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는 인자하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芻狗)처럼 여긴다. 여기에서 추구(芻狗)라는 것은 '풀이나 지푸라기로 엮어 만든 개'라는 뜻인데, 고대 중국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도구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제사를 지낼 때 나쁜 귀신이나 기운이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풀이나 지푸라기로 개를 만들어 옆에 세워 두었다가, 제사가 끝나면 곧바로 버리거나 태워버리는 습속이 있었다. 즉, 필요할 땐 만들어 쓰다가 그 소용이 다하면 미련없이 버려서 조금도 아까워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까 노자는, 때가 되면 봄이 오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새가 알을 깨고 나오고 그렇게 모든 것이 생겨났다가, 또 때가 되면 그 모든 것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천지의 스스로 그러한[自然] 질서와 조화의 모양을 이와 같은 당시의 제사풍습에 비추어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의 사람이면 누구나 지냈던 제사, 그래서 누구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던 그 너무도 평범한 일상사(日常事) 속에서 이토록 깊은 도(道)의 향기를 바라보는 노자의 눈길이 서늘하다.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은 인자하지 않아서 백성을 추구(芻狗)처럼 여긴다)…… 앞 장(章)에서도 말한 것처럼 노자에게 있어서 '성인(聖人)'이란 단지 삶의 진실 ― 있는 그대로의 것 ― 에 눈 뜬 사람을 가리키는 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천지가 만물을 스스로 그러한[自然] 대로 맡겨두어 '스스로 그러한' 질서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듯이, 성인도 또한 백성들을 그 스스로 그러한[自然] 대로 맡겨두어 각자의 존재의 빛깔대로 각자의 생명의 몫을 한껏 살아가도록 내어버려 둔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내어버려 둘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無爲]' 이 천지와 성인의 모습이 정말이지 노자의 표현처럼 사랑이 없는 듯 ― 불인(不仁)한 듯 ― 보이나, 그 그냥 <내어버려 둠> 속에서 얼마나 그 각각의 존재가 각각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가장 자기답게, 자신만의 생명의 빛을 한껏 살아가도록 해주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가장 완벽한 하모니를 엮어내는 천지의 이 놀랍고도 놀라운 지혜여, 사랑이여―!
그러면 이제부터 잠시 우리의 '관점'을 달리하여 앞의 얘기를 이렇게 한 번 바꿔보자.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라는 말을 단순히 성인과 백성과의 관계로만 읽지 말고 우리 내면의 얘기로 한 번 읽어보자. 그러면 성인은 '나'가 되고, 백성은 '내 안의 백성'이 된다(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천지는 '나'가 되고 만물은 '내 안의 만물'이 된다). 이것은 앞서 3장에서도 말한 '관점의 전환'인데, 이렇게 읽었을 때 이 글은 갑자기 '나' ― 우리 각자 자신 ― 의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이후 81장까지, 아니 모든 경전을 읽을 때에도 유효하다. 그렇게 우리의 눈이 내면으로 향해 있을 때 그 어느 한 순간 문득, 이미 진리가 내게 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예수도 말했다. "바리세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라고.
내 안에도 '백성'들이 참 많은 것이다. 미움, 짜증, 분노, 기쁨, 의심, 게으름, 밴댕이, 불안 등등 온갖 생각과 감정과 느낌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우리는 그 '백성'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노자가 말한 천지(天地)와 성인(聖人)처럼 그렇게 그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自然] 대로 내어버려 두는가? 아니면 끝없이 끊임없이 그것들을 <구별>하고 <분별>하여 어떤 것은 좋다 하여 할 수만 있다면 더욱 더 많이 취하려고 하고, 또 어떤 것은 부족하다 하여 끊임없이 버리려고 하거나 그것을 애써 더 나은 무엇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 '마음'은 그렇듯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상현(尙賢)'을 위하여 끊임없이 무얼 하려 하거나, 또한 그런 모양으로 '내 안의 백성'들을 들볶고 있질 않는가? 오오, Let it be! 그냥 내어버려 두라! 미움이 오면 그냥 그 미움 속에 있으라! 짜증이 오면 그냥 그 짜증을 살며, 불안이 오면 그냥 불안하라!
그리고 기쁨이 오면 그냥 기뻐할 뿐 그것을 부여잡으려 하지 말라. 온 것은 가게 마련이니, 어느 순간 홀연히 기쁨이 내게서 떠나가거든 그것이 그냥 떠나가게 내어버려 두라. 그 어떤 것도 <간섭>하지 말며 그것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라! 그리하여 오직 '현재'를 살 뿐 '현(賢)'하려 하지 말라! 그냥 그렇게 순간 순간을 살라! 아아, 그 하나 하나의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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