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말부터 쓰기 시작한 『中庸』강의록을 약 5개월 남짓한 기간에 걸쳐 모두 마쳤습니다. 이 강의록은 명문당판(1992년 重版本) 原本備旨 『中庸』과 大山 金碩鎭 선생님이 1998년 8월부터 11월까지 홍역학회(사단법인 동방문화진흥회 전신)에서 진행한 강의 녹취 테이프 16개를 꼼꼼히 듣고 풀어가며 정리한 글입니다.
다행히도 그 사이에 수산 신성수(秀山 申性秀) 선생이 대산 선생님의 강의 테이프를 충실히 풀이해 기록하고 다른 경전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해 해설한 『대산 중용 강의』(한길사, 2004년)를 만나게 되어 제 작업은 훨씬 수월했습니다. 풀이글이 간혹 매우 구어체적이거나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말(예를 들면 ‘또’라는 뜻의 ‘다못’)을 그대로 쓰고, 주자의 해설과 관련해 토가 다른 이유는 대산 선생님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산 선생님의 쓰시는 옛말은 지금 거의 없어져가지만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말인지라 되도록이면 그대로 살려놓았습니다. 다만 내용이 부실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제 불찰일 뿐입니다. 대산 선생님은 하나하나 상세히 풀이해주셨지만 저는 글을 읽는 이들이 미루어 짐작하라고 대충 넘어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더욱이 제 생활이 다소 바쁘다는 핑계로 강의록을 훨씬 더 일찍 끝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하지 못했고, 때론 충실한 해설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어설프게 넘어간 부분도 꽤나 있을 것입니다. 구의원으로서, 초등학생과 이제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한문강사로서, 답사 안내자로서 활동하다보니 바쁜 틈을 쪼개가며 강의록을 작성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음도 아울러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실은 ‘충실하지 못한 강의록’에 대해 여러분의 용서를 구하는 변명이기에 너그러움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별도의 현장 강의(상계5동 주민자치센타 매주 목요일 2시 강의)를 진행해가며 그때그때 보충해 나가고 교정해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中庸』강의록를 정리하는 동안 항상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욕이 일어나거나 남을 미워하거나 하는 마음이 들 때면 전후좌우를 살피게 되고, 되도록이면 중용의 도를 지켜나가야지 하는 마음이 구름처럼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謹獨’하게 되고, 매사 정성스러운 마음이 되려고 항상 조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하기에 아마도 옛날 성현들이 『中庸』공부에 더욱 매진했던 것 같습니다. 날로 각박(刻薄)해지는 현실 속에서 『中庸』를 공부하라면 ‘웬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씨도 안 먹힐 답변이 돌아오기 십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이기에 더욱 중용의 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中庸』의 가르침은 오직 ‘정성 성(誠)’ 하나입니다.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이라고 우리가 하는 매사 일마다 지극한 정성이면 아니 될 일이 없을 것이고, 불선(不善)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 하늘을 한번 우러러 쳐다보면서 광막한 하늘의 도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감모여재(感慕如在)란 말이 있습니다. 佛家의 말입니다. 부처님을 친견하고 싶은 지극한 소망에서 일심으로 생각하면 그윽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 그 분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일지는 각자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지극한 정성이면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하늘을 닮아 원만(圓滿)해지지 않을까요?
끝으로 제 강의를 듣는 모든 수강생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실은 제가 두루 부족함에도 열심히 들어주는 수강생들이 없었다면 강의록이 결코 쉽게 나올 수 없었으리라고 봅니다. 앞선 대산 선생님과 청고 선생, 수산 선생이 있기에 오늘의 제가 있겠지만 저의 정신을 살지우게 한 것은 모든 수강생들입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를 드리고 더욱 알찬 강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두 주 동안은 그간 미뤄놓은 몇 개의 글들을 써 두고, 오는 6월부터는 새로이 『孟子』강의록을 작성해 올릴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