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孟子ㅣ 曰楊子는 取爲我하니 拔一毛而利天下ㅣ라도 不爲也하니라 맹자 가라사대 양자는 나를 위하여 취하니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가 이롭더라도 하지 않느니라.
楊子는 名이 朱라 取者는 僅足之意니 取爲我者는 僅足於爲我而已요 不及爲人也ㅣ라 列子ㅣ 稱其言曰伯成子高는 不以一毫利物이라 하니 是也ㅣ라 양자는 이름이 주라. 취한다는 것은 겨우 만족하는 뜻이니 나를 위하여 취한다는 것은 겨우 나를 위하여 만족할 뿐이오, 다른 사람을 위하여는 이르지 못함이라. 열자가 그 말을 칭하여 가로대 백성자고(요순시절에 제후를 지내고 우가 들어서자 초야에 돌아가 농사를 지은 사람)는 한 터럭으로써 물건을 이롭게 하지 않았다 하니, 바로 이것이라.
墨子는 兼愛하니 摩頂放踵이라도 利天下댄 爲之하니라 묵자는 겸애하니 정수리를 갈아 발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에 이로우면 하니라.
墨子는 名이 翟이라 兼愛는 無所不愛也ㅣ라 摩頂은 摩突其頂也ㅣ라 放은 至也ㅣ라 묵자는 이름이 적이라. 겸애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바가 없느니라. 마정은 그 정수리를 갈고 부딪힘이라. 방은 이름이라.
子莫은 執中하니 執中이 爲近之나 執中無權이 猶執一也ㅣ니라 자막은 중을 잡으니 중을 잡음이 (도에) 가까우나 중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음은 오히려 한쪽을 잡음과 같으니라.
子莫은 魯之賢者也ㅣ니 知楊墨之失中也ㅣ라 故로 度於二者之間하야 而執其中하니라 近은 近道也ㅣ라 權은 稱錘也ㅣ니 所以稱物之輕重하야 而取中也ㅣ라 執中而無權이면 則膠於一定之中하야 而不知變이니 是亦執一而已矣니라 程子ㅣ 曰中字ㅣ 最難識이니 須是黙識心通이니라且試言一廳則中央으로 爲中이오 一家則廳非中而堂爲中이며 一國則堂非中而國之中爲中이니 推此類면 可見矣니라 又曰中不可執也ㅣ니 識得則事事物物에 皆有自然之中하야 不待安排하니 按排著則不中矣니라 자막은 노나라의 현자이니 양주와 묵적이 중을 잃었음을 아니라. 그러므로 두 가지 사이를 헤아려 그 중을 잡았느니라. 근은 도에 가까우니라. 권은 저울추이니 써한 바 물건의 경중을 달아 중을 취함이라. 중을 잡고도 저울질함이 없으면 일정한 중에 붙어 변화를 알지 못하니 이 또한 하나를 잡은 것일 뿐이니라. 정자 가라사대 중이라는 글자는 가장 알기가 어려우니 모름지기 묵묵히 알아 마음으로 통함이니라. 또 시험 삼아 말한다면 한 대청인즉 중앙으로 가운데가 되고, 한 집인즉 대청이 가운데가 아니라 당이 가운데이며, 한 나라인즉 당이 가운데가 아니라 나라의 가운데가 가운데가 되니 이러한 유를 미루어보면 가히 볼 수 있느니라. 또 가라사대 중은 가히 잡지 못함이니 얻음을 안다면 사물마다 다 자연한 가운데가 있어 안배를 기다리지 아니하니 안배한다면 중이 아니니라.
著 : 나타날 저, 붙을 착, 둘 착, 여기서는 ‘어조사 착’으로 동작을 나타내는 말에 붙여 쓰는 助字로 쓰였다
所惡執一者는 爲其賊道也ㅣ니 擧一而廢百也ㅣ니라 하나를 잡음을 미워하는 바는 그 도를 해침을 위해서이니 하나를 들고 백을 폐하니라.
賊은 害也ㅣ라 爲我는 害仁이오 兼愛는 害義요 執中者는 害於時中이니 皆擧一而廢百者也ㅣ라 ○此章은 言道之所貴者ㅣ 中이오 中之所貴者ㅣ 權이라 楊氏 曰禹稷이 三過其門而不入하시니 苟不當其可면 則與墨子無異요 顔回ㅣ 在陋巷하야 不改其樂하시니 苟不當其可면 則與楊氏無異라 子莫은 執爲我兼愛之中而無權하니 鄕鄰有鬪而不知閉戶하고 同室有鬪而不知救之러니 是亦猶執一耳라 故로 孟子ㅣ 以爲賊道라 하시니라 禹, 稷, 顔回ㅣ 易地則皆然은 以其有權也ㅣ니 不然則是亦楊墨而已矣니라 적은 해함이라. 나를 위함은 인을 해함이오, 겸애는 의를 해함이오, 중을 잡는다는 것은 때로 중함을 해함이니 다 하나를 들어서 백을 폐하는 것이라. ○이 장은 도의 귀한 바가 중이오, 중의 귀한 바는 저울질임을 말씀함이라. 양씨 가로대 우와 직이 세 번 그 문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아니하시니 진실로 그 옳음에 맞지 아니한다면 묵자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오, 안자가 누추한 골목에 있으며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시니 진실로 그 옳음에 맞지 아니하다면 양씨와 더불어 다름이 없음이라. 자막은 위아와 겸애의 중을 잡고 저울질함이 없으니 향리와 이웃에 싸움이 있어도 문 닫음을 아지 못하고, 한 방안에 싸움이 있어도 구할 줄을 모르리니 이 역시 하나를 잡음과 같음이라. 그러므로 맹자가 써 도를 해침을 위한다 하시니라. 우와 직과 안회가 처지를 바꾸면 다 그러함은 써 그 저울질함이 있음이니 그러하지 아니하면 이 또한 양묵일 뿐이니라.
<제27장>
孟子ㅣ 曰饑者ㅣ 甘食하고 渴者ㅣ 甘飮하나니 是ㅣ 未得飮食之正也ㅣ라 饑渴이 害之也ㅣ니 豈惟口腹이 有饑渴之害리오 人心이 亦皆有害하니라 맹자 가라사대 굶주린 자 달게 먹고, 목마른 자 달게 마시나니 이는 음식의 바름을 얻지 못함이라. 굶주리고 목마름은 그것을 해함이니 어찌 오직 입과 배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해로움이 되리오. 사람 마음이 또한 다 해로움이 되느니라.
口腹은 爲饑渴所害故로 於飮食에 不暇擇而失其正味요 人心은 爲貧賤所害故로 於富貴에 不暇擇而失其正理니라 입과 배는 기갈에 해로운 바가 되는 고로 마시고 먹음에 가릴 겨를이 없어 그 바른 맛을 잃고, 사람 마음은 귀천에 해로운 바가 되는 고로 부귀에 가릴 겨를이 없어 그 바른 이치를 잃느니라.
人能無以饑渴之害로 爲心害則不及人을 不爲憂矣리라 사람이 능히 기갈의 해로움으로써 마음의 해로움을 삼음이 없으면 남에게 미치지 못함을 걱정하지 아니하리라.
人能不以貧賤之故而動其心이면 則過人이 遠矣니라 사람이 능히 빈천의 이유로써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한다면 남을 넘음이 멀어지니라(남보다 월등 뛰어나니라).
<제28장>
孟子ㅣ 曰柳下惠는 不以三公으로 易其介하니라 맹자 가라사대 유하혜는 삼공으로써 그 절개를 바꾸지 아니하니라.
介는 有分辨之意라 柳下惠는 進不隱賢하야 必以其道하며 遺佚不怨하고 阨窮不憫하며 直道事人하야 至於三黜하니 是其介也ㅣ니라 ○此章은 言柳下惠가 和而不流하니 與孔子ㅣ 論夷齊不念舊惡으로 意正相類하니 皆聖賢이 微顯闡幽之意也ㅣ니라 개는 분변의 뜻이 있음이라. 유하혜는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어짊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도로써 하며, 버림을 받고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곤궁함을 당하여도 근심하지 아니하며, 도를 곧게 하여 사람(인군)을 섬겨 세 번 내침에 이르니, 이것이 그 절개이니라. ○이 장은 유하혜가 화하면서도 (곁으로) 흐르지 아니했음을 말씀하심이니, 더불어 공자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논하면서 ‘구악을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것(『논어』公冶長 제23장)과 뜻이 정히 서로 비슷하니 모든 성현이, 드러난 것을 미미하게 하고 그윽한 것을 밝힌 뜻이니라.
遺佚 : ①임금에게 버림을 받아 쓰이지 아니함 ②세상에서 버림을 당함
[앞주 해설] 유하혜에 대해 주자가 ‘和而不流’하다고 한 표현은 실은 『중용』 제10장에서 자로의 ‘强’에 대한 물음에 공자가 “故로 君子는 和而不流하나니 强哉矯여 中立而不倚하나니 强哉矯여”라며 답변한 내용이다. 화하되 의리가 아니고 예가 아닌 곳에는 절대로 흐르지 말아야 하니 ‘和而不流’ 곧 중용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강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微顯闡幽’는 『주역』계사하전 제6장에서 역에 관한 공자의 말씀으로 “夫易은 彰往而察來하며 (而)微顯而闡幽하며 (開而)當名하며 辨物하며 正言하며 斷辭하니 則備矣라(무릇 역은 간 것을 밝혀서 오는 것을 살피며, 드러나 있는 것을 미미하게 하고 그윽한 것을 밝히며, 이름을 마땅하게 하며 물건을 분별하며 말을 바로 하며 말을 판단하니 곧 갖추어짐이라)”라는 내용에 나온다. 무릇 주역이라는 것은 지나간 것을 다 밝혀놓고 미래에 닥칠 일들을 사펴놓은 것이다(夫易 彰往而察來). 과거가 있어야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으므로 지난 과거에는 이렇게 지냈고 앞으로 오는 미래사는 이럴 것이다 하고 미리 살핀 것이다. 미래를 관찰하고 과거를 또 밝혀놓아 이렇게 과거와 미래를 분명히 해놓은 주역은 또 드러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은미한 이치를 살피고, 보이지 않는 심오한 이치를 밖으로 밝혀놓았다(微顯而闡幽). 微顯은 이미 세상에 드러나 있는 것의 근원을 알아내는 것이다. 顯을 微하는 것으로, 顯은 드러난 것이고, 微는 드러나기 전을 아는 것이다. 闡幽는 깊이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놓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까지 밝혀놓고(微顯),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도록 밝혀놓은 것(闡幽)이 바로 주역이자, 성인의 역할이다. 주역은 또한 제각기 이름을 마땅하게 다 붙여 놓았다(當名). 아버지, 아들, 형제, 조손, 부모 형제, 자매, 인군, 국사, 내직신하, 외직신하, 선비, 백성 등등 모두 합당하게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乾은 말이 되고, 兌는 양이 되고, 離는 꿩이 되고, 震은 용이 되고, 巽은 닭이 되고, 坎은 돼지가 되고, 艮은 개가 되고, 坤은 소가 된다. 또한 팔괘 하나하나가 부모의 자식의 관계로도 분별해놓았다(辨物). 곧 當名은 괘효에 각기 이름을 합당하게 붙여놓았다는 말이고, 辨物은 괘효를 보고 분별해놓았다는 것이다. 주역은 또 말을 바로 했다(正言). 점차적으로 미현, 천유, 당명, 변물로 해놓고서 말을 붙이는데 바른 말로 중정하게 표현했다. 하늘괘를 元亨利貞이라고 정의했다는 것이 다 ‘正言’이다. 모든 말을 이치에 맞게 도덕적으로 규범에 맞고 바르게 해놓았다. 이렇게 마릉ㄹ 바로해놓고 그 말을 바르게 판단했는데(斷辭), 이것이 바로 점이다. 正言은 더덕적으로 이치에 맞게 풀이한 것이고, 斷辭는 점으로 풀이한 것이다. 길하다, 흉하다, 인색하다, 뉘우친다 등이 단사이다. 이렇게 모두 갖추어놓은 것이 바로 주역이다(則備矣). 말도 바르게 해놓고, 길흉도 딱딱 끊어놓았고, 보이지 않는 건 보이게 하고,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밝혔고, 이름까지 합당하게 붙여놓았으니 모든 것이 다 주역 속에 갖춰져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이 성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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