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17 제7장 ― 죽어야 진정 살리라

ria530 2013. 5. 6. 09:06

도덕경-17 제7장 ― 죽어야 진정 살리라
7장 ― 죽어야 진정 살리라

    天長地久. (천장지구)
    天地所以能長且久者, (천지소이능장차구자)
    以其不自生, (이기불자생)
    故能長生. (고능장생)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外其身而身存. (외기신이신존)
    非以其無私耶. (비이기무사야)
    故能成其私. (고능성기사)

    久―오랠 구, 且―또 차, 우선 차, 耶―그런가 야

     천지(天地)는 장구[영원]하다.
    천지가 능히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능히 오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그 몸을 뒤로 하되 오히려 그 몸이 앞서고
    그 몸을 돌보지 않되 오히려 그 몸을 보존한다.
    이는 그 사(私)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私)도 이룬다.

    < 뜻풀이 >
    햐―! 이 장(章)에도 노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삶의 <지혜>가 가득하구나! 노자(老子)는 참 희한하다. 어쩌면 그렇게도 삶과 인간의 진실(眞實)을 훤히 꿰뚫고 있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그 진실들을 그토록 아름다운 언어와 넘치는 역설(逆說)과 반어(反語)로써 그토록 분명하게, 남김없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지! 아, 어쩌면 그렇게도 시적(詩的)일 수 있는지―! 노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밀려오는 감탄과 시원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리고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가 애틋하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진실>들이 언제나 우리의 생각이나 기대 혹은 상식(常識)과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렇기는커녕 정반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논어(論語)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때에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었다. "天理人欲之間每相反而已矣(하늘의 이치와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는 매양 서로 반대될 뿐이다.)" 이는 논어 자로편(子路篇) 가운데 "子曰 君子는 易事而難說也니 說之不爾면 不說也요 及其使人也하여는 器之니라. 小人은 難事而易說也니 說之雖不爾라도 說也요 及其使人也하여는 求備焉이니라(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君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뻐하게 하기는 어렵나니, 기뻐하게 하기를 道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않으며, 사람을 부림에 있어서는 (그 사람의) 그릇에 따라 한다.

小人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뻐하게 하기는 쉽나니, 기뻐하게 하기를 비록 道에 맞지 않게 하더라도 기뻐하며, 사람을 부림에 있어서는 (모든 능력을) 구비하기를 요구한다.)"라는 본문(本文)의 주(註)에 나오는 말인데, 너무나 맞는 말이다 싶으면서도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팠었다. 아, 사람들은 ― 또한 우리의 사고(思考)는 ― 진실(眞實, 참된 실재)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진실을 찾고 있다!

    예수의 말씀은 더욱 애틋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라고 하고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한복음 3:11∼12)라고 함에 이르러서는―! 아,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보여 자꾸만 그리로 들어가고자 하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아예 문 같지도 않게 보이니, 정녕 이를 어찌 하랴!

    그렇다. 삶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참된 것이랄까, 영원한 것, 변치않는 것, 혹은 자유(自由)랄까, 진리(眞理)라고 말해질 수 있는 무엇이 삶 속에는 분명코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자신이 이미 그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그것 ― I am That ― 이면서도 그러한 줄을 알지 못하기에, 안타깝게도 헛되이 <그것>을 찾아다니고, 헛되이 <그것>이 되려하면서, 아아, '누리는 자'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찾고 추구하는 자'의 메마름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숨가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잠시 우리의 '생각[思考]'과 '앎'을 내려놓고, 노자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에 가만히 귀기울여 보자. 정녕 단 한 순간만이라도 그렇게 '나'를 내려놓아 보자.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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