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고(太上 下知有之)...."로 시작되는 노자의 이 章을 읽노라면 문득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이 생각난다.
子曰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것도 하니 않고도 잘 다스리신 분은 저 순(舜) 임금이실 것이다. 대저 그 분이 무엇을 하셨기에? 다만 자신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南面)하셨을 뿐이다(衛靈公 第十五)
'남면(南面)'이란 임금자리가 북쪽에 있어 임금이 자리에 앉으면 몸이 남쪽을 향하게 됨을 말하는데, 그러니까 '바르게 남면하셨을 뿐이다(正南面而已矣)'라는 것은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하여, 단지 임금자리에 앉아있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나라는 요(堯) 임금 때와 마찬가지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루고, 백성들은 "해 뜨면 나가서 일하고 해지면 들어와서 쉬네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내 먹으니 임금의 힘이 어찌 나에게 미치리오"하고 경양가(擊壤歌)를 지어 불렀다고 하니, 요(堯) 순(循) 임금 시절의 이 이야기가 여기 노자의 '太上 下知有之.....百姓皆謂我自然'과 너무나 걸맞는다.
그와 같이 일반적으로 이 章은 나라를 다스리는 네 등급의 지도자들에 관한얘기로 푼다. 그리하여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순(舜) 임금의 경우처럼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 뿐 전혀 치자(治者)의 무게를 베풀어 백성들이 그를 친근히 여기고 칭송하는 것이며, 그 다음 지도자는 법과 힘과 형벌로써 다스려 백성들을 두렵게 하는것이다. 그리고 가장 하급의 지도자는 마침내 백성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는 지도자로서 ....."등으로 푼다. 그 말도 맞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있었던 지도자들을 각 등급별로 예를 들면서 오늘날의 거울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풀면 이 장은 지금이 순간' '여기' 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 자신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이 되고 만다. 경전(經典)은 다만 그런 책이 아니다. 좀 더 입체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우리 안으로 가져가 우리 내면의 이야기로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그러면 '지도자'는 우리 각자 자신이 되고 '백성'은 내 안의 백성 -기쁨, 슬픔, 짜증, 분노(禍), 미움, 게으름, 막막함 등 지금 이순간 내게 와 있는 온갖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이 된다. 이렇게 읽었을 때 이 글은 좀더 우리 자신의 얘기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고(太上 下知有之)" 라고 했으니, 이는 내 안의 백성들을 이렇게 저렇게 간섭하거나 간택(揀擇)하지 않고 그냥 내어버려두는 (Let be)것을 말한다. 내 안의 백성들을 간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리하여 순임금처럼 다만 무위(無爲)하면 일견 우리 내면은 영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고, 또한 도대체가 잠시도 그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지만, 아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조금만 더 그렇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내어버려두면, 그 '무위(無爲)' 속에서 그 '기다림' 속에서, 우리 내면은 서서히 전혀 다른 차원으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을 진정한 풍요속으로 인도하는 '삶과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와 각성(覺醒)이 그때 일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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