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孟子ㅣ 曰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이니 如此而已矣니라 맹자 가라사대 그 하지 아니하는 바를 하지 말며 그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하고자 하지 말지니 이와 같을 뿐이니라. 李氏 曰有所不爲不欲은 人皆有是心也ㅣ언마는 至於私意一萌而不能以禮義制之면 則爲所不爲하고 欲所不欲者ㅣ 多矣니 能反是心이면 則所謂擴充其羞惡之心者하야 而義不可勝用矣라 故로 曰如此而已矣라 하시니라 이씨 가로대 하지 아니하고 하고자 아니하는 바가 있음은 사람이 다 이러한 마음이 있건마는 사사로운 뜻이 한번 싹터서 능히 예의로써 마름질하지 못하는 데에 이른다면, 하지 아니하는 바를 하고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하고자 함이 많으니, 능히 이러한 마음을 돌이킨다면 이른바 그 수오의 마음을 확충하여 의가 가히 이기어 쓰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가라사대 이와 같을 뿐이라 하시니라.
<제18장> 孟子ㅣ 曰人之有德慧術知者는 恒存乎疢疾이니라 맹자 가라사대 사람이 덕의 지혜와 기술의 지식을 둔 자는 항상 열병 속에 있느니라.
疢 : 열병 진 疢疾 : ①열병 ②재난, 환란 德慧者는 德之慧요 術知者는 術之知라 疢疾은 猶災患也ㅣ라 言人必有疢疾이면 則能動心忍性하야 增益其所不能也ㅣ라 덕혜라는 것은 덕의 지혜요, 술지라는 것은 기술의 지식이라. 진질은 재환과 같음이라. 사람은 반드시 재환이 있으면 능히 마음을 움직여 성질을 참아 그 능하지 못한 바를 더함을 말씀하심이라. 獨孤臣孼子는 其操心也ㅣ 危하며 其慮患也ㅣ 深故로 達이니라 홀로 외로운 신하와 서자는 그 마음을 잡음이 위태하며 그 환란을 생각함이 깊은 고로 통달하니라.
[본문 해설] 외로운 신하와 서자가 그 마음 잡음이 위태하며 그 환란을 생각함이 깊다는 것은 세상이 몹시 어지러운 때를 말한다. 인군이 있다 하여도 소인들이 모든 실권을 틀어쥐고 있어 군자인 현신이 쫓겨나고 죽음을 당하는 등 박해를 당하는 때이다. 주역으로 보자면 12번째괘인 天地否괘에서 말하는 비색(否塞)한 세상이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는 大往小來의 세상에서 군자는 “儉德辟難하야 不可榮以祿(덕을 검소히 하고 어려움을 피해서 가히 녹 받는 것으로써 영화를 누리지 않느니라)”하여야 한다. 이것이 통달하는 경지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군자라면 九五爻에서 언급한 것처럼 “休否라 大人의 吉이니 其亡其亡이라야 繫于苞桑이라(비색한 것을 쉬게 하니라. 대인의 길함이니 그 망할까 망할까 하여야 우묵한 뽕나무에 매리라)”하였다. ‘이 나라가 이러면 망하고 말지’하고 걱정하며 질긴 뽕나무 뿌리에 국가를 붙들어 매어 놓는다는 말이다. 위에서 맹자가 말한 ‘외로운 신하와 서자가 그 환란을 생각함이 깊은 고로 통달하니라’라는 것은 곧 주역 비괘에서 말하는 ‘其亡其亡이라야 繫于苞桑이라’는 뜻이다. 공자는 「계사하전」에서 다시 이를 강조하고 있는데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ㅣ오 亡者는 保其存者也ㅣ오 亂者는 有其治者也ㅣ니 是故로 君子ㅣ 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를 可保也ㅣ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야 繫于苞桑이라 하니라 (공자 가라사대 위태할까 하는 자는 그 위를 편안히 하는 것이오, 망할까 하는 자는 그 존함을 보전하는 것이오, 어지러울까 하는 자는 그 다스림을 두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가 편안하되 위태함을 잊지 아니하며 존하되 망함을 잊지 아니하며 다스리되 어지러움을 잊지 않느니라. 이로써 몸이 편안하여 국가를 가히 보존하니 역에 가로대 그 망할까 망할까 하여야 우북한 뽕나무에 맨다 하니라. 孤臣은 遠臣이오 孼子는 庶子니 皆不得於君親하야 而常有疢疾者也ㅣ라 達은 謂達於事理니 卽所謂德慧術知也ㅣ라 고신은 먼 신하요, 얼자는 서자니 다 인군의 친함을 얻지 못하여 항상 열병이 있는 자라. 달은 사리에 통달함을 이르니 바로 이른바 덕의 지혜와 기술의 지식이라.
<제19장> 孟子ㅣ 曰有事君人者하니 事是君則爲容悅者也ㅣ니라 맹자 가라사대 인군을 섬기는 자 있나니 이 인군을 섬긴다면 용열한 자가 되느니라.
容悅 : 영합(迎合)하여 기쁜 모양을 함. 아첨(阿諂)함 阿徇以爲容하고 逢迎以爲悅이니 此는 鄙夫之事요 妾婦之道也ㅣ라 아첨하고 따라서 써 용납되며 비위에 맞추어 써 기쁘게 하니 이는 비부의 일이오, 첩부의 도이니라.
逢迎 : ①사람을 마중하여 접대함. 轉하여 ②남의 마음에 들도록 힘씀. 有安社稷臣者하니 以安社稷爲悅者也ㅣ니라 사직을 편안히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안히 함으로써 기쁨을 삼는 자니라. 言大臣之計社稷이 如小人之務悅其君하야 眷眷於此而不忘也ㅣ라 대신이 사직을 계책함이 소인이 그 인군을 기뻐하게 하려고 힘쓰는 것과 같아 이에 돌아보고 돌아보며 잊지 못함을 말씀함이라.
眷 : 돌아볼 권 有天民者하니 達可行於天下而後에 行之者也ㅣ니라 하늘 백성인 자 있나니 통달하여 가히 천하에 행할 수 있은 뒤에야 행하는 자이니라. 民者는 無位之稱이니 以其全盡天理하야 乃天之民이라 故로 謂之天民이라 必其道ㅣ 可行於天下然後에 行之요 不然則寧沒世不見知而不悔하야 不肯小用其道하야 以徇於人也ㅣ라 張子ㅣ 曰必功覆斯民然後에 出이니 如伊呂之徒니라 백성이라는 것은 위가 없음의 칭함이니 써 그 온전히 천리를 다하여 이에 하늘의 백성이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천민이라. 반드시 그 도가 가히 천하에 행해진 연후에 행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차라리 죽어도 알아줌을 보지 못하여도 후회하지 아니하여 그 도를 조금 써서 써 다른 사람을 따름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음이라. 장자 가라사대 반드시 공이 이 백성을 덮은 연후에 나가니 이윤과 여상과 같은 무리니라. 有大人者하니 正己而物正者也ㅣ니라 대인인 자 있으니 몸을 바르게 함에 물건이 바루어지는 자이니라. 大人은 德盛而上下化之니 所謂見龍在田은 天下文明者니라 ○此章은 言人品不同이 略有四等하니 容悅佞臣은 不足言이오 安社稷則忠矣나 然이나 猶一國之士也ㅣ오 天民則非一國之士矣나 然이나 猶有意也ㅣ니 無意無必하야 唯其所在에 而物無不化는 惟聖者ㅣ 能之니라 대인은 덕이 성하여 위아래가 교화됨이니 이른바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천하가 문명한 것이니라. ○이 장은 인품이 같지 않음이 대략 네 등급이 있으니 용열하고 아첨하는 신하는 족히 말할 것이 못되고, 사직을 편안한다면 충성스러우나 그러나 오히려 한 나라의 선비요, 천민이라면 일국의 선비가 아니나 그러나 오히려 뜻이 있으니, 뜻이 없고 반드시함도 없어야 오직 그 있는 바에 물건이 교화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은 오직 성인만이 능하니라.
[앞주 해설] ‘見龍在田 天下文明’은 『주역』 乾괘 九二爻에 대해 문언전 4절에서 공자가 거듭 설명한 내용이다. 九二爻는 임금 자리인 九五爻의 ‘飛龍在天’에 상응하는 신하자리를 말하는 것으로 주공은 구이효에 대해 “九二는 見龍在田이니 利見大人이니라(구이는 나타난 용이 밭에 이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공자는 공자는 소상전에서 “見龍在田은 德施普也오(현룡재전은 덕을 베풂이 넓음이오)”라 하였고, 문언전 제2절에서는 “九二曰 見龍在田利見大人은 何謂也오 子曰 龍德而正中者也ㅣ니 庸言之信하며 庸行之謹하야 閑邪存其誠하며 善世而不伐하며 德博而化ㅣ니 易曰 見龍在田利見大人이라 하니 君德也ㅣ라(구이에 이르길 ‘현룡재전이견대인’은 어찌 이름인고? 공자 이르기를 용덕이 바르게 가운데 한 것이니 떳떳이(항시) 말을 미덥게 하며, 떳떳이(항시) 행실을 삼가서 간사한 것을 막고 그 정성을 보존하며 세상을 착하게 하여도 자랑하지 않으며, 덕을 넓게 하여 화하게 하니 역에 이르기를 '현룡재전이견대인'이라 하니 인군의 덕이라.)”하였다. 문언전 제3절에서는“見龍在田은 時舍也ㅣ오”라고 하며 세상에 나와 때를 관망하여 그칠 때 그치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이로는 앞서 주자의 앞주에서 언급한 탕임금을 만난 이윤이나 문왕과 무왕을 만난 강태공을 들 수 있다.
<제20장> 孟子ㅣ 曰君子ㅣ 有三樂而王天下ㅣ 不與存焉이니라 맹자 가라사대 군자가 세 즐거움이 있으되 천하에 왕함은 더불어 있지 아니하니라. 父母ㅣ 俱存하며 兄弟ㅣ 無故ㅣ 一樂也ㅣ오 부모가 다 계시며 형제가 무고함이 첫 번째 즐거움이오, 此는 人所深願이나 而不可必得者어늘 今旣得之면 其樂을 可知니라 이는 사람이 깊이 원하는 바이나 가히 반드시 얻지 못하거늘 이제 이미 얻었으면 그 즐거움을 가히 아니라. 仰不愧於天하며 俯不怍於人이 二樂也ㅣ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음이 두 번째 즐거움이오, 程子ㅣ 曰人能克己면 則仰不愧, 俯不怍하야 心廣體胖이라 其樂을 可知니 有息則餒矣니라 정자 가라사대 사람이 능히 자기를 이기면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부끄러움이 없어 마음이 넓고 몸이 살지니라. 그 즐거움을 가히 알지니 쉼이 있다면 굶주리니라(부족하니라).
[앞주 해설] ‘心廣體胖’이란 단어는 『대학착간고정』전문 제6장 誠意장에 나오는 글귀이다. 그 내용을 보면 “富潤屋이오 德潤身이라 心廣體胖하나니 故로 君子는 必誠其意니라(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함이라. 마음이 넓고 몸은 살지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하나니라)”이다.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하여 正心하고 修身을 하는 것이다. 무엇이 부끄럽겠는가? 자연 마음이 넓어지고 몸을 살지게 된다는 것이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ㅣ 三樂也ㅣ니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함이 세 번째 즐거움이니, 盡得一世明睿之才하야 而以所樂乎己者로 敎而養之면 則斯道之傳을 得之者衆하야 而天下後世가 將無不被其澤矣리라 聖人之心에 所願欲者가 莫大於此어늘 今旣得之면 其樂이 爲何如哉리오 한 세상의 밝고 슬기로운 인재를 모두 얻어서 써 자기의 즐거운 바로 가르치고 기른다면 이 도의 전함을 얻은 자가 많아 천하후세가 장차 그 은택을 입지 아니함이 없으리라. 성인의 마음에 원하고자 하는 것이 이보다 큼이 없거늘 이제 이미 얻었다면 그 즐거움이 무엇을 위함과 같으리오. 君子ㅣ 有三樂而王天下ㅣ 不與存焉이니라 군자가 세 즐거움이 있으되 천하에 왕함은 더불어 있지 아니하니라. 林氏 曰此三樂者는 一係於天하고 一係於人이오 其可以自致者는 惟不愧不怍而已니 學者ㅣ 可不勉哉아 임씨(林之奇, 北宋人) 가로대 이 세 가지 즐거움은 하나는 하늘에 달려 있고 하나는 사람에 달려 있음이오, 그 가히 써 스스로 이루는 것은 오직 하늘에 부끄럽지 아니하고 사람에게 부끄럽지 아니할 뿐이니 배우는 자 가히 힘쓰지 아니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