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잠시'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그리고 도무지 이런 말들을 믿지를 못하는 것이다.어떻게 내 안의 '결핍'과 '부족'을 그 무엇으로든 채우지 않고, 그 냥 내버려 둘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런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잠시인들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스스로를 질서잡으려는 노력들을 아무리 아무리해도 늘 이렇게 가슴이 텅 빈듯 하건만, 그 모든 몸짓들을 정지하고서야 어떻게 '존재의 비약(飛躍)'이 올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교직에 있을 때 가르친 학생들중에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어떤이가 있다. 여고시절 그는 너무나 예뻣고 모범생이었으며 운동도 잘해 모든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는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대학을 들어가면서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만 하고 또한 늘<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긴장과 강박(强迫)속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것과 그러다 보니 언제나 남들을 의식하게 되어 단 한 순간도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게 뿌리내리지 못한 채 오랜 세월 부초(浮草)처럼 살아왔다는사실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그 자각은 그를 한없이 무너지게 했고, 이후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면서 참 많이도 아파하더니, 그래도 졸없을 하고 직장생할을 할 무렵엔 제법 건강하게 자신에 닿아있고, 스스로도 '선생님 저 많이 컸어요!'라고 말할 만큼 많이 성숙해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가는 문득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연락이 왔는데, 오랜만에 만나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그간에 있었던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와 세월들을 얘기하는 중에 그 언뚯 언뚯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의 '궁극의 갈증'을 내비쳤고, 나중엔 급기야 거의 입술이 타는 듯한 심정이 되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오랜 목마름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하자면 이데오르기형의 사람이었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삶을 무언가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했고, 그런 만큼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고자 했다. 그래서 언제나 그런 고삐를 자신에게서 늦추지 않았고, 무엇을 하든 '삶의 보람'을 찾아 항상 목말라 했다. 대학을 다닐 때에도 시간만 나면 이런저런 봉사와 다양한 '활동'에 매달렸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나 심지어 아이를 키울 때에도 많은 순간 순간들이 보다 더 뜻깊고 가치있는 일들로 채워지지 못한 채,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만 같아, 언제나 스스로 안달하며 발을 동동거리곤 했다.
아아 그렇게 속들 태우면서까지 열심히 살고자 했고, 그런만큼 자신에게서는 잠시의 게으름이나 무의미함도 용납하지 않으며, 오직 '인간으로서의 값어치'를 다하기 위해 몸부림쳐 왔건만 이제 와서 그는 오히려 그 흐른 세월만큼이나 더 깊어지고 더 커져 있는 자신의 내면의 공허를 목격해야만 했고 그와 더불어 사실 자신 속에는 단 한 톨의 진정한 평화도 '생명'도 없다는 참담한 자각마져하게 되어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파리하게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걸 이제 끝내고 싶니? 네 오랜 갈증말이야." "네 그래요! 정말요! 정말 그러고 싶어요! 이대로는 더 이상......!"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그럼 선생님이랑 이렇게 한 번 해보자꾸나, 네가 그토록 갈구하는 삶의 모든 갈증이 끝이 난 진정한 풍요화 자유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야 말하자면 그것은 네가 그 오랜 세월 스스로를 질서잡으려고 피말리듯 기울여온 그런 노력과 '열심'을 통해서는 오는게 아니라는 말이지, 노력과 열심은 우리에게 많은 성과들을 가져다 줄는진 모르지만 우리를 자유케 하지는 못해, 왜냐하면 우리가 기울이는 많은 노력과 열심은 대개 '미래'를 향해 있지만,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 '현재'에 있거든? 그러니까 네가 진실로 진실로 자유코자 하거든 이렇게 한 번 해보렴"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한 달간의 실험'을 제안했다. 즉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그런 다짐과 결심과 노력을 통해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우선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는것, 따라서 지금까지 자신이 기울여온 자기 완성을 향한 그 모든 노력과 열심을 정지하고, 나와 '실험'에 들어가는 이 한달간만이라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있어보라는것, 그런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함으로서 자기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던 지금까지의 삶이 모습에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전신적 공황(恐慌)과도 같은 결딜 수 없는 힘겨움과 고통을 초래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렇게 적어도 긴 인생 가운데 단 한 달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보면 그 '무위(無爲)' 속에서, 그 '그침(止)'속에서 지금 까지와는 전혀 다른, 참으로 많은 내적인 발견들이 있게 될 터이고, 그러면 그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그의 그 오랜 갈증은 끝날 것이라는 것 등을 힘주어 말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자신의 갈증이 끝날 수 있다는 말에 뛸듯이 기뻐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질문 들을 마구 쏟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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