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12, 제5장 ― 오오, Let it be!

ria530 2013. 5. 6. 09:05

도덕경-11, 제5장 ― 오오, Let it be!
5장 ― 오오, Let it be!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天地之間 其猶탁약乎.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수궁 불여수중)

    芻―꼴 추, 짚 추, 狗―개 구, 猶―같을 유, 오히려 유, 탁―풀무 탁, 전대 탁, 약―피리 약, 열쇠 약, 乎―어조사 호, 屈―다할 굴, 굽을 굴, 愈―더할 유, 나을 유, 數―자주 삭, 셈할 수, 窮―궁할 궁, 다할 궁, 궁구할 궁, 守―지킬 수, 막을 수 

     천지(天地)는 인자하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芻狗)처럼 여긴다.
    성인(聖人)은 인자하지 않아서 백성을 추구처럼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마치 풀무나 피리와도 같구나!
    텅 비어 있되 다함이 없고, 움직이면 더욱 나온다.
    긴 말 하면 숨만 차고―!

    < 뜻풀이 >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서, 사랑이 없어서……. 아아, 노자의 이 아름다운 역설(逆說)! 삶과 세상과 인간을 훤히 꿰뚫고 있는 노자의 이 서늘한 눈길! 천지는 사랑이 없어서……아니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천지는 사랑 덩어리이며, 우주는 곧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1서 4:8). 그리하여 하나님에게는 오직 사랑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의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말한다.

왜? 스스로 그러한[自然] 모양의 그 사랑이 너무나 크고 넓고 깊으며 섬세해 차라리 '불인(不仁)'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인(不仁)의 인(仁)……노자는 안다, 차라리 '사랑'이라는 말조차 설 수 없는 천지(天地)의 그 크낙한 사랑을―!①

    ① 이런 역설과 반어(反語) ― 우리의 언어(言語)나 사고(思考)가 가닿을 수 없는 ― 를 노자는 도덕경 곳곳에서 하고 있다. 그 중에 몇 개만 우선 소개하면, 上德不德(큰 덕德은 덕이 아닌 듯하고/38장), 明道若昧(밝은 도道는 마치 어두운 것 같고/41장), 太白若辱(크게 흰 것은 마치 얼룩이 진 것 같고, 혹은 '큰 결백은 마치 욕된 것 같고'로 풀어도 된다/41장), 大成若缺(큰 이룸은 마치 아직 부족한 듯하고/45장), 大直若屈(큰 곧음은 마치 굽은 것 같고/45장), 大巧若拙(큰 정교함은 마치 졸렬한 듯하고/45장), 大辯若訥(크게 말 잘함은 마치 어눌한 것 같고/45장) 등등.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비유와 역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10계명을 내려줄 때의 얘기를 한 번 해보자. 출애굽기 20장1절부터의 말씀.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질투하는 하나님'이라……좋다. 기왕에 이렇게 성경 얘기를 하게 되었으니, 우선 성경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그 바른 이해를 위한 나의 조언(助言)부터 말해 보고 싶다.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해, 다른 많은 경전(經典)과 마찬가지로, 기가 막힌 책이다. 어떻게 인간의 언어(言語)로써 언어이전(言語以前)의 자리, 언어가 가닿을 수 없는 자리를 그토록 분명하고 멋들어지게, 그토록 풍부한 비유와 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 채울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런 깊고도 아름다운 글들이 그렇게,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씌어질 수 있었는지 정말이지 생각할수록 신비롭다. 더구나 이 귀하고 놀라운 책이 우리 가까이, 손만 뻗으면 닿을 자리에 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어라, 크낙한 기쁨이어라!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성경이 성경답게 읽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지나치게 기독교 혹은 가톨릭적 세계 속에서만 이해되고 있고, 너무 일방적으로 그들이 성경 속에서 찾아낸 <그림>과 교리(敎理)가 전부인 양 말해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기독교 혹은 가톨릭의 전유물이 아니며, 오히려 엄밀히 말하면, 성경은 기독교 혹은 가톨릭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그것은 종교 이전(以前)의, 교리 이전의 무엇이다. 성경은 그러한 종교나 교리로 한정되어질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불경(佛經)과 불교(佛敎)에 대해서도 꼭 마찬가지로 말해질 수 있다.
    나는 앞으로 이 도덕경 풀이를 통해 가능한 한 자주 성경을 인용하여 기독교나 가톨릭의 <그림>으로 채색되지 않은 성경 본래의 진의(眞義)를 많이 캐내어 보고 싶다.

    '질투하는 하나님'이라……사실 나는 성경에서 이 말씀만큼 하나님의 그 크시고 한량없는 사랑을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싶다. 하나님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님 자신을 가질 때 뿐이며, 그 외의 어떠한 것도 <진정으로>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토록 애틋하게 사람들이 오직 당신 자신만을 바라기를 원하며, 또한 그토록 간절하게 당신 자신을 사람들에게 내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아, 인간은 오직 하나님을 얻을 때에만 비로소 행복하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란 곧 진리(眞理)이며, 사랑이며, 도(道)이며, 불법(佛法)이며, 진아(眞我) ― 진정한 나 곧 '참나' ― 의 다른 이름(名)인 것을!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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