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63 제17장 그리 되었다 한다-4

ria530 2013. 5. 6. 09:24

도덕경-63 제17장 그리 되었다 한다-4
"그러면 선생님 책은요? 그 한 달 동안 책도 읽지 말아야 하나요? 음악도 듣지 말구요? 여행은요? 얼마전에 스쿼시(squash)를 배우려고 등록해 뒀는데, 그것도 가지 말아야 하나요? 또 동내 아줌마들 몇이서 아이들에게 대한 바른 교육을 연구해 보자며 모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은요? 그것도 그만둬야 하나요?....."
  "그래 그 모든 것들은 얼핏 보면 열심히 사는 모습들인 것 같고, 너 자신과 세상의 향상을 위한 아름다운 몸부림들인 것같지만, 적어도 지금의 네 경우에 있어서는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가만히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일을 하는 기쁨이나 편안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고, 끊임없이 무언가에 쫏기는 듯한 불안과 의무감 같은 것밖에 보이질 않아, 말하자면 자신 속에는 모두를 진정으로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씨앗이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상생(相生)'을 외치고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 이제 그만 하자는 거야, 바깥'을 향한 의미나 가치를 향한 그 모든 몸짓들을 그만두고, 다만 현재 너의 그 메마름 속에 그냥 있어보라는 거야. 그러면돼. 네가 그토록 목말라 하는 진정한 충만은 바로 그 현재의 메마름 속에 있건만. 너는 끊임없이 그 메마름을 벗어나고자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달려가고 있으니, 그 모든 애틋함에도 불구하고 갈증이 끝나질 않는 거야, 그래서 선생님은 이 '한 달 실험'이라는 것을 통하여'바깥'을 향한 너의 그 모든 내 외적인 구멍들을 틀어막고 다만 너를 이 '현재'에 묶어두려는 거구.......무슨 말인지 알겠니?"

한참을 귀기울여듣던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신의 삶 속으로 돌아갔고, 자신 속에 진정한 '생명'없음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곧바로 '실험'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처음 한주 동안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다. 설거지는 물론이요, 빨래도 청소도, 심지어 아이가 아파 울어도 병원에조차 데려가지 않았단다. 얼마나 그 마음의 절박했으면.....! 그래서 '생활의 최소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반드시 '자기향상의 몸부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12주째가 되자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이번엔 자신이 지금 잘 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그냥 그런 채로 하는 거란다. '실험'이란 반드시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거나 이해하고서 하는게 아니야, 그러니 그냥 그 모호함 속에 있어보렴 그냥 모호하렴."
그런데 그게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그 전화를 끝으로 그는 '실험'을 약속한  한 달이 훨씬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없었고, 나는 그 한 달 동안 그와 마음을 함께 했었기에 전전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근 한 달 보름이 지난 어느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너무나 반갑고도 또 '실험'이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해 대뜸 물었다.
  "하이고 얘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왜 그렇게 소식이 없었더냐!"
그랬더니 그가 하는 말이
"사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선생님을 완전히 잊고 살았어요. 호호호 죄송해요......"
아아 그의 그 오랜 갈증은 이미 끝나 있었다! 전화선을 타고 일렁여오는 그의 목소리 하나 하나에서 나는 그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기쁘던지!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맛있는 점심을 사드리고 싶다며 그가 다시 나를 찾아왔는데 (그는 멀리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안동찜닭'을 사이에 두고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 그가 잔잔히 미소지으며 내게 들려준 말은 아직도 내 귀에 선하다.
  "선생님 불상현(不尙賢) 그게 진리였어요......!"
그는 그렇게 다시 '자기 자신'과 '현재'로 돌아왔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게 되면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내면의 부름을 따라 이제는 또다른 모습으로 힘있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와의 '실험'을 조금 성명하자면 이렇다.
우리 안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어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 덩어리이다. 에너지는 곧 '질서(cosmos)'이다, 그런데 이 에너지 혹은 질서는, 에너지 혹은 질서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우리 자신이 어마어마한 에너지 덩이로 보이기는커녕 맥없고 약하기 짝이 없는 모잘것없는 존재로 보이고, 그저 무질서하고 혼돈스럽게만 여겨질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바로 이러한 무지(無知)와 불신(不信)이 끊임없는 자신의 노력과 열심으로서 스스로를 질서잡으려는 더 큰 어리석음에로 우리를 이끌어가는데 아마 그것 또한 무지나 어리석음으로 보이질 않고, 엉뚱하게도 '참된 자유와 지혜를 향한 길'로만 보이니, 이 거듭된 생의 실족(失足)을 어찌할고!

내가 나를 질서잡으려는 모든 노력을 정지할때, 그때 비로소 본래부터 내안에 있던 무한의 '질서 에너지' ㅡ이것이 바로.참나(眞我)이다ㅡ 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건만, 나와 내 온 삶은 온통 우주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출렁이게 되는 것이다. 축복이어라!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侮之......나는 이 문장을 또한 우리 내면으로 가져가, 다만 우리 내면의 이야기로 풀었다. 즉 '其次 親而譽之'는 나와 내 안의 백성들 사이에 친밀함과 따뜻함이 있어, 서로 아무런 충돌이나 문제 없이 편안하나 삶의 진정한 자유와 충만함에는 닿지 못한 모습으로 '其次 畏之'는 지나치게 때달음이나 자기 완성에 집착한 나머지 자기 안의 백성들을 오직 한 뱡향으로만 몰아 붙여, 언제나 그들을 주눅들게 하고 두렵게 하는 모습으로 , 그리고 '其次 侮之'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언제나 업신여기기만 할 뿐, 단 한발짝도 자기 자신과 삶 속으로 발을 떼어놓지 못하는 모습으로 풀었다. 이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無知와 不信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몸짓들인 것이다(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 其貴言
삼가 그말을 아낀다 함은 내안의 백성들에 대하여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거나 간택(揀擇)하지 않음 ㅡ무위(無爲)ㅡ을 의미하고
功成事遂
그 無爲를 통하여 내 안에 본래부터 있던 우주적 에너지와 하나가 되어, 마침내 자유함이 곧 '功成事遂'이며,
百姓皆謂我自然
그렇게 내가 비로소 '참나(眞我)가 되고 보니 오호라! 나는 언제나 '참나'였지 단 한 순간도 '참나'가 아닌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 어찌된 일인가.....?그때 내안의 모든 백성들이 말하기를 저절로 그리 되었다 한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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