 '근원'이라는 것이 따로 있거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사실>을 사실로서 다 남아낼 수 없는 언어(言語)의 한계에서 비롯된 우리의 오해이자 착각이며, 우리의 사고(思考)가 만들어낸 허구적인 분별(分別)일 뿐이다.
사고(思考) -혹은 이를 마음(心)이라 해도 좋다- 는 그 속성상 언제나 모든 것을 둘로 나눈다.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와 '미래의 저기'를 나누고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나누며 '번뇌(煩惱)'와 '보리(菩提)'를 나누고, '중생(衆生)'과 '부처'를 따로 둔다. 또한 마찬가지로 마치 그것이 사실인 양 '속(俗)'과 성(聖)'을 나누고, '부족'과 '완전'을 나누며, 나타남'과 '돌아갈 근원(根源)'을 나눈다.
그리곤 이 세계가 실제로 그렇게 둘로 나누어져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자세히 캐묻지도 않고, 또한 그럴 틈도 주지 않으면서, 이번엔 그 둘 중 하나만을 간택(揀擇)하도록 사고는 끊임없이 우리를 내몬다. 다른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아니 사실 사고(思考)에는 다른 여지가 없다.
일단 둘로 나누면, 그 중 하나만을 일단 둘로 나누면, 그 중 하나만을 택하려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언제나 안달하는 것이 또한 사고의 속성인 것이다. 아아! 그런데, 우리가 그 사고(思考)안에서 살고 있으니, 그리고 그 사고가 보여주는 것이 전부요 사실인 양 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가 끊임없이 그 양편 모두에 끄달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사고가 보여주는 것은 실재(實在)가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실재 같은 허구다.
노자가 이 章에서 '제각각 그 근원으로 돌아간다(各復歸其根)'라는 말을 통하여, '귀근(歸根)'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돌아가야 할 '근원'도 근원으로의 돌아감'이라는 것도 없다.그러한 것들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다만 우리의 사고(思考) -곧 분별심(分別心)- 가 만들어낸 '환(幻)'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미 '근원(根源)'의 자리에 있으며, '지금 여기'가 또한 이미 '근원'이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그 '근원'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이를 양자역학(量子力學)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하여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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