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스크랩] 「위정편 4장」[술이편 16장]에 담겨진 『주역』의 數의 이치

ria530 2012. 6. 16. 10:56

공자가 「위정편 4장」[술이편 16장]에 담아놓은

『주역』의 數의 이치

 

1) 공자가 『논어에서 언급한 數는 易의 이치를 상징한다.

 

천지자연(또는 萬物)의 이치를 정리하여 이것이 인간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를 밝힌 학문을 동양철학이라고 한다. 천지자연의 이치를 풀이한 가장 대표적인 문헌이 易이다. 이에 易은 동양철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나아가 모든 동양학문은 易을 토대로 나누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시아를 가장 오래 지배해온 유학이야말로 공자가 易을 가장 정통적으로 계승하여 정립한 동양학문이다. 따라서 공자가 말년에 위편삼절까지 할 정도로 심취한 끝에 지은『주역』 해설서인 십익전(十翼傳)은 유학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는 문헌이다. 그런 점에서 易을 모르고는 유학의 핵심사상에 올바로 접근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易을 흔히 象數理學이라고 하는데 이는 易이 ‘象’과 ‘數’와 ‘理致’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즉 천지자연 즉 만물이 象과 數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理致이다. 이에 易에서는 모든 만물에는 다 象이 있고 또한 數가 있다고 본다.

 

易에서 象의 기초 단위는 양(陽 : ㅡ)과 음(陰 : --)이며, 가장 바탕이 되는 象은 음양의 상이 세 개 모여 이루어진 소성괘로 8괘이다. 8괘를 각기 두 개씩 배합하여 나온 64괘가 복희씨의 易이다.

 

여기에 주나라 문왕과 주공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붙이고, 공자가 십익전(十翼傳)을 달아 종합적으로 해설하였다. 이 모두를 통틀어『周易』이라 한다.

 

복희씨는 모든 만물에 象이 있듯이 또한 數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만물을 나타내는 象의 기초 단위가 음양이듯이, 數의 기초 단위는 1~10으로 보았다.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서 이를 ‘天地之數’로 표현하였고 ‘天一 地二 天三 地四 天五 地六 天七 地八 天九 地十’이라 하였다. 즉 하늘의 수인 陽數 1,3,5,7,9와 땅의 수인 陰數 2,4,6,8,10으로 만물을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

 

한편 동아시아에서는 易이 나오던 상고시절에 이미 천문역법(天文曆法)이 발달하였는데 이는 천문역법이 천지자연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나타내어 인간의 삶과 매우 밀접하였기 때문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하루(一日)를 삼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되는 4 계절을 기준으로 1년을 삼으며, 초승달이 보름달에서 그믐달로 되었다가 다시 초승달이 되는 것을 기준으로 1 개월로 삼아, 역법상으로 1년 12 개월 4계절을 두었다.

 

『서경』堯傳편에는 요임금이 이러한 천문을 관측하여 일년을 366일로 하고 윤달을 정한 역법관련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천문이 象이라면, 역법은 數인데, 천문의 象을 數로 나타낸 것이 역법이니, 象과 數가 직접으로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象과 數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이 理致이다.

 

예를 들어 숫자 5를 하늘의 중심수인 천태극(天太極)이라 하고, 10을 땅의 중심수인 지태극(地太極)이라고 하는 것이나, 10이 완성의 수이기에 공간을 통틀어서 시방(十方)이라 하고, 우리말로 ‘열(十)’이 ‘열다’의 어원인 것 등이다. 아래 도표의 五行을 나타내는 숫자도 그렇다. 천문역법에 의한 年月日時에 개인의 운명을 적용하여 풀이하는 사주팔자 역시 易의 數를 나타낸 것이다.

 

생 수

1

2

3

4

5 (천태극)

성 수

6

7

8

9

10 (지태극)

오 행

土 (인태극)

 

또한 ‘무슨 수(數)가 나왔느냐?’는 말을 비롯해 ‘거기 갈 수(數) 있나’ ‘여기 올 수(數) 있나’ ‘먹을 수(數) 있나’ ‘입을 수(數) 있나’ ‘할 수(數) 있나’ ‘될 수(數) 있나’ ‘그럴 수(數)가 있나’ ‘ 무슨 수(數)를 내야겠는데’ ‘뾰족한 수(數)가 없다’ ‘분수(分數)를 알아야지’ ‘미지수(未知數)’ ‘신수(身數)’ ‘운수(運數)’ ‘재수(財數)’ 등에 쓰는 ‘수(數)’라는 말들을 보아도 우리의 삶 속에서 數가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을 알 수 있다.

 

이렇듯 象과 數가 매우 중요한 개념을 내포하고 있기에 공자는 ?주역? 계사전에서 數로써 변화를 이루고 신묘(神妙)한 귀신의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따라서 공자가 논어 위정편 4장, 이인편 15장, 술이편 16장, 공야장편 27장에서 언급한 숫자는 단순히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다. 다시말해 그 숫자에는 易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는 의미이다.

 

2) 공자의 경세제민(經世濟民)사상과 周易

 

『논어(論語)』 위정(爲政)편 제4장의 문장은

①吾十有五而志于學

②三十而立

③四十而不惑

④五十而知天命

⑤六十而耳順

⑥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의 여섯 단계로 이루어져있다.

 

나이의 등급에 따라 學問과 修身의 단계를 나누었다고 해서 유교문화권에서는 이에 따라 나이를 지칭할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대표적인 호칭은 40대를 지칭하는 ‘불혹(不惑)과 50대를 뜻하는 지천명(知天命)이다.

 

문제는『논어』가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 지금껏 이에 대해 다른 이견(異見)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학에 가장 정통하다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를 비롯한 모든 유학자들이 이 문장에 나오는 숫자를 단순히 나이에 따른 학문의 단계로 설명해왔기 때문이다.

 

정자는 “공자가 스스로 進德하는 순서를 말한 것은 聖人이 꼭 그 나이별로 그러했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배우는 자가 법칙을 세워 단계적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주자는 여기에 “옛날에는 열다섯에 태학에 들어가듯이 열다섯 정도가 되면 유학이 추구하는 바의 ‘窮理正心修己治人’의 道를 닦기 시작하여 차츰 단계적으로 깨달아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또한 “공자가 이러한 단계를 두어 말한 것은 공자 자신이 이러한 나이에 따라 살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학문하는 자가 이를 법칙삼아 스스로 힘쓰게 하고자 함이라”는 註釋(주석)을 달았다. 그럼에도 공자가 굳이 ‘나(吾)’라는 말을 쓴 것은 공자의 겸손한 말이라고“ 하였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이에 따라 나이를 일반적으로 ‘志年(10대) ․ 立年(30대) ․ 不惑年(40대) ․ 知年(50대) ․ 耳順年(60대) ․ 從心年(70대)’ 등으로 불러 왔다. 이러한 호칭은 배움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학문과 수신을 통해 순차적으로 進德修業한다는 지침을 주었다는 데서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 해설은 공자의 심오한 道가 易에 근거하고 있음을 모르고 단지 산술적인 나이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선 위정편 4장이 나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자면,

 

⓵ 첫째로 공자 당시는 60,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시 6~70세의 나이는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보편적인 삶이 아니다.

 

⓶ 둘째로『史記』 「공자세가」에서 사마천(司馬遷)이 정리한 공자의 일생을 보아도 나이 등급에 따른 학문의 6 단계 분류는 공자 자신의 삶의 이력과도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⓷ 셋째로 공자는 生而知之(나면서부터 道를 깨닫다)한 聖人이라고 평가받는 인물로, 각종 경전저술과 후학 교육을 통해 유교사상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특히 복희씨의 괘와 周나라 문왕과 주공의 괘사와 효사로 이루어진 『易』을 해설한 십익전(十翼傳)을 통해 『易經』을 완성하고는 이를 유학경전의 종주(宗主)로 삼았다. 이러한 성인이 나이 등급에 따라 ‘나는 몇 세에 이러했노라’고 말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⓸ 넷째로 공자는 논어의 다른 문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때는 ‘吾’라는 말을 썼다(⑧번째 설명 참조). 따라서 吾가 공자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겸양의 표현이라는 주자의 해설은 잘못된 설명이다. 공자가『주역』의 道에 근거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혀 놓았기에 吾를 썼다는 의미이다. 주자의 해설은 『주역』의 數理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보충>

◂ 八佾편 9장에서 “子曰夏禮를 吾能言之나 杞不足徵也며 殷禮를 吾能言之나 宋不足徵也는 文獻이 不足故也니 足則吾能徵之矣로리라(공자 가라사대 하나라 예를 내 말할 수 있으나 기나라가 족히 증거대지 못하며 은나라 예를 내 말할 수 있으나 송나라가 족히 증거대지 못함은 문헌이 부족한 까닭이니 족하면 내가 능히 증거를 대리라)”라 하였고,

 

◂ 里仁편 제15장에서는 “子曰參乎아 吾道는 一以貫之니라(공자 가라사대 삼아, 내 도는 하나로써 꿰었느니라)”라 하였으며,

 

◂ 公冶長편 제26장에서는 “子曰已矣乎라 吾未見能見其過而內自訟者也케라(공자 가라사대 말지니라. 내 능히 그 허물을 보고 안으로 스스로 송사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노라)”하였다.

 

 . 다섯째로 『논어』술이(述而)편 16장에 나오는 “子曰 加我數年하여 五十以學易이면 可以無大過矣리라”는 문장에서 ‘五十’ 은 『주역』의 數理를 나타낸 것임에도 이를 전혀 엉뚱하게 ‘마칠 졸(卒, 卆)’로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위정편 4장에 대한 잘못된 해설과 같이 『주역』의 數理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大過’ 역시 단순히 글자 그대로의 ‘큰 허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주역』상경의 28번째 괘인 ‘澤風大過()’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보충> 『논어』술이(述而)편 16장 ‘五十以學易 可以無大過矣’의

‘五十’과 ‘大過’의 易學的 의미

『주역』은 전체 구성이 天道를 밝힌 상경(上經) 30개의 괘와 人事를 다룬 하경(下經) 34개의 괘로 총 64괘로 이루어져 있다. 64괘는 동양철학에서 체(體 : 근본, 중심)에 해당하는 乾坤坎離(건곤감리 : 우리나라 태극기에 있는 4개의 괘명)괘와 용(用 : 수단, 방편)에 해당하는 60개의 괘로 나뉜다. 60은 天干地支(천간지지)의 총합인 60갑자(甲子)와 일치하는 수이다(뒤의 ‘耳順’ 설명 참고)

 

『주역』에서는 역사상의 시대 분류를 크게 선천(先天)시대와 후천(後天)시대로 나누고 있는데 천지자연의 이치를 중심으로 다룬 상경이 선천시대에 속하고, 천지자연의 이치를 본받는 人事를 중심으로 다룬 하경을 후천시대에 속한다고 본다. 64괘 가운데 체(體)가 되는 건곤감리(乾坤坎離)괘를 제외하면 괘의 순서상 상경의 마지막 괘는 (29, 30번째인 坎, 離괘를 빼면) 실질적으로는 28번째인 대과(大過)괘이다.

 

따라서 대과(大過)괘는 상경의 선천시대에서 하경의 후천시대로 넘어가는 변곡점(變曲點)에 있는 셈이다. 대과(大過)괘의 내용 자체가 세상이 크게 변하는 시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五十’은 『주역』에서 대연수(大衍數) 50을 말하는데 『주역』의 數理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知天命 설명 참고).

 

이에 ‘五十以學易이면 可以無大過矣’에는 공자가 ‘易으로써 50 대연수(大衍數)를 궁리하면, 선천의 시대가 후천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발생하는 대과(大過)의 때를 당하더라도 그에 대한 방안을 반드시 제시할 수 있을 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이 내용은 근세 동북아에서 『주역』에 가장 정통하다는 야산선사의 수제자인 大山 김석진 선생이 강연에서 밝혔다).

 

그런 점에서 위 문장은 易의 道를 함축하고 있는데서 위정편 4장의 문장과 상통한다. 한편 공자가 유학에서 추구하는 후천시대의 이상사회는 대동(大同)사회이다. 대동(大同)사회의 내용은 『예기』 禮運편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여섯 번째로 위정편 4장의 내용이 나이에 의한 학업이나 수신과 관련된 것이라면 제자들이 『논어』 편찬시에 이를 오히려 ‘學而’편에 배치했어야 한다는 점이다. 위정편에 둔 까닭은 그 속에 공자의 세상을 경륜(經綸)하는 정치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로 위정편 4장에 나오는 數가 나이라는 연수(年數)를 뜻한다면 통상적으로 年이나 歲나 載나 祀 등을 붙이는데 여기에는 그러한 글자가 없다는 점이다.

 

나이를 언급한 『예기』곡례(曲禮)편을 보면 年을 먼저 붙여 나이에 따른 일을 언급하고 있다. 곧 “人生十年曰幼이니 學이오 二十曰弱이니 冠이오 三十曰壯이니 有室이오 四十曰强이니 而仕이오 五十曰艾니 服官政이오 六十曰耆이니 指使요 七十曰老니 而傳이오 八十九十曰耄요 七年曰悼니 悼與耄는 雖有罪라도 不加刑焉이오 百年曰期이니 頤니라 : 사람이 나서 십년을 가로대 어리니 배우고, 이십은 가로대 젊으니 관례하고(갓을 쓰고, 成人으로서 의관을 갖추고), 삼십은 가로대 장하니 실(부인)을 두고, 사십은 가로대 강하니 벼슬하며, 오십은 가로대 애(쑥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해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艾는 艹 + 乂의 합으로 만물의 조화로움을 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음)이니 정사에 복무하고, 육십은 가로대 기이니 지시하고 부리고, 칠십은 가로대 노이니 전수하니라. 팔십과 구십은 가로대 모요, 칠년(일곱 살)은 도이니 도와 모는 비록 죄가 있더라도 형벌을 가하지 아니하고, 백년은 가로대 기이니 부양되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열 살을 幼學, 스무 살을 弱冠, 서른 살과 마흔 살 즈음의 나이를 年富力强, 예순 이상의 노인들을 耆老라 하고, 백 살을 期頤(기이)라고 한다. 곡례편에 의거해 보더라도 위정편 제4장에서 거론되는 숫자는 단순히 나이로 해석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보충> 『논어』里仁편 제15장

‘吾道 一以貫之’의 ‘一’의 易學的 의미

 

‘一’은 그 자체로는 '하나'라는 뜻이지만 『주역』을 體로 하는 동양철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처음으로 시작하는 하늘’을 가리킨다. 『주역』에서 하늘은 일월성신이 쉬임없이 돌아가기에 둥글다는 원(圓, ○)으로 형상하였고, 무한한 가운데 만물을 낳는 은미한 씨앗의 역할을 하기에 점(點, •)으로도 나타내며, 만물을 다 덮는 천개(天蓋)이자 무한한 의미를 나타낼 때는 일(一)자로 표현하였다.

 

일(一)은 『주역』에서 무극(無極)이며 태극(太極)이며 유극(有極)의 개념을 담고 있으며, 모두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一)로 시작되었지만 하나가  펼쳐져 완성의 수인 열(十)을 이루는 이치이다. '하늘 천(天)'자의 글자가 一과 大로 이루어진 것은 이 같은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우주 만물(宇宙萬物)의 종시(終始)가 하늘, 즉 일(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자는『주역』에서 이를 "大哉라 乾元이여 萬物이 資始하나니…"라 표현하였다. 『천부경』에서는 ‘一妙衍萬往萬來(하나가 신묘하게 펼쳐져 만 갈래로 가고 만 갈래로 오니)’라 하였다.

 

『도덕경』에서도 『주역』의 태극(太極) 사상을 ‘一’로 표현하고 있다. "하늘이 일(一)을 얻음으로써 맑게 되고(天得一以淸), 땅이 一을 얻음으로써 편안하게 되고(地得一以寧), 神이 一을 얻음으로써 신령하게 되고(神得一以靈), 골짜기가 一을 얻음으로써 채워지고(谷得一以盈), 만물이 一을 얻음으로써 생겨나고(萬物得一以生), 왕이 一을 얻음으로써 천하를 바로한다(侯王得一以爲天下正)"로 나온다.

 

여기서 공자가 말한 ‘一’은 하늘의 이치(天理=天道) 즉 『주역』의 이치를 뜻한다. 따라서 ‘一以貫之는 하늘의 이치로써 道를 관통한다’는 의미이다. 즉『주역』의 이치로서 道를 관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3)『주역』은 유교정치철학 사상의 宗主

 

공자는 말년에 위편삼절(韋篇三絶 : 『역경』 책을 엮은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심히 보았다는 뜻) 끝에 십익전(十翼傳)을 저술하여 『주역』을 완성하였다. 이후『주역』은 유교의 경세제민 사상의 토대로서 유학 경전중에서도 首經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위정편 제4장의 문장에 나오는 數는 단순히 나이를 나타내는 數가 아니다. 다시 말해  經世濟民(경세제민)의 정치철학 사상을 담은 『주역』과『서경』 홍범(洪範)의 수리(數理)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사상은 道家나 佛家와는 달리 經世濟民(경세제민)을 통해 대동(大同)사회라는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정치철학 사상이기 때문이다.

 

 『서경』 홍범(洪範)은 우(禹)가 하(夏)나라 임금이 되기 전에 요임금의 명을 받아 9년 홍수를 다스릴 때 상제(上帝, 檀君으로 알려짐)로부터 받은 글로, 오행의 이치에 의거해 경세제민의 방안을 담은 최고의 통치철학서이이다. 은(殷)나라 말기에 멸실될 위기에 놓여 있던 것을 箕子(기자)가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에 전하고, 이를 공자가 『서경』에 기록해두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위정편 4장의 문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문장구성이,

 

①吾十有五而志于學

②三十而立

③四十而不惑

④五十而知天命

⑤六十而耳順

⑥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의 여섯 단계로 나누어졌는데, 이는 『주역』의 괘(卦)의 완성을 이루는 6개의 효와 같은 단계이다. 이에 단계별로 나오는 숫자가 내포하고 의미를 『주역』과 『서경』의 홍범에 의거해서 살펴보면,

 

1) 첫 번째가 ‘十有五而志于學’이다.

 

(皇極)

 

‘十’은 『주역』의 토대가 된 하도(河圖)의 수인 1~10까지의 수를 말하며 또한 천지만물과 東西南北과 四方八方上下 즉 시방(十方)을 두루 포괄하는 완성의 數이자 큰 수로 나아가기 위한 바탕數(地태극)이다. 이를 바탕으로 大同의 후천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나온 이론이 낙서구궁수리(洛書九宮數理, 그림1)이다.

 

[그림1]은 『서경』홍범(洪範)편의 오행이론을 나타낸 것으로, 가운데 五는 홍범(洪範) 구주(九疇)에서 다섯번째 황극(皇極)의 數로써 상하좌우를 두루 회통(會通)하여 다스리는 중심(天태극 : 임금)의 자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공자가 十有五라고 말한 것은 ‘낙서구궁수리(洛書九宮數理)’에 담긴 오용십작(五用十作)의 ‘十五’를 뜻한다. 五用十作이란 가운데 수인 五(천태극)를 중심으로 좌우와 상하, 대각선의 수를 합하면 10(지태극)이 되고 세 수 모두를 합하면 十五가 되는 이치로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곳으로 보태주어 고르게 한다는 損益(손익)의 이치를 담고 있다.

 

공자가『주역』 15번째괘인 지산겸(地山謙, )괘에서 말한 “裒多益寡(부다익과 :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곳에 보태고) 稱物平施(칭물평시 : 물건을 저울질하여 골고루 베푼다)”와 같은 의미이다.

 

五用十作의 원리를 담고 있는 [그림2]는 국가운영의 중심제도였던 정전법(井田法)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마을 가운데의 땅에 열(十) 길을 파서 만든 공동우물(井)의 모습으로서 四通八達하여 卍往卍來(만왕만래)하는 대동사회를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吾十有五而志于學’은 공자가 오용십작(五用十作)하는 홍범의 정치대법에서 후천의 대동사회를 실현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2) 두 번째는 三十而立이다.

 

30의 이치로 세웠다는 뜻이다. 15에서 30으로 뛰었다. 중간에 20이라는 나이는 弱冠(약관)으로 비로소 成人으로서 대접받을 나이인데 공자는 왜 20의 나이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이 점으로 보아도 위정편 제4장에 나오는 숫자는 나이를 거론한 것이 아니다.  한참 왕성한 20대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오로지 15년 동안을 공부만하여 벼슬길에 오르라는 學優登仕(학우등사)의 내용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는다.『예기』에서는 오히려 나이 40에 벼슬한다는 强仕를 말하고 있다.

 

따라서 '三十而立'에는 五用十作(15)의 원리가 담긴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이치를 깨달아야 비로서 자신의 입장을 올바로 세워서, 선천의 시대에서 후천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30은 선천시대의 이치를 다룬 『주역』上經 괘의 숫자인 30을 뜻하하기도 하는데 이에 공자는 상경의 마지막괘인 30번째 重火離(중화리 : )괘에서 “乃化成天下하나니(천하를 화하여 이루니) 大人이 以하여 繼明하여 照于四方하나니라(대인이 이로써 밝은 것을 이어서 사방을 비추느니라)”고 하였다.

 

즉 ‘三十而立’은 ‘30의 이치(『주역』의 상경 : 선천시대로 앞서간 역사의 자취)를 깨달은 大人이라야 세상을 밝게 다스려서 다가오는 미래인 후천시대를 대비하여 바로 설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3) 세 번째는 四十而不惑이다.

‘40으로 미혹됨이 없다’는 뜻인데 낙서구궁수리의 그림에서 가운데 五(천태극)는 『서경』 홍범에서 建用皇極(황극으로써 세움)으로 大同中正하고 至公無私한 임금의 자리를 뜻한다.『논어』 위정편 제1장의 ‘北辰’과 같은 개념이다.

 

가운데 五가 황극(유극)으로써 바로 서면 주변의 40(낙서구궁수인 1부터 9까지의 합이 45이고, 가운데 5를 빼면 주변의 수는 40이 됨)이 되는 3 8 4 9 2 7 1 6의 자리에 선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는 경세제민의 의미가 담겨 있다. 즉 ‘四十而不惑’은 ‘五의 황극이 바로 서서 井田의 이치로 公平하게 다스려야 서로간에 미혹됨이 없다’는 뜻이다.

 

좀더 살펴보면 五의 황극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중용』에서 말하는 恕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림2]와 같이 '우물 井'자의 가운데 한 구멍을 열 길 물을 파서 사통팔달하게 만들면 네 구멍이 만들어지는 것이 四十의 개념이다. 이렇게 하면 四通八達하여 마침내 均濟方正를 이뤄 五德(水火木金土의 덕)이 갖춰지게 되어 대동중정한 정사를 펴는데 조금도 의혹됨이 없게 된다.

(恕 = 如 +心 으로  한 원의 중심에서 나가는 반지름이 어느 곳이든 똑같듯 내 마음의 中心인 忠을 세운 뒤, 내 마음에 비춰 백성들의 마음을 똑같이 헤아려 베풀 줄 알아야 백성들 또한 한가운데인 태극을 중심으로 北辰共之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편 40은 『주역』의 괘순으로 40번째 괘인 雷水解(뇌수해, )괘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공자는 解괘에서 “천지가 풀림에 우레와 비가 일어나고, 우레와 비가 일어남에 백과초목이 모두 다 열려 나오니 해의 때가 크도다(天地解而雷雨作하고 雷雨作而百果草木이 皆甲坼하나니 解之時 大矣哉 라)”라고 하였다.

 

4) 네 번째는 五十而知天命이다.

‘50의 이치를 깨달았기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50은『주역』에서 말하는 大衍(크게 펼치다)의 數로, 공자가 계사전을 통해 거론한 數이다.

 

“크게 펼치는 수가 오십이니, 그 씀은 사십구라. 나누어 둘로 하여 양의(兩儀 : 음양)를 형상하고, 하나를 걸어서 삼재(三才 : 天.地.人)를 형상하고, 넷으로 셈으로써 사시(四時 : 사계절)를 형상하고,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움으로써 윤달을 형상하니 오 년에 두 번 윤달이라. 그러므로 끼운 후에 괘를 짓느니라(大衍之數 五十이니 其用은 四十有九ㅣ라 分而爲二하여 以象兩하고 掛一하여 以象三하고 揲之以四하여 以象四時하고 歸奇於扐하야 以象閏하나니 五歲에 再閏이라 故로 再扐而後에 掛하나니라)”고 하였다.

 

공자가 점(占)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으로, 하늘에서 낮과 밤, 곧 음양이 생겨나 사계절을 이루는데 태양의 공전주기와 달의 공전주기가 다르므로 5년에 두 번 윤달을 둔다는 이치에 따라, 댓가지 50개를 가지고 점을 치는 설시법(揲蓍法)을 다룬 내용이다.

 

五十이라는 수는 하도(1~10까지의 합인 55)와 낙서(1~9까지의 합인 45)를 합한 100의 중간수이기도 하지만, 하도에서 넘치는 5를 덜어내 낙서에 더하면 50과 50으로 서로 같아지므로 損益을 통해 裒多益寡(부다익과) 稱物平施(칭물평시)하는 五用十作의 원리에 따른 수이다.

 

또한 50은 『書經』홍범편에 나오는 구주(九疇)의 이치를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교에서 경세제민의 통치철학으로 삼았던 홍범 구주(九疇)는 모두 9개의 범주로 총 51개의 각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五行의 5가지, 五事의 5가지, 八政의 8가지, 五紀의 5가지, 가장 중심이 되는 皇極 하나, 그리고 三德의 3가지, 稽疑(계의) 7가지, 庶徵(서징)의 6가지, 마지막 9번째의 五福六極 11가지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체(體)가 되는 수는 '皇極不語數' 또는 '體不用'이라고 하여 셈에 넣지 않거나 쓰지 않았다. 임금이 참석하는 행사를 그림으로 나타낼 때 그림에 임금의 모습은 그려 넣지 않고 임금 자리인 빈 龍床만 그려 넣는 것이 그러한 이치이다. 이에 홍범 구주 역시 황극을 빼놓으면 통치철학의 방책의 수가 50개이므로 50은 『주역』의 대연수로서 오용십작과 더불어 홍범구주의 방책수인 50을 뜻한다고 본다. 따라서 ‘五十而知天命’은 『주역』의 음양이치와 『서경』홍범의 오행의 이치로서 天命을 안다는 뜻이다.

 

5) 다섯 번째 六十而耳順이다.

천간(天干, 十干)과 지지(地支, 十二支)를 배합한 첫 번째 甲子에서부터 마지막 癸亥까지 한 바퀴를 다 돌면 60甲子가 된다. 이에 유교문화권에서는 六十으로 한 節이자 한 回를 나타내고 아울러 날짜를 세는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주역』의 60번째 괘는 水澤節(수택절, )괘이다.

 

‘節’은 대나무의 마디를 뜻하는데 이에 ‘節’에는 대나무 마디가 그쳤다가(止) 다시 나아가(行)는 즉 ‘時止時行(그칠 때 그치고, 나아갈 때 나아감)’하듯이 절도를 맞추는 中節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대나무는 마디가 모여서(會) 이어되 속으로는 한길로 통하는(通)데서 '節'에는 주역 계사상전 8장의 ‘觀其會通(관기회통)’하는 이치가 담겨 있다.

 

이에 공자는『주역』 60번째 괘인 節괘에서 “천지가 절도 있음에 사계절이 이루어지나니 節로써 책력과 법도를 지어서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백성을 해롭게 하지 아니하니라(天地節而四時成하나니 節以制度하야 不傷財하며 不害民하나니라)”며, “군자가 이로써 책력과 법도를 지으며 덕행을 의논하니라(君子 以하야 制數度하며 議德行하나니라)”고 하였다.

 

즉 ‘六十而耳順’은 처음 15라는 五用十作의 원리를 담고 있는 하도와 낙서구궁수리의 이치를 연구하기 시작하여, 30으로 선천의 이치를 모두 깨달아 바로 세우고, 建用皇極하는 가운데 40으로 미혹됨이 없고, 대연의 수 50으로 천명을 알아, 60의 節度를 통하였다는 뜻이다.

 

즉 60의 이치에 의거해서 후천시대에 맞는 책력은 물론 제도와 법도를 지어(節以制度, 制數度) 대동사회(不傷財不害民, 議德行)를 이뤄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6) 끝으로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이다.

 

11월

(子月, 復月)

12월

(丑月, 臨月)

정월

(寅月, 泰月)

2월

(卯月,大壯月)

3월

(辰月, 夬月)

4월

(巳月, 乾月)

 

 

 

 

 

 

 

5월

(午月, 姤月)

6월

(未月, 遯月)

7월

(申月, 否月)

8월

(酉月, 觀月)

9월

(戌月, 剝月)

10월

(亥月, 坤月)

 

 

 

 

 

 

七十은 五十이 대연(大衍 : 크게 펼치는)의 數이듯이 七과 十이 대연해서 이루어진 數로 볼 수 있다. 즉 七에는 주역의 여섯 개의 효가 끝나면 7번째에 다시 시작한다는 '七日來復'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때에는 다시 陽이 처음으로 회복한다고 하여 주역 24번째인 地雷復(지뢰복 : )괘에서는 “그 道를 반복하여 칠 일만에 와서 회복한다(反復其道하여 七日來復하니)”라고 하였다. 이것을 1년 12달의 개념으로 표현하면 [그림3]과 같다.

 

七日來復에는 [그림3]과 같이 日月의 운행에 따른 세월의 음기운과 양기운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陰陽消長(음양소장)의 이치가 담겨있다. 이런 12달을 좀더 세밀히 나눈 것이 24절기(節氣)이며 72후(候)이다. 따라서 70이란 표현 속에서 72후를 큰 수만을 들어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양이 다하여 음으로 가는 데는(음력 11월에서 5월이 되기까지) 7번째 달이 되어야 하고, 음이 다하여 다시 양으로 돌아가는 데는(음력 5월에서 11월이 되기까지) 다시 7번째 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七日來復의 이치를 두루 크게 펼쳐(十) 먼 후세에 이르더라도 중심(心=北辰=皇極)을 따랐기에 조금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에 담긴 의미이다. 다시말해, 다섯(五) 단계(15 → 30 → 40 → 50 → 60)를 거쳐 마침내 절도로써 딱 맞춘 도수(제도, 역수 등)를 미세한 곳까지를 다 마쳐놓았으니 十으로 두루 펼쳐서 다시 써 보아도 법도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공자가 위정편 4장에 『주역』의 음양이치와 『서경』 홍범의 오행이치에 의거해서 '유교 정치철학 사상과 유교가 추구하는 이상사회'를 담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후세에 세상이 바뀔 때에 대비하여 『주역』의 상수리(象數理)의 이치를 잘 연구하여 실천해 나가면 후천시대에 대과(大過)없이 대동(大同)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溫故知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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