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 이대로가 이미 진리라니! 아니 그러고 보니 이젠 이 말도 합당치가 않구나! '완전'이니 '진리'니 하는 이런 말도 성립되지가 않는구나! 여긴 그 어떤 이름도 붙여질 수 없는 자기가 아닌가! 그냥 있는 그대로일 뿐, 아무것도 아니질 않는가! 아아 이럴 수가! 언어이전(言語以前)의 세계는 무언가, 큰 때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그 깨달음 속에서나 나타나는 무엇이 아니라, 깨달음과는 무관한 깨달음과 수행과 체엄 이전의 지금 이대로가 아닌가! 그냥 어쩔 수 없이 이름하여 번뇌요 이름하여 보리(菩提)였지 번뇌도 보리도 아닌, 중생도 부처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가 아닌가! 아아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였다! 새로이 깨달을 무엇도 얻을 무었도 없는 .......!"
이것은 <마침내 모든 방향에 종지부를 찍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94년 10월에 쓴 나의 구도기(求道記)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렇게 나는 '나(自我)'와 '삶'과 '인간의 길'과 '참(眞理)'에 대하여 - 이 모두는 결국 같은 말이지만 -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나이 그 오랜 갈증과 의문도 끝이 났으며, 비로소 내 영혼에는 쉼이, 내 삶 속에는 평화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밝아진 눈'으로 알게 된 진실(眞實)은 이랬다-나는 단 한 순간도 놓지지 않는 완전한 '지켜봄(觀)'속에서 깨달음이랄까. 도랄까. 인생의 궁극적의 답(答) 같은 것을 구했지만 사실은 한 순간도 놓지지 않고 지켜보려 하는, 바로 그 놈이 미망(迷妄)이요, 허구(虛構)였으며, 바로 그 놈이 분별심(分別沈)이었던 것이다.어찌된 영문인진 모르지만 어느 순간 내 안에서 그것(分別心)이 문득 사라져 벼렸고, 그러고 나니 갑자기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토록 끊임없이 솟구쳐 나와 나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던 망상과 잡생각은 여전했으나, 그것이 '망상'이라고도 '잡생각'이라고도 여겨지지 않아 거기에 아무런 걸림이 없었고 언제나 어느 때나 목격할 수 밖에 없어 늘 입술이 타듯하던 나의 '부족함'과 '못남'과 '결핍'을 증거해 주던 내 안의 많은 것들도 그냥 그 모두가 다 나인 것을, 왜 그동안 그것을 그토록 못견뎌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식욕(食慾)과 성욕(性慾)과 수면욕(睡眠慾)도 나의 '자기완성'을 가로막는 더럽고 추한 극복해야 할 욕망이 아니라, 내 삶을 한층 즐겁고 재미있고 풍요롭게 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전과 다름없는 그대로의 나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건만, 그런 나를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하고 <판단>하던 그 한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가 언제나처럼 여기 이렇게 그냥 존재할 뿐이었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식욕 성욕 수면욕을 가졌고, 잡생각이든 망상이든 번뇌(煩惱)든 온갖 것들이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언제나 죽 끓듯 하며, 기쁨이나 노여움, 슬픔, 근심, 불안, 두려움, 사랑, 미움, 욕심 등등의 온갖 감정들이, 시시로 변화를 거듭하는 이 있는 그대로 의 '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나'를 부족하고 못난 중생(衆生)이라느니, 그 '나'안에 있는 식욕이나 성욕 수면욕과 분노 게으름 미움 등등을 떨쳐버리거나 극복해야 할 번뇌라고 <판단>하거나, <규정>해 버리는 바로 그 놈, 그리하여'나'를 있지도 않는 '완전'을 향해 끝없이 내모는 바로 그 놈-이름하여 분별심(分別心)- 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따라서 그 '한 생각'이 내려지니 도무지 구제할 길 없는 중생(衆生)이라 여겼던 이 모습 이대로가 부처요, 너무 많고 아득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던 번뇌가 그대로 보리(菩提)였으며, 주체할 길없이 솟구치던 분노와 슬픔이 그대로 여여(如如)함이었다. 그렇게 진실을 알고 나니, 이제 거기엔 중생이랄 것도 없고, 부처랄 것도 없었으며, 번뇌랄 것도, 보리랄 것도, '부족'이랄 것도, '완전'이랄 것도, 심지어 도(道)니, 진리니, 여여(如如)함이니, 깨달음이니랄 것도 없었다. 그냥 단지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아 우리네 삶은 이토록 단순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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