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陳代曰不見諸侯ㅣ 宜若小然하이다 今一見之하시면 大則以王이오 小則以覇니 且志에 曰枉尺而直尋이라 하니 宜若可爲也ㅣ로소이다 진대 가로대 제후를 보지 아니하심이 마땅히 작은 듯하이다. 이제 한번 보시면 큰즉 써 왕이오, 작은즉 써 패하리니 또한 기록에 가로대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 하니 마땅히 가히 하옴즉 하도소이다. 陳代는 孟子弟子也ㅣ라 小는 謂小節也ㅣ라 枉은 屈也ㅣ오 直은 伸也ㅣ라 八尺曰尋이라 枉尺直尋은 猶屈己하야 一見諸侯하야 而可以致王覇니 所屈者ㅣ 小하고 所伸者ㅣ 大也ㅣ라 진대는 맹자 제자라. 소는 작은 절개를 이름이라. 왕은 굴함이오 직은 폄이라. 여덟 자를 가로대 심이라. 왕척직심은 몸을 굴하여 한번 제후를 보아 가히 써 왕과 패를 이룸과 같으니 굴하는 바는 작고 펴는 바는 큼이라. 孟子ㅣ 曰昔에 齊景公이 田할새 招虞人以旌한대 不至어늘 將殺之러니 志士는 不忘在溝壑이오 勇士는 不忘喪其元이라 하시니 孔子는 奚取焉고 取非其招不往也ㅣ시니 如不待其招而往엔 何哉오 맹자 가라사대 옛적에 제경공이 사냥할새 사냥꾼을 정(깃발)으로써 부른대 이르지 않거늘 장차 죽이더니, 뜻있는 선비는 구학에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고, 용맹스런 선비는 그 머리 상함을 잊지 않는다 하시니, 공자는 무엇을 취하신고? 그 부름이 아니어든 가지 아니함을 취하시니 만약 그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감은 어떠한고?
[본문 해설] 제경공과 사냥꾼에 관한 얘기는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경공이 사냥꾼을 부를 때 대부를 부르는 깃발로 부르기에 가지 않았더니 경공이 사냥꾼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사냥꾼이 말하기를 자기를 부르는 피관(皮冠)을 보지 못했기에 감히 나가지 못했노라고 하였다. 공자가 이에 대해 “美之라 하시며 志士는 固窮不忘在溝壑이오 勇士는 輕生不忘喪其元이니 虞人은 可謂志士勇士矣로라"고 칭찬하셨다.
田은 獵也ㅣ라 虞人은 守園囿之吏也ㅣ라 招大夫以旌하고 招虞人以皮冠이라 元은 首也ㅣ라 志士는 固窮하야 常念死無棺槨하야 棄溝壑而不恨이오 勇士는 輕生하야 常念戰鬪而死하야 喪其首而不顧也ㅣ라 此二句는 乃孔子ㅣ 歎美虞人之言이라 夫虞人은 招之不以其物이라도 尙守死而不往이어든 況君子ㅣ 豈可不待其招하고 而自往見之邪아 此以上은 告之以不可往見之意라 전은 사냥함이라. 우인은 원유를 지키는 아전이라. (임금이) 대부를 부름에는 깃발로써 하고 사냥꾼을 부름에는 가죽관으로써 하니라. 원은 머리라. 지사는 궁할수록 견고해져 항상 죽어도 관곽이 없을 것을 생각하여 구학에 버려져도 한하지 아니하고 용사는 삶을 가벼이 여겨 항상 전투하여 죽어서 그 머리가 상함을 생각하여 돌아보지 않음이라. 이 두 글귀는 이에 공자가 사냥꾼을 탄미하신 말씀이라. 무릇 사냥꾼은 부르는데 그 물건으로써 아니하는데도 오히려 죽음을 지키고 가지 않았거든 하물며 군자가 어찌 가히 그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가서 보랴. 이로써 위는 가히 가서 보지 않는 뜻으로써 고하심이라.
且夫枉尺而直尋者는 以利言也ㅣ니 如以利則枉尋直尺而利라도 亦可爲與아 또한 무릇 한 자를 굽혀서 여덟 자를 펴는 것은 이로써 말함이니 만약 이로써 한즉 여덟 자를 굽히고 한 자를 펴서 이롭더라도 또한 가히 하랴. 此以下는 正其所稱枉尺直尋之非라 夫所謂枉小而所伸者ㅣ 大則爲之者는 計其利耳니 一有計利之心이면 則雖枉多伸少而有利라도 亦將爲之邪아 하시니 甚言其不可也ㅣ시니라 이로써 아래는 그 일컬은 바 왕척직심의 그릇됨을 바룸이라. 무릇 이른바 적은 것을 굽혀서 펴는 바가 크기 때문에 하는 것은 그 이를 계산함이니, 하나라도 이를 계산하는 마음이 있다면 곧 비록 많음을 굽히고 적음을 펴서 이로움이 있더라도 또한 장차 하랴 하시니, 그 불가함을 심하게 말씀하심이라. 昔者애 趙簡子ㅣ 使王良으로 與嬖奚乘한대 終日而不獲一禽하고 嬖奚ㅣ 反命曰天下之賤工也ㅣ러이다 或이 以告王良한대 良이 曰請復之호리라 彊而後可ㅣ라 하야늘 一朝而獲十禽하고 嬖奚ㅣ 反命曰天下之良工也ㅣ러이다 簡子ㅣ 曰我ㅣ 使掌與女乘호리라 하고 謂王良한대 良이 不可曰吾ㅣ 爲之範我馳驅호니 終日不獲一하고 爲之詭遇호니 一朝而獲十하니 詩云不失其馳어늘 舍矢如破ㅣ라 하니 我는 不貫與小人乘호니 請辭ㅣ라 하니라 옛적에 조간자가 왕량으로 하여금 폐해와 더불어 타게 한대 종일토록 한 마리의 새도 잡지 못하고 폐해 반명하여 가로되 천하의 천공이러이다. 혹자가 써 왕량에게 고한대 양이 가로대 청컨대 다시호리라. 강요한 뒤에 가하다 하거늘 하루 아침에 열 마리의 새를 잡고, 폐해 반명하여 가로대 천하의 양공이러이다. 간자 말하기를 내 하여금 너와 더불어 탐을 맡기리라 하고 왕량에게 이른대 양이 불가하다며 가로대 내가 위하여 내 치구법으로 법하니 종일토록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위하여 속여서 만나게 호니 하루 아침에 열을 잡으니 시경에 이르기를 그 치구법(말모는 법도)을 잃지 않거늘 활을 쏨이 파하는 것같이 한다 하니 나는 소인과 더불어 타는 것을 익히지 아니호니 청컨대 사양한다 하니라 趙簡子는 晉大夫趙鞅也ㅣ라 王良은 善御者也ㅣ라 嬖奚는 簡子幸臣이라 與之乘은 爲之御也ㅣ라 復之는 再乘也ㅣ라 彊而後可는 嬖奚不肯하야 彊之而後에 肯也ㅣ라 一朝는 自晨至食時也ㅣ라 掌은 專主也ㅣ라 範은 法度也ㅣ라 詭遇는 不正而與禽遇也ㅣ라 言奚不善射하야 以法馳驅면 則不獲하고 廢法詭遇而後에 中也ㅣ라 詩는 小雅車攻之篇이라 言御者는 不失其馳驅之法하고 而射者는 發矢皆中而力이어늘 今嬖奚가 不能也ㅣ라 貫은 習也ㅣ라 조간자는 진나라 대부 조앙이라. 왕량은 말 몰기를 잘하는 자라. 폐해는 조간자의 가까운 신하라. 여지승은 위하여 말 몰음이라. 부지는 다시 탐이라. 강요한 뒤에 가하다는 것은 폐해가 즐기지 않다가 강요한 뒤에 즐김이라. 일조는 새벽으로부터 아침 식사 때까지라. 장은 오로지 주관함이라. 범은 법도라. 궤우는 부정하게 새와 더불어 만나게 함이라. 말하되 해가 활을 잘 쏘지 못하여 치구법으로써 하면 곧 잡지 못하고 법을 폐하고 궤우로 한 후에 맞춤이라. 시는 「소아 거공」편이라. 말하되 말 모는 자는 그 치구법을 잃지 않고 활을 쏘는 자는 화살을 발함에 다 맞추는데 힘을 써야 하거늘 이제 폐해가 능치 못함이라. 관은 익힘이라.
鞅 : 고삐 앙 御者ㅣ 且羞與射者比하야 比而得禽獸ㅣ 雖若丘陵이라도 弗爲也하니 如枉道而從彼엔 何也오 且子ㅣ 過矣로다 枉己者ㅣ 未有能直人者也ㅣ니라 말 모는 자가 또한 활 쏘는 자와 더불어 견줌(아첨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아첨을 하여 금수를 잡는 것이 비록 언덕 같다 하여도 하지 아니하니, 만약 도를 굽히고 저를 따르는 데엔 어떠한고. 또한 자네 지나치도다. 자기 몸을 굽히는 자, 능히 남을 곧게 하는 자 있지 않느니라. 比는 阿黨也ㅣ라 若丘陵은 言多也ㅣ라 ○或이 曰居今之世하야 出處去就를 不必一一中節이니 欲其一一中節이면 則道不得行矣라 楊氏ㅣ 曰何其不自重也ㅣ오 枉己ㅣ 其能直人乎아 古之人이 寧道之不行이언정 而不輕其去就하니 是以로 孔孟이 雖在春秋戰國時라도 而進必以正하야 以至終不得行而死也하시니 使不恤其去就하고 而可以行道면 孔孟이 當先爲之矣시리니 孔孟이 豈不欲道之行哉시리오 비는 아첨하는 무리라. 언덕 같다는 것은 많음을 말함이라. 혹자 가로대 이제의 세상을 거하여 출처 거취(나가서 벼슬하기도 하고 들어와 거처하기도 하고 벼슬 자리를 떠나기도 하고 다시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고)를 반드시 하나하나 절도에 맞추지 아니하나니 그 하나하나를 중절하고자 한다면 곧 도가 얻어 행하지 못하느니라. 양씨 가로대 어찌 그 스스로 중하지 않으리오. 몸을 굽힘이 그 능히 사람을 곧게 하랴. 옛적의 사람이 차라리 도가 행하지 못할지언정 그 거취를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니 이로써 공자와 맹자가 비록 춘추전국의 때에 있으셨어도 나아가는데 반드시 바름으로써 하야 써 마침내 얻어 행하지 못하고 죽는데 이르시니 하여금 그 거취를 아끼지 아니하고 가히 써 도를 행한다면 공맹이 마땅히 먼저 하셨으리니 공맹이 어찌 도를 행하고자 아니하셨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