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ㅣ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악한 내음을 미워하는 것같이 하며 좋은 빛을 좋아하는 것같이 함이 이 이르되 스스로 쾌족함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니라.
毋 : 말 무 欺 : 속일 기 惡 : 미워할 오, 악할 악 臭 : 냄새 취 謙 : 쾌족할 겸 愼 : 삼갈 신
[해설] 여기서‘毋自欺也’라 이른 것은 정직함을 뜻하므로 그 내용이 본래는 致知에 관계된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함이 바로 아는 것이다”(『論語』爲政편 : 子ㅣ曰 由아 誨女知之乎저 知之謂知之오 不知謂不知ㅣ 是知也ㅣ니라)고 하셨으니, 사물에 곧바로 나아가서 이치를 왜곡하지 않고 정직하게 임함이 知에 이르는 첩경이다. 치지장 다음인 성의장 머리글에 속임 없음을 말한 것은 정직한 뒤에야 앎에 이르러 성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조차 자신의 뜻을 삼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누구에게나 어느 때이든 성실할 것이므로, 誠意에 愼獨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必愼其獨으로 문장을 끝맺어 강조하였다. 『中庸』에도 “네가 집에 있음을 보건대 은벽한 구석방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구나”(제33장, 詩云相在爾室혼대 尙不愧于屋漏ㅣ라 하니 故로 君子는 不動而敬하며 不言而信이니라)라는 『詩經』구절을 인용하여, 군자가 신독하여 어느 때이든 항시 언동을 조심하고 삼감을 강조하였다.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먼저 그 선악의 분기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격물치지 다음에 성의장이 놓인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致知로 好善하고 오악(惡惡)함을 알게 되면 마땅히 호선에 대하여는 好色같이 하고 오악에 대하여는 악취같이 하며, 남이 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내부부터 해결할 수 있는 誠意(謹獨, 즉 愼獨)를 가져야 한다. 如惡惡臭 如好好色은 외적이고 愼其獨은 내적이니, 안으로 僞善없는 愼其獨을 하고 밖으로 선악사정(善惡邪正)의 호오취사(好惡取捨)에 성의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大學』의 성의장 제1절과 제2절에 신독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中庸』제1장에도 똑같이 신독을 언급하여(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ㅣ니 可離면 非道也ㅣ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ㅣ니라) 모두 성의를 중시하고 있다. 『中庸』과『大學』이 서로 內外表裏를 이루는 것과 자사가 『中庸』을 지어 증자의 학맥을 이은 것을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愼獨과 관련된 내용이다.
06-02 小人이 閒居에 爲不善호대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然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ㅣ 如見其肺肝이니 然則何益矣리오 此謂誠於中이면 形於外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 소인이 한가하게 있을 때에 불선을 행함이 이르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보고 난 뒤에 슬며시 그 불선을 가리고 선을 드러내지만, 남들이 자기를 알아봄이 마치 나의 폐장과 간장을 보는 듯할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유익하겠는가. 이를 일컬어 ‘속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니라.
閑 : 한가할 한 厭 : 숨길 안, 싫을 염, 빠질 암 揜 : 가릴 엄 肺 : 폐 폐
[해설] 앞의 제1절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군자의 예이고 제2절은 자신을 속이는 소인의 예가 되니, 군자와 소인을 대비하여 愼獨이 성의의 요체임을 강조했다. 군자가 자신의 덕을 닦는 데 정성을 다하고 나몰래 선을 지극히 행하는 반면, 소인은 자신이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므로 거짓 착한 체하고 온갖 허물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인이 속이려해도 자연 불선한 속마음의 기미가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어서 마치 남이 자기를 보는 것이 그 폐와 간을 들여다봄과 같다. 하물며 군자를 속이기는 더욱 불가능한 노릇이므로 조금도 유익할 바가 없다. 모름지기 군자는 그 뜻을 정성스러이 할 뿐이나 또한 난초의 향기가 퍼지듯 속마음의 성실함이 세상에 알려져 절로 유이함이 있고 소인은 남을 속이고자 하나 거짓된 위선이 훤히 세상에 드러나 반드시 손해봄이 있다. 『中庸』에도 “군자의 도는 어두운 듯하나 나날이 빛나고 소인의 도는 환한 듯하나 나날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中庸』제33장 : 詩曰衣錦尙絅(의금상경 혹은 의금경의, 衣錦褧衣 : 화려함을 피하고자 비단옷 위에 홑옷을 걸침. 군자는 미덕이 있어도 이를 내세우지 않음을 비유)이라 하니 惡其文之著也ㅣ라 故로 君子之道는 闇然而日章하고 小人之道는 的然而日亡하나니 君子之道는 淡而不厭하며 簡而文하며 溫而理니 知遠之近하며 知風之自하며 知微之顯이면 可與入德矣리라.)
06-03 康誥에 曰 如保赤子라 하니 心誠求之면 雖不中이나 不遠矣니 未有學養子而后에 嫁者也ㅣ니라 강고에 이르기를 “갓난아이를 보살피듯 하라”하니, 마음으로 정성껏 구한다면 비록 中(꼭 들어맞음)은 아니더라도 중과 멀지 아니하니,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가 있지 않느니라.
嫁 : 시집갈 가
[해설] 아기 낳아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이가 없음을 말한 것은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성심을 다하면 비록 도에 합일하지는 못할지라도 또한 중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팔조목에서 “앎이 이른 뒤에 뜻이 성실하게 된다”(知至而后 意誠)고 하였으나, 앎이 이른다는 것은 生知安行(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행함)의 성인이 아니고서는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至誠如神’(『中庸』제24장 : 至誠之道는 可以前知니 國家將興에 必有禎祥(정상 : 상서, 길조)하며 國家將亡에 必有妖孼(요얼 : 재앙, 재앙의 조짐)하야 見乎蓍龜(시귀 : 점 칠 때 쓰는 시초와 거북껍질로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점을 친다는 의미)하며 動乎四體라 禍福將至에 善을 必先知之하며 不善을 必先知之니 故로 至誠은 如神이니라)이라고 하였듯이 至誠이면 感天이므로, 이 절목에다 누구나 성심으로 행하면 도가 멀지 않음을 밝혀서 사람들을 쉽게 인도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中庸』에 “지성에는 못 미치나 그 다음은 곡진함에 있다. 곡진하면 정성되고, 정성되면 형상되고 형상되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밝아지고 밝으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한다”고 하였다.(『中庸』제23장 : 其次는 致曲이니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ㅣ니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ㅣ니라.)
06-04 富潤屋이오 德潤身이라 心廣體胖하나니 故로 君子는 必誠其意니라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함이라. 마음이 넓고 몸은 살지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하나니라.
潤 : 윤택할 윤 胖 : 살질 반
[해설] 집이 윤택하려면 부하여야 하고 몸이 윤택하려면 덕이 있어야 하듯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항시 편안하여 심신이 윤택하게 됨이 誠意 여부에 달려 있음을 설명한 것인데, 이러한 심광체반의 덕을 지극히 체득하면 德業을 함께 이루어 천하를 평치할 수 있다. 그 예로 순임금은 지극한 정성으로 비단 자신의 윤택함만이 아니라 나아가 온 천하를 윤택하게 하였으므로 성인의 덕과 천자의 존귀함과 천하의 부를 함께 누렸다. 그래서 『中庸』에도 “대덕은 반드시 그 지위를 얻으며, 반드시 그 녹을 얻으며, 반드시 그 천명을 얻으며, 반드시 그 수명을 누린다”하고, “하늘이 보우하시고 거듭 명이 이르니, 대덕은 반드시 천명을 받는다”고 하였다.(『中庸』제17장 : 子ㅣ曰 舜은 其大孝也與신저 德爲聖人이시고 尊爲天子ㅣ시고 富有四海之內하사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故로 大德은 必得其位하며 必得其祿하며 必得其名하며 必得其壽니라. / 詩曰 嘉樂君子의 憲憲令德이 宜民宜人이라. 受祿于天이어늘 保佑命之하시고 自天申之라 하니라. 故로 大德者는 必受命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