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16 제6장 ― 진리에 이르는 문(門)-2

ria530 2013. 5. 6. 09:06

도덕경-15 제6장 ― 진리에 이르는 문(門)-2
① 이 대목에서 꼭 하고 싶은 성경 얘기가 있다. 성경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너무나 유명한 10계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가운데 제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는, 일반적으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더 잘 기억되고 회자(膾炙)되는, 아아 너무나 많은 오해와 불신을 불러일으키는 이 말! 성경 자체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말씀 또한 너무나 일방적으로 종교적인 의미로만 이해되고 해석되기를 강요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조금 다른 각도로 이 말씀을 들여다보자.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 이 말은 곧 '지금' '여기'에서의 매 순간순간의 삶 이외의 다른 것을 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문득 불안이 밀려오면 그냥 불안할 뿐 그것을 불안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바꾸려 하거나 극복하려고 애쓰지 말며(불안 이외의 다른 신 ― 곧 당당함이나 여유로움 등 ― 을 섬기지 말며), 문득 짜증이 찾아오면 그 짜증을 살고(짜증 이외의 다른 것을 구하지 말고), 분노가 오면 그냥 분노할 뿐이며 무기력해지면 그냥 무기력할 뿐, 그리하여 오직 매 순간순간의 '현재'를 살라는 말이다.

그 '현재'를 '불완전'이니 '부족'이니 하고 <판단>하거나 <분별>하여 그것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극복하려는, 그리하여 미래의 '완전'을 위하여 '현재'를 저당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리는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여기, <분별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것 속에 있지, 미래의 보다 완전하고 완벽한 어떤 모습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계신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바로 그 불안과 짜증과 분노와 무기력이 곧 하나님이요 진리 ―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요 색(色)이 곧 공(空) ― 이다! 그러니, 매 순간순간의 그것 이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나 가톨릭에서 말하는, 여호와나 예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성경은 그렇게 <작은> 책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나의 그런 말에 몹시 의아해 하며, "아니, 이 불안한 마음을, 언제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안절부절못하는 이 마음을 견딜 수 없어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서, 정말이지 타는 듯한 마음으로 말씀을 드린 건데, 그냥 불안하라니오? 더구나 불안을 벗어나려는 아무 짓도 하지 말라니오! 그냥 그 불안 속에 있으라니오! 그럼, 저보고 죽으라는 말입니까?"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런 말에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힘 같은 것을 그 선생님은 느끼셨던 모양이다. 그것은 아마 그분 자신이 그동안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자각과 함께 어떤 절망감 같은 것이 내면 깊이 이미 와있었기 때문에 나의 그런 말들이 가슴으로 들려왔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곤 마치 무언가에 한 방 얻어맞은 듯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는데,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삶은 완전히 바뀐다. 말하자면, 끝없는 '갈증'과 '메마름'과 '추구'의 옛 사람은 죽고, 자유롭고 행복하며 진실로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새 사람이 된 것인데, 아아 그분이 대구 도덕경 모임에 나오셔서 들려주고 보여주신 '변화된 삶'의 얘기들은 얼마나 주옥같고 눈부시던지!

    '변화' 이전(以前)에는 하루 하루가 지겹고, 그래서 산다는 것 자체가 한없이 힘겨웠으며, 더욱이 어느 날엔가는 문득 터럭만큼의 변화도 없는 자신의 매일 매일의 일과(日課) ―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똑같고, 일어나서 용변보고 세수하고 밥먹고 하는 순서와 소요시간이 똑같으며, 출근길이 똑같고, 만나는 아이들이 똑같고, 해야 할 일들이 똑같고, 퇴근시간과 그 이후의 일들마저 똑같은데, 아아 그 똑같은 일들을 내일도, 모레도, 또 그 다음 날에도 계속해야 한다는 ― 를 자각하고는 숨마저 막혀오는 고통으로 괴로워했었는데, '변화' 이후(以後)에는 매일 매일의 삶은 전과 다름없이 똑같건만, 희한하게도 그 똑같은 일상(日常) 속에서 전혀 새롭고도 신명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먹고 출근할 때까지의 시간과 순서와 가는 길은 똑같은데, '이전(以前)'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며, "또 가야 하나……이 긴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야 하나……?"라고 했다면, '이후(以後)'에는 "아,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내가 이렇게 잠을 자고, 이 아침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이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잠이라는 건 또 얼마나 신비로우며, 이 하루 동안에 또 무슨 일이 내 앞에 펼쳐질까?"라며, 눈뜰 때부터 감동하며 설레는 기대로써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세수하다 말고 문득 대야에 담긴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 이 물! 이 빛깔과 이 차가움과 이 질감(質感)! 이런 것이 여기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가?"라며 스스로 전율하는가 하면, 어제와 똑같은 출근길이 그렇게도 새롭고, 마치 처음인 듯 눈부시기까지 하더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무회의 등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느 새 당당하고 분명하게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하기도 하며 ― 이전에는 끊임없이 다른 선생님들을 의식하며 그렇게도 주눅들고 자신없어 하던 그 시간이었는데! ― 또 어느 날엔가부터는 그렇게도 버겁던 아이들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만 보여, "아니, 내가 이렇게도 학생들을 사랑했던가……?"라며 스스로 북받쳐 오르는 감동에 젖기도 했단다. 그러니 얼마나 '살 맛'이 나겠는가?

얼마나 하루 하루가 재미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살아있음의 모든 기쁨과 환희가, 그분이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어하던 '불안'과의 단 한 번의 진정한 맞닥뜨림으로 인해 가능해진 것이다. 그 한 번의 진정한 맞닥뜨림 혹은 받아들임 ― 이것이 곧 무위(無爲)이며, 또한 '여성적 수동성[玄牝]'이다 ― 이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정말이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불안'이라는 번뇌가 곧 보리(菩提)이기 때문이다.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현묘한 암컷의 문, 이를 일컬어 천지의 뿌리라 한다)……
그렇게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될 때[無爲], 그리하여 그 '여성적 수동성[玄牝之門]' 속에서 오직 매 순간 순간의 '현재'만 있게 될 때, 그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늘 우리와 함께 했으되, 단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질 못하는 우리의 '마음' 때문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아아 온갖 생명력으로 가득찬 <새로운> 세계가 그때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나'의 안과 밖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긍정됨으로써 비롯되는 엄청난 환희와 평화의 세계가!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이사야 65:17∼18) 아멘!

    綿綿若存 用之不勤
(면면히 이어져 있는 듯 하니,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는다)……
이때 면면약존(綿綿若存)이라 하면 우리는 대뜸 '아주 오랜 옛적부터'나 '태초'를 연상하게 되지만, 그래서 도(道)라는 것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아니, 도는 그렇게 '시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다. 도의 시점(時點)은 언제나 '현재'이다. 그래서 이 면면약존(綿綿若存)을 그렇게 이해하지 말고, 우리의 이 '오늘'의 삶을 생각해 보자.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나아가 꿈속에서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과 느낌들이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오는가! 그런데 그 하나 하나가 분별(分別)하지 않고 간택(揀擇)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면 다 보리(菩提)요 도(道)이니, 그러므로 아무리 그것을 써도 피곤치 않고 다함도 없다는 것이다(用之不勤). (이렇게 읽으니 이 문장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다가오는가!)

    그러니 보라, 그렇게 '한 마음' 내려놓고 살아가게 된 이 '나'와 '삶'은 얼마나 충만한 생명력으로 가득한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의, 이 너무나 평범한 일상(日常)들이 얼마나 새롭고 눈부신지! 살아 있음이 얼마나 신비롭고 오묘한지! 배고프면 밥 먹고 자고 싶으면 잠을 자는 이 낱낱의 움직임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지!

때로 짜증내고 때로 미워하며, 슬퍼하기도 하고 살포시 미소짓기도 하다가 때로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는, 아아 아뜩할 만큼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온갖 감정들로 가득한 이 '나'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대견한지! 뿐만 아니라 저 숨이 컥 막힐 것 같은, 그래서 문득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하늘은 또 어떻고! 시시로 때때로 뜰 앞에 내려와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먹고는 무슨 급한 일이 생각난 듯 후두둑 날아가 버리는 저 이쁜디 이쁜 참새들은 또 어떻고! 저 산은! 저 강은! 저 바람은! 온갖 생명들로 가득한 이 땅은!

    아아, 도(道)가 어디에 있느냐고? 진리(眞理)가 어디에 있느냐고……?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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