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스크랩] 도덕경-48 제14장 구체적인 너무나 구체적인-6

ria530 2013. 5. 6. 09:16

도덕경-48 제14장 구체적인 너무나 구체적인-6
그래서 나는 이 장의 제목을 <구체적인 너무나 구체적인>이라고 명명(命名)해 보았다. 그런데 이 장의 어디를 보아도 <구체적인> 문장이나 표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일일까?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는 .....'이라고 노자가 도를 말하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보아도 보이지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는 ....'어떤 무엇을 따로이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도는 깊은 명상(冥想)상태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무엇도 아니다. 도는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요. 어떤 특정의 상태나 단계에서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는 커녕 道는 너무나 평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러한 '잡히지 않는'표현이어떻게 <구체적>일까?

도(道)- 하나님 진리(眞理) 참나(진아) 불법(불법)-는 대상화 되어 있는 무엇이 아니다. 도는'나'와 분리(분리)되어 '나' 바깥에 있는 어떤 대상(대상)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나'와 분리된 어떤 대상이라면  우리는 분명히 그것을 감각하거나 사고(사고)-혹은 마음(심)-로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도는 '대상(대상)'이 아니며 '나'와 분리되어 이씾도 않기에 우리는 그것을 따로이 볼수도 들을 수도 잡을 수도 엇으며 사고(마음)로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는 그와 같이 감각과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영역이다.

나의 경우를 보자.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도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道(께달음)을 구했으며, 진리를 찾았고, 그것을 얻어 마침내 자유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도 정말 道가 따로이 있는 줄 알았고, 참나(眞我)가 지금의 이 부족하고 못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 거룩한 자리에 닿으면서 수 없이 많은 노력과 절제와 수행을 해야하고 , 또한 사그라들지 않는 의지를 언제나 불태워야만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모두는 나의 무지(無知)요 착각이었다. 건너가 닿아야 할 '저기(彼岸)라는 게 아예 없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문득 구(求)하는 마음-중생과 부처를 나누고 '여기(此岸)'와 저기(彼岸)'를 나누었으며, 번뇌와 보리를 나눈 바로 그 분별심(分別心)-이 사라지고 나니, 모든 것은 다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일 뿐이었다.그러고 나니 짜증이 곧 道도 분노가 곧 진리였으며, 게으름이 곧 보리(菩提)였다! 탐진치(貪瞋痴)가 그대로 여여(如如)함이었으며, 미칠 것 같던 번뇌와 망상(妄想)이 그대로 부처였다! 아아 우리네 삶 우리네 일상(日常),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안(內)과 밖(外) 그 어디, 그 어느 한 순간도 道 아님이 없었다!

그러니 道란 얼마나 <구체적>인가! 우리가 지금 현재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때로 짜증내고,  때로 분노하며, 때로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모두가 다 道요, 어느 하나 진리 아님이 없으며, 이 모습 이대로가 부처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미 깨달아 있다! 그러니 道란 얼마나 <구체적>인가? 우리가 매일 매순간 경험하고 있는 이 모두가 다 道이니 말이다. 道란 얼마나 평범한가?

물론 이 말 속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가 곧 길(道)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니, 그것을 단지 <머리로만 듣고는 자기 자신과 '삶'을 경솔히 여겨 함부로 살면서 도 '이것이 다 道인데 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렇게 아는 것>과 <그 자체가 되는것>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나의 이 말을<진실로>알게 되면,그땐 존재의 비약(飛躍)이 있게 된다.자기 자신과 '삶'을 함부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가슴 벅찬 자유와 사랑과 행복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내면의 평화가,진정한 겸손이 언제나 내 삶 속에 넘실대며 출렁이개 되는 것이다. 축복이어라!

視之不見名曰夷, 聽之不聞名曰希 搏之不得名曰微 此三者不可致詰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하며, 잡아도 잡히지 않는것을 이름하여 미(微)라하나니, 이 세 가지는 어떻게 자세히 캐물어 밝힐 수 없다..... 노자의 이 말은 단지 道라는 것이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단순한 표현들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출처 : 전주향교(全州鄕校)
글쓴이 : 鶴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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