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梁惠王章句上 제7장 해설

ria530 2012. 6. 6. 14:26

<제7장>

齊宣王이 問曰 齊桓晉文之事를 可得聞乎엇가

제선왕이 물어 가로대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가히)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라.

 

▲ 齊宣王의 姓은 田氏오 名은 辟彊이라. 諸侯僭稱王也라. 齊桓公 晉文公은 皆覇諸侯者라.

제선왕의 성은 전씨요, 이름은 벽강이라. 제후가 참람하게 왕을 일컬음이라.

제환공 진문공은 모두 제후들중 으뜸인(覇) 자라.

 

▲ 齊宣王이 問曰 五覇迭興하야 桓文爲盛하니 其當時取威定覇之事를 亦可使寡人으로 得聞之乎아! (迭 : 차례 질)

제선왕이 물어 가로대 오패(齊桓公, 晉文公, 楚莊王, 宋襄公, 秦穆公)가 차례로 일어나 환공과 문공이 (먼저) 흥성하니 그 당시에 위엄을 취하고 으뜸이 된 일을 (또한) (가히) 과인으로 하여금 (얻어) 들을 수 있게 하겠습니까?

 

 

孟子 對曰 仲尼之徒 無道桓文之事者라 是以로 後世에 無傳焉하니 臣이 未之聞也호니 無以則王乎인뎌

맹자 대답하여 가로대 “공자의 제자들이 환공 문공의 일을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이로써 후세에 전해진 바가 없었기에 臣이 (아직) 듣지 못했으니 이야기를 그만두지 않은즉 왕노릇(王道)하는 얘기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하니라.

<해설>

맹자는 제환공과 진문공이 떳떳이 왕도를 행했으면 공자의 학문 계통에 전해졌을 터이지만 패도를 행하였기에 전해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는 공자의 학문을 이어받은 사람이기에 그러한 일을 아는 바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패제후한 일을 맹자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왕도를 얘기할 터이니 계속 들어보라는 뜻이다.

 

 

▲ 道는 言也라. 董子曰 仲尼之門에 五尺童子도 羞稱五伯는 爲其先詐力而後仁義也라 하니 亦此意也라. 以는 已로 通用이니 無已는 必欲言之而不止也라. 王은 謂王天下之道라. (伯: 맏 백, 여기서는 ‘패’로 읽음)

도(道)는 말함이라. 동자(동중서) 가로대 “공자 문하의 오척동자도 오패를 일컫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은 (그) 사력(겉으로는 仁義와 왕도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간사하게 거짓을 행하는 힘)을 먼저 하고 仁義를 뒤에 하기 때문이라 하니 또한 이 뜻이라.

이(以)는 ‘그칠 이(已)’로 통용하니, 무이(無以)는 반드시 말하고자 하여 그치지 아니함이라. ‘王’은 천하에 왕노릇하는 道를 일컬음이라.

 

孟子對曰 臣은 學本之仲尼니 仲尼之徒尊王賤覇하야 無有稱道桓文之事者라 是以로 後世에 無傳述焉하니 臣이 未之有聞也라. 王必欲臣言之不已면 其惟王天下之道乎인저!

맹자 대답하여 가로대 “臣은 본래 공자의 道를 배웠으니 공자의 무리가 왕도를 높이고 패도를 천히 여겨 환공.문공의 일을 일컬어 말한 자가 있지 않음이라. 이로써 후세에 전술한 이가 없어 臣이 들음이 있지 아니하니라. 왕께서 반드시 臣이 말하는 것을 그치지 않게 하고자 하면 (이는) 오직 천하에 왕노릇하는 王道가 있을 뿐이니이다”하니라.

 

 

曰 德이 何如則可以王矣리잇고 曰 保民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이다

(제선왕이) 가로대 “德이 어떠하여야 (가히) (써) 왕노릇 할 수 있겠습니까?” 물으시니, (맹자) 가로대 “백성을 보전하여 왕노릇하면 능히 막을 수 없으리이다.” 하니라.

 

保는 愛護也라 : 보(保)는 사랑하고 보호함이라.

 

 

曰 若寡人者도 可以保民乎哉잇가 曰 可하니이다 曰 何由로 知吾의 可也잇고

(제선왕이) 가로대 “과인 같은 자도 (가히 써) 백성을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까?”라 하니, (맹자) 가로대 “할 수 있으니이다.” 하니라.

(제선왕) 가로대 “무슨 이유로 나의 가(可)함을 아십니까?” 하니라.

 

曰 臣이 聞之胡齕호니 曰 王이 坐於堂上이어시늘 有牽牛而過堂下者러니 王이 見之하시고 曰 牛는 何之오 對曰將以釁鍾이니이다 王曰 舍之하라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하노라 對曰 然則廢釁鍾與잇가 曰 何可廢也리오 以羊易之라 하샤소니

(이에 맹자가) 가로대 “臣이 호흘에게 들으니 (호흘이) 가로대 ‘왕께서 堂위에 앉아 계실 적에 소를 끌고 堂아래를 지나는 자가 있어 왕이 보시고는 ’소가 어디가냐‘고 물으시기에, (호흘이) ’장차 (써) 흔종하려 하니이다‘고 대답하니, 왕께서 ’놓아 주어라, (그) 두려워하고 벌벌 떨면서 죄없이 죽으러 나아가는 것과 같음을 내가 차마 참지 못하노라.‘ 말씀하시니, (호흘이 다시) 대답하여 ’그러면 흔종을 폐할까요.‘ 말하니, (왕께서) ’어찌 가히 폐하리오. 양으로 바꾸라‘ 말씀하셨다’ 하니라.

 

不識게이다 有諸잇가

(이에 맹자가) ”(제가) 알고 있지 못한 바입니다. 실제로 (왕께서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니라.

 

齕 : 깨물 흘 釁 : 피바를 흔, 틈 흔 釁鍾 : 종이 갈라진 틈에 짐승피를 바르는 일 觳 : 곱송그릴(놀라거나 겁이 나서 몸을 잔뜩 움츠리는 모양) 곡, 두려워할 곡 觫 : 곱송그릴 속

 

胡齕은 齊臣也라. 釁鍾은 新鑄鍾成하야 而殺牲取血하야 以塗其釁郄也라. 觳觫은 恐懼貌라. 孟子 述所聞胡齕之語하시고 而問王하사대 不知게라. 果有此事否라 하시니라

호흘은 제나라 신하라. 흔종(釁鍾)은 새로 쇠를 녹여 부어 종을 완성시킬 때 (희생) 짐승을 죽여 피를 취해서 (써) 그 틈에 바르는 것이라. 곡속(觳觫)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모양이라. 맹자가 호흘에게 들은 바의 말을 구술(口述)하시고 왕께 묻되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닙니까?” 하니라.

(鑄 : 쇠 부어 만들 주 塗 : 바를 도 郄 : 隙(틈 극)와 同字, 郤의 俗字)

 

 

曰 有之하니이다 曰 是心이 足以王矣리이다 百姓은 皆以王爲愛也어니와 臣은 固知王之不忍也하노이다

(제선왕) 가로대 “(그런 일이) 있었나이다.” 하니, (맹자) 가로대 “그런 마음은 족히 (써) 왕노릇 하겠나이다. 백성은 다 왕으로써(왕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인색하다고 하지만 臣은 진실로 왕께서 不忍(차마 그러하지 못함)함을 알고 있습니다.”하니라.

愛 : 아낄 애, 인색할 애

 

 

王이 見牛之觳觫而不忍殺은 則所謂惻隱之心 仁之端也라. 擴而充之면 則可以保四海矣라. 故로 孟子 指而言之하사 欲王이 察識於此而擴充之也시니라. 愛는 猶吝也라. (擴 : 넓힐 확)

왕이 소가 벌벌 떠는 것을 보고 차마 죽이지 못함은 즉 이른바 측은한 마음, 仁의 실마리라. 측은지심(또는 不忍之心)을 넓혀서 채우면 (가히 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음이라. 이에 맹자가 (이를) 가리켜 말하되 왕이 이를 살펴 알았다면 (백성들에게까지) 이를 확충케 하고자 함이라. 愛는 인색하다와 같은 뜻이라.

 

 

王曰 然하다 誠有百姓者로다마는 齊國이 雖褊小나 吾何愛一牛리오 卽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라 故로 以羊易之也호이다

왕이 가로대 “그러하오. 진실로 백성들이 있고 제나라가 비록 좁고 작은 나라이긴 하나 내 어찌 소 한마리를 아끼리오. 즉 (그) 두려움에 떨며 죄없이 죽으러 나아가는 것과 같음을 차마 참지 못한 고로 이에 양으로써 바꾸라”고 하였나이다. (褊 : 좁을 편)

 

言 以羊易牛는 其迹似吝하야 實有如百姓所譏者나 然이나 我之心은 不如是也라.

양으로써 소를 바꾼 것은 그 자취(행위)가 인색한 것 같아서 실로 백성들이 기롱(비난)하는 바 같은 것이 있으나 그러나 내(맹자) 마음은 이와 같지 않음을 말함이라.

譏弄(기롱) : 남을 업신여기어 실없는 말로 놀림

 

 

曰 王은 無異於百姓之以王爲愛也하쇼셔 以小易大어니 彼惡知之리잇고 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則牛羊을 何擇焉이리잇고

(맹자) 가라사대 “왕은 백성의 왕으로써 인색하다 함을 괴이(달리) 여기지 마소서. 작은 양으로써 큰 소를 바꿈이니 저(백성들이) (그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왕이 만약 그 무죄한 것이 사지에 나감과 같음을 측은히 여기신즉 소와 양을 어찌 가려냈겠습니까? ” 하니라.

 

王이 笑曰 是誠何心哉런고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언마는 宜乎百姓之謂我愛也로다

왕이 웃어 가로대 “이것이 진실로 무슨 마음이런고. 내가 (그) 재물을 아껴서 양으로 바꿈이 아니건마는 백성이 나를 일러 인색하다 함이 마땅하리로다.” 하니라.

 

 

異는 恠也오 隱은 痛也오 擇은 猶分也라. 言 牛羊이 皆無罪而死어늘 何所分別하야 而以羊易牛乎아 孟子 故設此難은 欲王이 反求而得其本心이언마는 王이 不能然故로 卒無以自解於百姓之言也라.

이(異)는 괴이함이오, 은(隱)은 아파함이오, 택(擇)은 ‘나누다(분별하다)’와 같으니라. 소와 양이 다 죄없이 죽거늘 어찌 (이를) 분별하여 양으로써 소를 바꾸었겠는가? 라고 말함이라. 맹자가 짐짓 이 힐난을 베풀은 것은(고의적으로 이 어려운 문제를 가설한 것은) 왕으로 하여금 돌이켜 구해서(反求諸身) 그 본심을 얻게 하고자 함이건만 왕이 능히 그러하지 못한 고로 마침내 (써) 스스로 백성들의 (비난하는) 말을 해명하지 못하니라. (恠 : 怪(기이할 괴)의 俗字 故 : 짐짓 고 設 : 가설 설)

 

孟子難之曰 王無怪乎百姓之以王爲愛也라. 以羊之小而易牛之大는 迹有可疑하니 彼百姓이 惡知王之心爲不忍也리오. 王若果不忍其無罪就死地則牛無罪羊亦無罪어늘 何所擇而以羊易牛乎아

맹자가 힐난하면서 말씀하기를 “왕은 백성의 왕으로서 인색하다함을 괴이 여기지 마시라. 羊의 작은 것으로써 소(牛)의 큰 것을 바꾼 것에는 자취(행위)가 가히 의문이 있으니 저 백성이 어찌 왕의 마음이 不忍함을 알겠습니까? 왕이 만약 (과연) (그) 죄없이 죽는 곳에 나아감을 차마 참지 못한다면 소도 죄가 없고 양도 죄가 없거늘 어찌 분별하여 양으로써 소를 바꾸랴 하겠습니까?” 하니라.

 

▲ 王不能自察識也로대 但順其所難之意而笑曰吾以羊易牛는 不知當時是誠何心哉런고 我實非愛其財而何故로 以羊之小로 易牛之大也라. 是吾之心을 且不能自解矣라 宜乎百姓不識吾心而謂我愛也라.

왕이 능히 스스로 살펴 알지 못하되 다만 그 힐난한 바의 뜻을 순화시켜 웃어 가로대 “내가 양으로써 소를 바꾼 것은 당시에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이었던지 알지 못하던 바라. 내가 실은 (그) 재물을 아끼지 않았는데 무슨 연고로 양의 적은 것으로써 소의 큰 것을 바꾸라 하였겠는가? (이) 내 마음을 (또한) 능히 (나 자신도)스스로 해득을 못하니 백성들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나를 인색하다 이름이 마땅함이라.” 하니라.

 

 

曰 無傷也라 是乃仁術也니 見牛코 未見羊也일새니이다 君子之於禽獸也에 見其生하고 不忍見其死하며 聞其聲하고 不忍食其肉하나니 是以로 君子는 遠庖廚也니이다

(맹자) 가로대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이야말로 인을 행하는 방법이니 소는 보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금수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 죽음을 차마 보지 못하며 그 (죽으면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그 고기를 차마 먹지 못하나니 이로써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합니다.” 하니라. (庖 : 푸주간 포 廚 : 부엌 주)

 

 

無傷은 言雖有百姓之言이나 不爲害也라. 術은 謂法之巧者라.

蓋殺牛는 旣所不忍이오 釁鐘도 又不可廢니 於此에 無以處之면 則此心이 雖發이나 而終不得施矣라. 然이나 見牛則此心이 已發而不可遏이오 未見羊則其理未形而無所妨이라. (遏 : 막을 알 妨 : 해로울 방)

무상(無傷)은 비록 백성의 말이 있으나 해롭지 아니함이라. 술은 법의 공교로움을 이름이라.

대개 소를 죽임은 이미 차마 참지 못하는 바이오, 흔종도 (가히) 폐하지 못하니 이에 (써) 대처함이 없으면 이 마음(不忍之心)이 비록 발했으나 끝내는 (얻어) 베풀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소를 본즉 이 마음이 이미 발해서 가히 막지 못하고, 양을 보지 못한즉 그 이치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해로운 바가 없느니라.

 

故로 以羊易牛則二者를 得以兩全而無害하니 此所以爲仁之術也라. 聲은 謂將死而哀鳴也라 蓋人之於禽獸에 同生而異類라.

故로 用之以禮하고 而不忍之心을 施於見聞之所及하야 其所以必遠庖廚者 亦以預養是心하야 而廣爲仁之術也라.

이에 양으로써 소를 바꾸면 두 가지를 얻어 (써) 두 가지가 다 온전해서 해가 없으리니 이는 (써한 바) 仁을 행하는 방법이라. 소리는 장차 죽는데 슬퍼 울음을 이름이라. 대개 사람이 금수에 비해 살아 있는 것은 같되 종류는 다르니라.

이에 (살면서) 禮로써 쓰고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보고 듣는 바에 미치어 베푸니, (그) (써한 바) 반드시 푸주간을 멀리 하는 것은 또한 (써) 이 마음(不忍之心)을 미리 길러서 仁을 행하는 방법을 넓힘이라.

 

 

王이 說曰 詩云他人有心을 予忖度之라하니 夫子之謂也로소이다 夫我乃行之하고 反而求之호대 不得吾心이라니 夫子 言之하시니 於我心에 有戚戚焉하여이다 此心之所以合於王者는 何也잇고

왕이 기뻐하여 가로대 “『시경』에 이르기를 ‘타인의 마음 둠을 내가 헤아린다’ 하니 선생을 일컫는 것이로소이다. 무릇 내가 이에 그 마음을 행하고 돌이켜 구하되 내 마음을 얻지 못하더니 선생께서 말씀하시니 내 마음에 느끼는 감동이 있나이다. 이 마음이 (써) 왕노릇(王道)에 부합하는 바는 어찌된 까닭입니까?

 

(說 : 기쁠 열 忖 : 헤아릴 촌 度 : 헤아릴 탁 戚 : 슬플 척)

 

 

詩는 小雅巧言之篇이라 戚戚은 心動貌라. 王이 因孟子之言하야 而前日之心이 復萌하야 乃知此心이 不從外得이나

然이나 猶未知所以反其本而推之也라.

詩는 소아 교언편이라. 척척은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이라. 왕이 맹자의 말씀으로 인하여 전일의 마음이 다시 싹터서 이에 이 마음이 밖으로 쫓아 얻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으나

그러나 오히려 (써한 바) 그 근본을 돌이켜 미뤄 나가는 바는 알지 못하느니라.

 

 

曰 有復於王者 曰 吾力足以擧百鈞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而不見輿薪이라면 則王은 許之乎잇가 曰 否라

(맹자) 가로대 “왕에게 고하는 이 있어 가로대 ‘내가 힘이 족히 (써) 삼천근을 들수 있되 족히 (써) 새털 한 깃은 들지 못하며, 밝음(시력)은 족히 (써) 가을 터럭의 끝을 살필 수 있되 수레에 실은 섶은 보지 못한다’ 하면 왕은 이를 인정하겠습니까?” 하니라. (왕) 가로대 “아니라.”하니라.

 

今에 恩足以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는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은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는 爲不用恩焉이니 故로 王之不王은 不爲也ㅣ언정 非不能也니이다

 

(이에 맹자 가로대) “이제 은혜가 족히 (써) 금수에게 미치는데 (정치의) 功效(공효)는 백성에게 이르지 못함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새털 한 깃을 들지 못한다는 것은 힘을 쓰지 않음으로 인함이며, 수레의 섶을 보지 못함은 밝음을 쓰지 않음으로 인함이며, 백성 보전함을 보지 못함은 은혜를 쓰지 않음으로 인함이니 이에 왕이 왕노릇 못함(왕도를 행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아서이지 할 수 없어서가 아니니이다. (復 : 고할 복)

 

復는 白也라 鈞은 三十斤이니 百鈞은 至重難擧也라. 羽는 鳥羽니 一羽는 至輕易擧也라. 秋毫之末는 毛至秋而末銳니 小而難見也라. 輿薪은 以車載薪이니 大而易見也라. 許는 猶可也라. 今恩以下는 又孟子之言也라.

복(復)은 사룀이라. 균(鈞)은 삼십근이니 백균은 지극히 무거워 들기 어려움이라. 우(羽)는 새의 깃이니 한 깃은 지극히 가벼워 들기 쉬움이라. 가을 터럭의 끝은 터럭이 가을에 이르면 끝이 뾰족함이니 작아서 보기 어려움이라. 여신(輿薪)은 수레로써 섶을 실음이니 커서 보기 쉬움이라. 허(許)는 ‘可’와 같음이라. ‘今恩’ 이하는 또 맹자의 말씀이라.

 

蓋天地之性에 人爲貴故로 人之與人은 又爲同類而相親이라. 是以로 惻隱之發은 則於民切而於物緩하고 推廣仁術은 則仁民易而愛物難이어늘 今王此心이 能及物矣면 則其保民而王은 非不能也오 但自不肯爲耳라.

대개 천지의 성품에 사람이 貴한 고로 사람이 사람과 더부는데 또한 동류가 되고 서로 친함이라. 이로써 측은한 마음이 발함은 곧 백성에게는 간절하게 하고 물건에는 느긋하게 하며, 仁을 행하는 방법을 미루어 넓히는 데 있어서 (즉)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쉽게 하고 물건 사랑하는 것은 어렵게 해야 하거늘 이제 왕의 (이) 마음(측은지심)이 능히 물건에게까지 미친다면 즉 (그) 백성을 보전해서 왕노릇하는 것이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스스로 즐기어 하지 아니할 뿐임이라.

 

孟子 又設喩以啓之 曰 有人이 復白於王者曰吾之力이 足以擧百鈞之重而不足以擧一羽之輕하며 吾之明이 足以察秋毫之末之小而不足以見輿薪之大則 王은 許之爲誠然乎아 王曰 否라. 人未有擧重而不能擧輕하며 見小而不能見大者也라.

맹자가 (또) 비유를 제시함으로써 그 문제를 열어주며 가로대 “사람이 왕에게 복백하는 자가 있어 가로대 ‘나의 힘이 족히 (써) 백균의 무게를 들되 족히 (써) 새털 한 깃의 가벼움은 들지 못한다 하며, 나의 밝음이 족히 (써) (짐승의) 가을 털의 끝인 작은 것을 살피되 족히 (써) 수레의 섶인 큰 것은 보지 못한다’한즉 왕께서는 可하다 하면서 진실로 그러하다 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가로대 “아니오이다. 사람이 무거운 것을 들면서 능히 가벼운 것을 들지 못하거나 작은 것은 보면서 큰 것을 능히 보지 못한다고 하는 자는 없나이다.”하니라.

 

孟子曰 王旣知此면 則知保民而王無難事矣라. 蓋民物之待吾仁者는 有緩急而吾之施仁於民物者는 有難易어늘

맹자 가로대 “왕께서 이미 이를 아시면 백성을 보전해서 왕노릇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 것입니다. 대개 백성이나 짐승이나 나의 어짊을 기다리는 데는 완급이 있고 내가 어짊을 백성이나 짐승에게 베푸는 데는 어렵고 쉬움이 있거늘,

 

今王이 不忍一牛之死하야 恩足以及禽獸하니 是能擧百鈞察秋毫也 而乃坐視斯民之危하고 功不至於百姓이면 是一羽之不擧輿薪之不見也라.

이제 왕이 소 한마리의 죽음을 차마 참지 못하겠다면서 은혜가 족히 (써) 금수에게 미치니 이것은 (능히) 삼천근을 들 수 있고 秋毫를 살필 수 있는 것이니이다. 그럼에도 (이에) (이) 백성의 위태함을 좌시하고 (정치의) 功效가 백성에 이르지 못하면, 이것은 새의 깃을 들지 못하고 수레의 섶을 보지 못하는 것이오이다. “ 하니라.

 

恩能及於所難而獨不能及於所易하니 其故는 獨何與오. 然則一羽之不擧는 非無力也오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은 非無明也오. 爲不用明焉며 百姓之不見保는 非無恩也오 爲不用恩焉이라.

(맹자 다시 가로대) “은혜가 능히 어려운 바(짐승)에는 미치고 유독 능히 쉬운 바(사람)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 까닭은 유독 무엇이겠습니까? 그런즉 새의 깃을 들지 못함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을 쓰지 않음으로 인함이며, 수레의 섶을 보지 못함은 밝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밝음을 쓰지 않음으로 인함이며, 백성을 보전함을 보지 못함은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쓰지 않음으로 인함이니이다. ” 하며

 

旣不用恩因以不王 故로 王可以王而不王者乃能之而不爲也라. 非欲爲之而不能也라.

“이미 은혜를 쓰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왕노릇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왕이 가히 (써) 왕노릇할 수 있는데도 왕노릇하지 못하는 것은 (이에)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기 때문이지 하고자는 하는데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니이다.“고 말하니라.

 

 

曰 不爲者와 與不能者之形이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야 以超北海를 語人曰 我不能이라하면 是는 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를 語人曰 我不能이라 하면 是는 不爲也인정 非不能也니 故로 王之不王을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라 王之不王은 是 折枝之類也니이다

(왕이) 가로대 “하지 않는 자와 (다못) 능치 못한 자의 형상이 어찌 (써) 다르게 나타납니까?” 하니, (맹자) 가로대 “태산을 옆에 끼고서 (써) 북해를 뛰어넘음을 사람에게 일러 가로대 ‘내가 할 수 없다’ 하면, 이는 진실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지만, 어른을 위해서 나무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여 가로대 ‘내가 할 수 없다’ 하면, 이는 하지 않은 것일말정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이다. 따라서 왕이 왕노릇 못함은 태산을 끼고서 (써) 북해를 뛰어넘는 부류와 같은 것이 아니라 (왕이 왕노릇 못한다) 이것은 나무가지를 꺽는 것과 같은 부류이니이다.” 하니라.

 

形은 狀也라. 挾은 以腋持物也라. 超는 躍而過也라. 爲長者折枝는 以長者之命으로 折草木之枝니 言不難也라 是心이 固有하야 不待外求이니 擴而充之는 在我而已어늘 何難之有리오 (腋 : 겨드랑이 액)

형(形)은 형상이라. 협(挾)은 겨드랑이로써 물건을 가짐이라. 초(超)는 뛰어 넘음이라.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음은 어른의 명으로써 초목의 가지를 꺾음이니 어렵지 않음을 말함이라. 이 마음(측은지심)이 진실로 있어서 밖에서 구함을(밖에서 누가 갖다주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니, 넓혀 채워나가는 것은 내게 (오직) 있을 뿐이어늘 무슨 어려움이 있으리오. (조기의 註는 ‘折枝’를 팔다리를 주물러 주다 로 해석함)

 

 

老吾老하야 以及人之老하며 幼吾幼하야 以及人之幼면 天下는 可運於掌이니 詩云刑于寡妻하야 至于兄弟하야 以御于家邦이라하니 言擧斯心하야 加諸彼而已니이다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기는 것으로써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어린 아이를 어린 아이로 보살피는 것으로써 남의 어린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가히 손바닥에서 갖고 노는 것일지니, 『시경』에 이르되 “덕이 부족한 아내에게 법이 되는 행동을 해서 형제에게 이르게 하여 (써) 가정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는) 이 마음을 들어 가져다가 저들에게 쓸 따름임을 말하는 것이니이다.

 

故로 推恩이면 足以保四海오 不推恩이면 無以保妻子니 古之人이 所以大過人者는 無他焉이라 善推其所爲而已矣니 今에 恩足以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者는 獨何與니잇고

이에 은혜를 미루어 베풀면 족히 (써) 온 나라를 보존할 수 있으나, 은혜를 미루어 베풀지 아니하면 (써) 처자도 보존하지 못하니이다. 옛적의 사람이 (써한 바) 남보다 크게 뛰어난 바는 딴 것이 없으니, 그 해야 하는 바를 잘 미루어 베풀 따름이니이다. 이제 은혜가 족히 (써) 금수에게는 미치되 (정치의) 공효는 백성에게 이르지 못함은 유독 어찌해서 그런 겁니까?

 

老는 以老事之也니 吾老는 謂我之父兄이오 人之老는 謂人之父兄이라. 幼는 以幼畜之也니 吾幼는 謂我之子弟요 人之幼는 謂人之子弟라. 運於掌은 言易也라. 詩는 大雅思齊之篇이라. 刑은 法也라. 寡妻는 寡德之妻니 謙辭也라. 御는 治也라. 不能推恩이면 則衆叛親離이라. 故로 無以保妻子라. (畜 : 기를 휵)

노(老)는 늙음으로써 섬김이니 내 늙은이는 나의 父兄을 이름이오, 남의 늙은이는 남의 父兄을 이름이라. 유(幼)는 어림으로써 기름이니 ‘吾幼’는 나의 자제를 이름이오, 남의 어린이는 남의 자제를 이름이라. 손바닥에서 운전함은 쉬움을 말함이라. 詩는 대아 사제편이라. 형은 법이라. 寡妻는 덕이 부족한 아내이니 겸손한 말이라. 어(御)는 다스림이라. 능히 은혜를 미루어 베풀지 아니하면 즉 무리가 배반하고 친척이 떠나느니라. 이에 (써) 처자를 보존하지 못하느니라.

 

▲ 蓋骨肉之親은 本同一氣니 又非但若人之同類而已이라. 故로 古人이 必有親親推之然後에 及於仁民하고 又推其餘然後에 及於愛物하니 皆由近以及遠이오 自易以及難이어늘 今王이 反之면 則必有故矣라. 故로 復推本而再問之하시니라.

대개 골육의 친척은 본래 같은 기운이니 (또) (이는) 단지 사람과 같은 동류일 뿐만 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 이에 옛 사람이 반드시 어버이를 봉양함을 미루어 베푼 연후에, 백성을 사랑함에 이르고 또 그 나머지에게 미루어 베푼 연후에야 물건(짐승)을 사랑함에 미치니, (이는) 모두 가까운데서 비롯하여 (써) 멀리 미침이오, 쉬움으로부터 (써) 어려움에 이르는 것이어늘 이제 왕이 반대로 하면 반드시 까닭이 있음이라. 이에 (맹자가) 다시 근본을 미루어 재차 물으심이니라.

 

 

權然後에 知輕重하며 度然後에 知長短이니 物皆然이어니와 心爲甚하니 王請度之하쇼셔

저울질한 연후에 가볍고 무거움을 알며 자로 잰 연후에 길고 짧음을 아나니 (천지자연의) 만물의 이치가 다 그러하거니와 (그 중에서도) 마음은 (더욱) 심하니 왕은 청컨대 이를 헤아리소서

 

權은 稱錘也오 度는 丈尺也오 度之는 謂稱量之也라. 言 物之輕重長短은 人所難齊로대 必以權度로 度之而後에 可見이어니와 若心之應物은 則其輕重長短之難齊를 而不可不度以本然之權度요 又有甚於物者어늘

권(權)은 저울질함이요, 도(度)는 긴 자인 長, 짧은 자인 尺이다. 탁지(度之)는 칭량(헤아림)을 이름이라.

물건의 경중과 장단은 사람이 가지런하기 어려운 바로되 반드시 저울과 잣대로써 헤아린 뒤에 볼 수 있으나, 마음이 물건에 응하는 것 역시 그 경중과 장단을 가지런하기 어려운 바로되 (가히) 본연(마음)의 권도로써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 물건보다는 심함(어려움)이 있음을 말하니라.

 

今王이 恩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하니 是其愛物之心은 重且長하고 而仁民之心은 輕且短하야 失其當然之序하고도 而不自知也라.

故로 上文에 旣發其端하사 而於此에 請王度之也시니라.

이제 왕이 은혜는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정치의) 공효는 백성에게 이르지 못하니 이는 그 물건 사랑하는 마음이 무겁고 (또) 길고, 백성 사랑하는 마음은 가볍고 (또) 짧아서 그 당연한 순서를 잃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에 윗글에서 이미 그 단서를 발하시고 이에 왕이 이를 헤아릴 것을 청함이라.

 

 

抑王은 興甲兵하며 危士臣하야 構怨於諸侯然後에야 快於心與잇가 王曰 否라 吾何快於是리오 將以求吾所大欲也로이다

(맹자 가로대) “아니 (어찌하여), 왕은 갑병을 일으키며 군사와 신하를 위태롭게 하여 제후들에게 원망을 맺은 연후에야 마음에 만족하십니까?” 하니, 왕이 가로대, “아니라. 내가 어찌 이에 만족하리오. 장차 (써) 내가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는 것알 뿐입니다” 하니라.

 

抑은 發語辭라 士는 戰士也라. 構는 結也라. 孟子 以王愛民之心으로 所以輕且短者는 必其以是三者로 爲快也라. 然이나 三事는 實非人心之所快요 有甚於殺觳觫之牛者라. 故로 指以問王하사 欲其以此而度之也시라.

억(抑)은 발어사라. 사(士)는 전사라. 구(構)는 맺음이라. 맹자가 왕이 백성 사랑하는 마음이 가볍고 짧은 바가 반드시 (그) 이 세 가지(興甲兵, 危士臣 構怨於諸侯)로써 만족함을 삼음이라. 그러나 세 가지는 결코 백성의 마음이 만족하는 바가 아니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소를 죽이는 것보다 심한 것이니라. 이에 왕에게 묻는 것으로써 지적하여 이로써 (왕이) 헤아리게 하고자 하심이라.

 

不快於此者는 心之正也오 而必爲此者는 欲誘之也라. 欲之所誘者는 獨在於是하니 是以로 其心이 尙明於他하고 而獨暗於此하니 此其愛民之心이 所以輕短而功不至於百姓也라.

이에 쾌하지 않음은 마음의 바름이오, 반드시 이를 함은 욕심이 유혹함이라. 욕심이 유혹하는 바가 홀로 이에 있으니 이로써 그 마음이 오히려 다른 데(욕심)는 밝으나 유독 이(측은지심)에는 어두우니 이는 (그) 애민하는 마음이 (써) 가볍고 짧고 (정치의) 공효가 백성에 이르지 못하는 바니라.

 

 

曰 王之所大欲을 可得聞與잇가 王이 笑而不言하신대 曰 爲肥甘이 不足於口與며 輕煖이 不足於體與잇가 抑爲采色이 不足視於目與며 聲音이 不足聽於耳與며 便嬖 不足使令於前與잇가 王之諸臣이 皆足以供之하나니 而王은 豈爲是哉시리잇고

(맹자) 가라사대 “왕이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가히)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쭈니,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으신대 (맹자가 다시) 가로대 “살찌고 맛있는 음식이 입에 족하지 못하며 가볍고 따숨이 몸에 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니이까? 아니면, 채색(눈에 띄는 궁궐의 화려한 색깔들)이 눈에 족하지 못하며, 소리(악기 연주)가 귀에 들림이 족하지 못하며, 편리하고 사랑해주는 모든 시종들을 앞에서 사령함이 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왕의 모든 신하가 다 족히 (써) 장만해주는데 왕은 어찌 이를 위하는 것입니까? ” 하니,

 

曰 否라 吾不爲是也로이다 曰 然則王之所大欲을 可知已니 欲辟土地하며 朝秦楚하야 莅中國而撫四夷也로소이다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猶緣木而求魚也니이다

(왕이) 가로대 “아니라. 내 이를 위함이 아니로소이다.” 하니라. (이에 맹자) 가로대 “그런즉 왕이 크게 하고자 하는 바를 가히 알지니 (이는 곧) 땅을 열고(넓히고), 진나라 초나라로부터는 조공을 받으며, 중원에 임해서는 사방의 변방족들을 다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는 바로써 저같이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함과 같으니이다. ” 하니라.

 

抑 : 어조사(아니) 억 采 : 빛날 채 便 : 편리할 편 嬖 : 사랑할 폐(귀인에게 사랑받는 비천한 사람) 供 : 장만할 공 莅 : 다다를 리 辟 : 열 벽

 

▲ 便嬖는 近習嬖幸之人也라. 已는 語助辭라 辟은 開廣也라. 朝는 致其來朝也라 秦楚는 皆大國이라. 莅는 臨也라. 若은 如此也라. 所爲는 指興兵結怨之事오 緣木求魚는 言必不可得이라.

편폐(便嬖)는 가까이서 익숙하여 총애하는 사람이라. 이(已)는 어조사라. 벽(辟)은 열어서 넓힘이라. 조(朝)는 (그) 와서 조회를 이름이라. 진나라 초나라는 다 큰 나라라. 위(莅)는 다다름이라. 약(若)은 이와 같음이라. 소위(所爲)는 군사를 일으키고 원망을 맺는 일을 가리킴이오, 연목구어는 결코 (가히) 얻을 수 없음을 말함이라.

 

 

王曰 若是其甚與잇가 曰 殆有甚焉하니 緣木求魚는 雖不得魚나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하리이다

왕이 가로대 “이토록이나 심한 것입니까?” 하니, (맹자) 가로대 “자못 심함이 있나니 연목구어는 비록 고기를 얻지 못하나 뒤에 재앙은 없거니와 ‘이같이 하는 바로써 저같이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면 마음과 힘을 다한다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曰 可得聞與잇가 曰 鄒人이 與楚人戰則王은 以爲孰勝이니잇고 曰 楚人이 勝하리이다

(이에 왕이) 가로대 “(가히) 얻어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맹자 가로대) “추나라 사람이 초나라 사람과 더불어 싸운다면 왕은 (써) 누가 이길 것으로 여기십니까?” 하니, (왕) 가로대 “초나라 사람이 이기리이다.”하니라.

 

曰 然則小固不可以敵大며 寡固不可以敵衆이며 弱固不可以敵强이니 海內之地 方千里者 九에 齊 集有其一하니 以一服八이 何以異於鄒敵楚哉리잇고 蓋亦反其本矣니이다

(이에 맹자 다시) 가로대 “그런즉 작은 것이 진실로 (가히 써) 큰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적은 것이 진실로 (가히 써) 많은 무리를 대적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이 진실로 (가히 써)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으니, 온나라의 땅이 천리인 것이 아홉(9천리)인 바에, 제나라가 (모아서) 그 하나를 두었으니 하나로써 여덟을 굴복케 함이 어찌 (써)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어찌 (또한) (왕께서는)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하니라.

 

殆 : 자못 태 鄒 : 나라이름 추 蓋 : 盍 = 何不과 같은 의미

 

殆와 蓋는 皆發語辭라 鄒는 小國이오 楚는 大國이라. 齊集有其一은 言集合齊地면 其方千里니 是有天下九分之一也라. 以一服八은 必不能勝이니 所謂後災也라. 反本은 說見下文이라.

태(殆)와 개(蓋)는 다 발어사라. 추나라는 소국이요 초나라는 대국이라. 제나라가 모아서 그 하나를 둔다는 것은 ‘제나라 땅을 모아서 합하면 그 지방이 천리니 이는 천하 9분의 일에 해당함’을 말함이라. 하나로써 여덟을 굴복시킴은 결코 (능히) 이길 수 없음이니 이른바 뒤에 재앙이 있다 일컫느니라. 반본(反本)은 설명이 아랫글에 나타남이라.

 

 

今王이 發政施仁하샤 使天下仕者로 皆欲立於王之朝하며 耕者로 皆欲耕於王之野하며 商賈로 皆欲藏於王之市하며 行旅로 皆欲出於王之途하시면

이제 왕이 정사를 발하여 어진 정치를 베푸사, 천하의 벼슬하는 자로 하여금 다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고자 하며, 농사짓는 자가 다 왕의 들에서 농사짓고자 하며, 장사꾼들이 다 왕의 저자거리에서 간직하고자(물건을 쌓아놓고 파는 것) 하며, 여행하는 자가 (하여금) 다 왕의 길로 다니고자 하면,

 

天下之欲疾其君者 皆欲赴愬於王하리니 其如是면 孰能禦之리잇고

천하에서 (그) 인군을 미워하고자 하는 자가 모두 왕에게 달려와 호소하고자 할 것이니, (그) 이와 같이 하면 누가 능히 이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商 : 장사 상(짊어지거나 이고 다니면서 하는 장사) 賈 : 장사 고(앉아서 하는 장사) 疾 : 미워할 질 赴 : 붙좇을 부(공경하는 마음이나 섬기는 뜻으로 가까이하며 따르는 것) 愬 : 호소할 소

 

行貨曰商이오 居貨曰賈이라. 發政施仁은 所以王天下之本也라. 近者 悅하고 遠者 來면 則大小彊弱은 非所論矣라. 蓋力求所欲이면 則所欲者 反不可得이오 能反其本이면 則所欲者 不求而至라. 與首章으로 意同이라.

행화(行貨 : 재물을 행하는 것, 곧 다니면서 장사하는 것)를 ‘’이라 이르며, 거화(居貨 : 재물을 쌓아놓는 것, 곧 앉아서 파는 것)를 ‘고(賈)’라 이르니라. ‘發政施仁’은 (써한 바) 천하의 왕노릇하는 근본이니라. 가까운 자가 기뻐하고, 먼 자가 오면 크고 작고 강하고 약함은 논할 바가 아니니라. 대개 힘으로 하고자 하는 바를 구하면 하고자 하는 바를 도리어 (가히) 얻지 못하고 능히 그 근본을 돌이키면 즉 하고자 하는 바가 구하지 않아도 이르리라. 머릿장과 더불어 뜻이 같으니라.

 

 

王曰 吾惛하야 不能進於是矣로니 願夫子는 輔吾志하야 明以敎我하쇼셔 我雖不敏이나 請嘗試之호리이다

왕이 가로대 “내가 혼미해서 능히 이(反本之道)에 나아가지 못하노니 원컨대 선생은 내 뜻을 도와서 밝음으로써 나를 가르치소서. 내 비록 민첩하지는 못하나 청컨대 (일찍이) 그것을 해보겠나이다.”하니,

曰 無恒産而有恒心者는 惟士 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를 無不爲己니 及陷於罪然後에 從而刑之면 是는 罔民也니 焉有仁人이 在位하야 罔民을 而可爲也리오

(맹자) 가로대 “떳떳한 생업이 없이도 떳떳한 마음을 두는 이는 오직 선비가 능하거니와 만약 백성인즉 떳떳한 생업이 없으면 이로 인하여 떳떳한 마음이 없나니, 진실로 恒心이 없으면 방벽과 사치를 하지 않음이 없을지니 (그렇다고) 죄에 빠진 연후에 이들을 쫓아서 형벌에 처하면 이는 백성을 속임이니, 어찌 어진 사람이 임금 자리에 있어서 백성 속이는 짓을 (가히) 할 수 있겠습니까? ” 하니라.

 

放辟邪侈 : 放縱 . 便辟 . 奸邪(간사) . 奢侈를 말함. 放縱(방종) : 아무 거리낌없이 함부로 행동함 便辟(편벽) : 남에게 알랑거리며 비위를 잘 맞춤. 偏僻(편벽) :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침. 罔 : 그물 망 , 속일 망 焉 : 어찌 언(어조사)

 

恒은 常也오 産은 生業也라. 恒産은 可常生之業也오 恒心은 人所常有之善心也라. 士는 嘗學問하야 知義理故로 雖無恒産이나 而有常心이어니와 民則不能然矣라. 罔은 猶羅罔이니 欺其不見而取之也라.

항(恒)은 떳떳함(항상함)이오 산(産)은 생업이라. 항산(恒産)은 가히 항상 생산하는 업이오, 항심(恒心)은 사람이 항상 (떳떳히) 두는 바의 착한 마음이라. 선비는 일찍이 학문하여 의리를 아는 고로 비록 恒産은 없어도 恒心은 있거니와 백성인즉 능히 그러하지 못하니라. 은 그물을 벌린 것과 같으니 (그) 보지 못함으로 속여서 취함이라.

 

 

是故로 明君이 制民之産호대 必使仰足以事父母하며 俯足以畜妻子하야 樂歲에 終身飽하고 凶年에 免於死亡하나니 然後에 驅而之善故로 民之從之也 輕하나이다

이런 고로 밝은 인군이 백성의 생산을 짓되 반드시 (하여금) 우러러서는 (족히) (써) 부모를 섬기며, 구부려서는 (족히 써) 처자식을 길러서 풍년이 든 해에는 종신토록 배부르고 흉년에는 사망을 면케하나니 그런 뒤에야 (백성을) 몰아서 착한데로 가게 하면 백성이 그것을 좇음이 (그 부담이) 가벼우나이다.

 

輕은 猶易也라. 此는 言 民有常産而有常心也라.

경(輕)은 쉬움과 같으니라. 이 문장은 백성이 떳떳한 생업이 있고 떳떳한 마음이 있음을 말함이라.

 

 

今也에 制民之産호대 仰不足以事父母하며 俯不足以畜妻子하야 樂歲에 終身苦하고 凶年에 不免於死亡하나니 此惟救死而恐不贍이어니와 奚暇에 治禮義哉리오

지금에는 백성의 생업을 짓되 우러러서는 (족히 써) 부모를 섬기지 못하며 구부려서는 (족히 써) 처자식을 기르지 못하여, 풍년이어도 종신토록 괴롭고 흉년에는 사망을 면치 못하나니, 이는 오직 죽음을 구제하기에도 족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이니 (이래서야) 어느 겨를에 예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贍 : 족할 섬, 구휼할 섬 奚 : 어찌해)

 

贍은 足也라. 此는 所謂無常産而無常心者也라.

섬(贍)은 족함이라. 이는 이른바 떳떳한 생업이 없어서 떳떳한 마음이 없음이라.

 

 

王欲行之則盍反其本矣니잇고

왕이 (이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을 돌이키지 아니 하십니까?

盍 : 하불(何不 : 의문의 反語로 어찌 ~하지 않느냐) 합, 덮을 합

 

盍은 何不也라. 使民有常産者는 又發政施仁之本也라. 說見下文이라.

합(盍)은 何不(어찌 ~않느냐)이라. 백성으로 하여금 떳떳한 생업이 있게 함은 또한 어진 정치를 베푸는 근본이라. 설명은 아랫글에 나타나니라.

 

 

五畝之宅에 樹之以桑이면 五十者 可以衣帛矣며 鷄豚狗彘之畜을 無失其時면 七十者 可以食肉矣며 百畝之田을 勿奪其時면 八口之家이 可以無飢矣며

오묘의 집에 뽕나무로써 심으면 나이 오십인 자가 (가히 써)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과 돼지와 개와 작은 돼지를 기름에 그 때를 잃지 않으면 나이 칠십인 자가 (가히 써)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의 땅에 그 (농사지을) 때를 빼앗지 않으면 여덟 식구의 집이 (가히 써)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謹庠序之敎하야 申之以孝悌之義면 頒白者 不負戴於道路矣리니

삼가 상과 서의 학교에서의 가르침으로 효제의 의로써 그 가르침을 거듭하면 머리가 반백인 자(오십 늙은이)가 도로에서 짐을 지고 이지 않으리니,

 

老者 衣帛食肉하며 黎民이 不飢不寒이면 然而不王者 未之有也니이다

노인네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젊은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아니하면 그러고도 왕노릇 못할 자는 없으니이다.

 

此는 言制民之産之法也라. 趙氏曰 八口之家는 次上農夫也라. 此는 王政之本이오 常生之道라. 故로 孟子爲齊梁之君하사 各陳之也시니라.

이는 백성의 생업을 짓는 방법을 말함이라. 조씨 가로대 여덟식구의 집은 상농부(아홉 식구의 집)의 다음가는 집이라. 이는 왕정의 근본이요 떳떳한 생업의 방법이라. 이에 맹자가 제나라와 양나라의 인군을 위해서 각각 그 방안을 제시함이라.

 

楊氏曰 爲天下者 擧斯心하야 加諸彼而已라 然이나 雖有仁心仁聞이나 而民不被其澤者는 不行先王之道故也니라. 故로 以制民之産으로 告之하시니라.

양씨 말하기를 천하를 (경영)하는 자가 이 마음을 들어서 저(백성의 생업)에 더할 따름이라. 그러나 비록 어진 마음과 어진 들림(소문)이 있더라도(어진 정치를 한다는 소문이 났더라도) 백성이 그 덕택을 입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도를 행하지 못한 까닭이라. 이에 백성의 생업을 짓는다는 것으로써 이를 깨우쳐 주심이라.

 

此章은 言人君이 當黜覇功 行王道요. 而王道之要는 不過推其不忍之心하야 以行不忍之政而已어늘 齊王이 非無此心이로대 而奪於功利之私하야 不能擴充하야 以行仁政하니 雖以孟子 反覆曉告가 精切如此라도 而蔽固已深하야 終不能悟하니 是可歎也로다.

이 장은 인군이 마땅히 패도의 공을 내치고 왕도를 행하는 것을 말함이라. 왕도의 중요함은 (그) 不忍之心을 미루어 넘어가지 않고 이로써 불인지심의 정사를 행하는데 있을 뿐이거늘 제왕이 이 마음이 없지 않되 공리(功利)의 사사로움에 빼앗겨서 능히 (불인지심을) 확충해서 (써) 어진 정사를 행하지 못하니 비록 (써) 맹자가 반복하여 깨닫도록 알려줌에 있어 정일하고 간절함이 이와 같더라도 가리워짐이 진실로 이미 깊어져 끝내는 능히 깨닫지 못하니 이에 가히 탄식함이로다.

原本備旨 孟子集註卷之一 終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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