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스크랩] 제5권 周書 제15편 洛誥(낙고) 14장~21장 해설

ria530 2012. 6. 19. 10:23

<洛誥14章>
王若曰公이 明保予冲子하사 公稱丕顯德하사 以予小子로 揚文武烈하며 奉答天命하며 和恒四方民하야 居師하시다
왕이 다음과 같이 가라사대 공이 나 어린 자식을 밝게 도우시어 공이 크게 드러나 덕을 들어서 나 소자로써 문무의 공덕을 날리며 천명을 받들어 답하며 사방의 백성들을 화합하고 항구하게 하여 무리를 거처하게 하셨다.

此下는 成王이 答周公及留公也라 大抵與上章으로 參錯相應이라 明은 顯明之也요 保는 保佑之也라 稱은 擧也라 和者는 使不乖也요 恒者는 使可久也라 居師者는 宅其衆也라 言周公이 明保成王하여 擧大明德하여 使其上之不忝於文武하며 仰不愧天하고 俯不怍人也라

이 아래는 성왕이 주공에게 답하고 공을 머무르게 함이라. 대저 윗글과 더불어 뒤섞여 서로 응함이라. 명(明)은 밝게 드러남이고, 보(保)는 보우함이라. 칭(稱)은 듦이라. 화(和)는 어긋나지 않게 함이고, 항(恒)은 가히 오래하게 함이라. 거사(居師)는 그 무리들을 거처하게 함이라. 주공이 성왕을 밝게 도우시어 크게 밝은 덕을 들어서 그 위로는 문왕과 무왕을 욕되게 하지 아니했으며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구부려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했음을 말함이라.

<洛誥15章>
惇宗將禮하야 稱秩元祀호대 咸秩無文케하시다
공이 으뜸가는 이를 두터이 하고 예를 크게 하여 큰 제사를 들어 차례대로 하되 다 글에 없는 것조차 질서 있게 하셨다.

宗은 功宗之宗也니 下文宗禮同이라 將은 大也라

종(宗)은 공종(功宗, 7장)의 종(宗)이니 아래 문장(19장)의 종례(宗禮)와 같음이라. 장(將)은 큼이라.

<洛誥16章>
惟公德이 明光于上下하며 勤施于四方하야 旁作穆穆迓衡하야 不迷文武勤敎하시니 予冲子는 夙夜에 毖祀ㅣ로다
오직 공의 덕이 상하에 밝게 빛나며 사방에 부지런히 베풀어져 널리 온화하게 공경함을 지어 평평히 다스려짐을 맞이하여 문무께서 부지런히 가르친 것을 잃지 아니하셨으니 나 어린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제사에만 삼갈지로다.

旁은 無方所也니 因上下四方爲言이라 穆穆은 和敬也라 迓는 迎也라 言周公之德이 昭著於上下하며 勤施于四方하여 旁作穆穆하여 以迎治平하여 不迷失文武所勤之敎於天下하시니 公之德敎加於時者如此라 予冲子는 夫何爲哉아 惟早夜에 以謹祭祀而已라 蓋成王이 知周公有退休之志라 故로 示其所以留之之意也라

방(旁)은 방소가 없음이니 상하 사방으로 인하여 말함이라. 목목(穆穆)은 온화하게 공경함이라. 아(迓)는 맞이함이라. 말하기를, ‘주공의 덕이 상하에 밝게 나타나며 사방에 부지런히 베풀어져 널리 온화하게 공경함을 지어 평평히 다스려짐을 맞이하여 문왕과 무왕이 천하에 부지런히 베푸신 가르침을 잃지 아니하셨으니, 공의 덕과 가르침이 이때에 더해짐이 이와 같음이라. 나 어린 사람은 무릇 어찌 하랴. 오직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제사에만 삼갈 뿐이라’고 하니라. 대개 성왕이 주공이 물러가 쉰다는 뜻이 있음을 알았으므로 그 이로써 머물게 하는 뜻을 보임이라.

<洛誥17章>
王曰公功은 棐迪이 篤하니 罔不若時ㅣ어다
왕이 가라사대 공의 공은 돕고 이끌어줌이 두터우니 이와 같이 않음이 없을지어다.

言周公之功이 所以輔我啓我者厚矣니 當常如是요 未可以言去也라

말하기를, 주공의 공이 나를 돕고 나를 열어준 바가 두터우니 마땅히 항상 이와 같이 하고, 가히 간다는 말로써 하지 말라.

<洛誥18章>
王曰公아 予小子는 其退하야 卽辟于周하고 命公後호리라
왕이 가라사대, 공이여, 나 소자는 그 물러가 곧 주나라로 가서 임금을 하고 공에게 명하여 뒤에 남게 하리라.

此下는 成王留周公治洛也라 成王이 言我退하여 卽居于周하고 命公留後治洛이라 蓋洛邑之作은 周公이 本欲成王遷都하여 以宅天下之中이어늘 而成王之意는 則未欲捨鎬京而廢祖宗之舊라 故로 於洛邑擧祀發政之後에 卽欲歸居于周而留周公治洛이라 謂之後者는 先成王之辭니 猶後世留守留後之義라 先儒謂封伯禽하여 以爲魯後者非是라 攷之費誓컨대 東郊不開는 乃在周公東征之時니 則伯禽就國이 蓋已久矣라 下文에 惟告周公其後라하니 其字之義에 益可見其爲周公이오 不爲伯禽也라

이 아래는 성왕이 주공을 머물게 하여 낙읍을 다스리게 함이라. 성왕이 말하기를, 내가 물러가 곧 주나라에 거처하고 공에게 명하여 뒤에 남아 머물러서 낙읍을 다스리게 함이라. 대개 낙읍을 지은 것은 주공이 본래 성왕이 천도하여 천하의 가운데에 거처하게 하고자 한 것이거늘 성왕의 뜻은 호경을 버려두고 조종의 옛터를 폐하지 않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낙읍에서 제사를 올려 정사를 발한 뒤에 곧 주나라로 돌아가 거처하고 주공을 머물게 하여 낙읍을 다스리게 하고자 함이라. 뒤라고 이른 것은 성왕을 앞선 말이니 후세에 유수(留守, 남아서 지킴) 유후(留後, 뒤에 남음)의 뜻과 같음이라. 선유들이 이르기를 백금을 봉하여 노나라의 뒤를 삼았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비서(周書 31편)를 살펴보건대, 동교가 열리지 않은 것은 바로 주공이 동정할 때에 있었으니 백금이 나라에 나아간 것은 대개 이미 오래된지라. 아래 문장(29장)에 주공에게 그 뒤에 남으라고 알렸다고 하니 그 글자의 뜻에 더욱 가히 그 주공이 되고, 백금이 되지 않음을 볼 수 있음이라.

<洛誥19章>
四方이 迪亂커늘 未定于宗禮ㅣ라 亦未克敉公功이로다
사방이 이끌어져 다스려지거늘 공이 높은 이에 대한 예가 정해지지 못하였는지라, 또한 능히 공의 공을 편안히 하지 못하도다.

宗禮는 卽功宗之禮也라 亂은 治也라 四方開治는 公之功也로되 未定功宗之禮라 故로 未能敉公功也라 敉功者는 安定其功之謂니 卽下文命寧者也라

종례(宗禮)는 곧 공이 높은 이의 예라. 난(亂)은 다스림이라. 사방이 열려 다스려짐은 공의 공이로되 공이 높은 이의 예를 정하지 못했으므로 능히 공의 공을 편안히 하지 못함이라. 미공(敉功)은 그 공을 안정하게 함을 이름이니 곧 아래 문장(25장)에 명하여 편안하게 했다는 것이라.

<洛誥20章>
迪將其後하야 監我士師工하야 誕保文武受民하야 亂爲四輔ㅣ어다
그 뒤를 열어 크게 하여 우리 관리들을 살펴 문무께서 받으신 백성들을 크게 보전하여 다스려 사보(사방을 돕는 이)가 될 지어다.

將은 大也라 周公居洛하여 啓大其後하여 使我士師工으로 有所監視하여 大保文武所受於天之民하여 而治爲宗周之四輔也니 漢三輔가 蓋本諸此하니라 今按先言啓大其後하고 而繼以亂爲四輔하니 則命周公留後於洛明矣니라

장(將)은 큼이라. 주공이 낙읍에 거처하여 그 뒤를 열어 크게 하여 우리 관리들로 하여금 살피는 바를 두게 하여 크게 문왕과 무왕이 하늘에서 받은 백성들을 보전하여 다스림이 종주의 사보가 될지니, 한나라의 삼보가 아마도 저 이에서 근거한 듯하니라. 이제 살펴보건대 먼저 그 뒤를 열어 크게 하라고 하고 이어서 다스려 사보가 되라고 하니, 주공이 낙읍에서 유후가 될 것을 명함이 분명하니라.

<洛誥21章>
王曰公定이어든 予往已니 公功을 肅將祗歡하나니 公無困哉어다 我惟無斁其康事하노니 公勿替刑하면 四方이 其世享하리라
왕이 가라사대 공이 머물거든 나는 갈 뿐이니 공의 공을 엄숙히 받들어 공경하고 기뻐하나니 공은 곤궁하게 하지 말지어다. 나는 오직 그 편안히 하는 일을 싫어하지 아니 하노니, 공이 법도를 폐하지 아니하면 사방이 그 세대로 누리리라.

定은 爾雅曰止也라 成王이 欲周公止洛而自歸往宗周라 言周公之功을 人皆肅而將之하고 欽而悅之하니 宜鎭撫洛邑하여 以慰懌人心하고 毋求去以困我也라 我惟無厭其安民之事하니 公勿替所以監我士師工者하면 四方得以世世享公之德也라 吳氏曰前漢書에 兩引公無困哉에 皆以哉作我하니 當以我爲正하니라

정(定)은 『이아』에 그친다고 하니라. 성왕이 주공을 낙읍에 머물게 하고 자기는 종주로 돌아가고자 함이라. 말하기를, ‘주공의 공을 사람들이 다 엄숙히 하여 받들고 공경하며 기뻐하니 마땅히 낙읍을 진무하여 이로써 인심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고, 떠나기를 구하여 나를 곤궁하게 하지 말라. 나는 오직 그 백성들을 편안히 하는 일을 싫어함이 없으니, 공은 나의 관리들을 살피는 것을 폐하지 않는다면 사방이 세세토록 공의 덕을 누리리라’ 하니라. 오씨 가로대 『전한서』에 두 번 ‘公無困哉’를 인용함에 다 哉를 我로 썼으니 마땅히 ‘나’로써 라고 하는 것이 바름이 되니라.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法故創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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