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公孫丑問曰 夫子 當路於齊하시면 管仲晏子之功을 可復許乎잇가 孟子曰 子誠齊人也로다 知管仲晏子而已矣온여
공손추가 물어 가로대 “선생께서 제나라에서 요직을 담당하시면 관중과 안자의 공적을 다시 기약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하니,
맹자 가로대 “자네는 진실로 제나라 사람이로다. 관중과 안자만을 알뿐이온져! ” 하니라. |
<해설>
맹자가 자기네 나라의 역사속 인물만 아는 공손추가 견문이 좁고 고루함을 책망하고 있다. |
▲ 公孫丑는 孟子弟子니 齊人也라. 當路는 居要地也라. 管仲은 齊大夫니 名은 夷吾라. 相桓公하야 覇諸侯라. 許는 猶期也라. 孟子 未嘗得政하시니 丑 蓋設辭以問也라.
공손추는 맹자 제자이니 제나라 사람이라. 당로(當路)는 중요한 자리에 거함이라. 관중은 제나라 대부이니 이름은 이오라.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권을 잡게 했느니라. 허(許)는 기약하다는 뜻이라. 맹자가 일찍이 정사를 펼치지 못하였기에 공손추가 (대개) 말을 가정해서 (이로써) 물음이라.
▲ 齊人이 但知其國에 有二子而已요 不復知有聖賢之事라
제나라 사람이 다만 그 나라에 두 사람만이 있음을 알 뿐이오, (다시) 성현의 일이 있음은 알지 못함이라.
○ 或이 問乎曾西 曰 吾子 與子路孰賢고 曾西 蹵然曰 吾先子之所畏也니라 曰 然則吾子 與管仲孰賢고 曾西 艴然不悅曰 爾何曾比予於管仲고 管仲이 得君이 如彼其專也며 行乎國政이 如彼其久也로대 功烈이 如彼其卑也하니 爾何曾比予於是오 하니라
어떤 사람이 증서에게 물어 가로대 “우리 선생님(증서)이 자로와 더불어 누가 더 훌륭합니까? ” 하니, 증서가 찡그리며 가로대 “우리 할아버지(증자)도 (자로를) 경외하신 바이라.” 하니라.
(어떤 사람이 또) 가로대 “그렇다면 우리 선생님이 관중과 더불어 누가 더 훌륭합니까?” 하니, 증서가 발끈하여 화내며 가로대 “네 어찌 (곧) 나를 관중에게 비교하는가? 관중이 인군의 신임을 얻음이 저와 같이 오로지 했으며(전권을 흔들었으며) 국정을 행함이 저와 같이 오래했어도 공렬(공적)이 저와 같이 낮은데, 네 어찌 (곧) 나를 이(관중)에 비유하는가!” 하니라.
蹵 : 찰 축, 밟을 축, 蹴과 같음. 여기서는 蹙(찡그릴 축)과 같은 뜻. 蹵然 : 삼가는 모양 또는 불안한 모양 艴 : 발끈할 불(발) 曾 : 일찍이 곧 증 |
▲ 孟子 引曾西與或人問答如此라. 曾西는 曾子之孫이라. 蹵은 不安貌라. 吾子는 曾子也라. 艴은 怒色也라. 曾之言은 則也라. 烈은 猶光也라. 桓公이 獨任管仲四十餘年하니 是專且久也로대 管仲이 不知王道而行覇術이라. 故로 言功烈之卑也라.
맹자가 증서와 혹인이 묻고 답한 말을 인용함이 이와 같음이라. 증서는 증자의 손자라. 축(蹵)은 불안한 모양이라. 선자(先子)는 증자라. 불(艴)은 성내는 빛이라. 증(曾)은 ‘곧 즉’을 말함이라. 열(烈)은 빛남과 같음이라. 환공이 홀로 관중에게 40여년을 맡겼으니 이것이 오로지 함이고 또 오래 함이로대 관중이 왕도를 알지 못하고 패권의 술수를 행함이라. 이에 (맹자가) 공렬이 낮다고 말함이라.
▲ 楊氏曰 孔子 言子路之才曰千乘之國에 可使治其賦也어니와 使其見於施爲如是而已오. 其於九合諸侯하고 一正天下에는 固有所不逮也라 하시니 然則曾西 推尊子路如此하고 而羞比管仲者는 何哉오. 譬之御者컨대 子路則範我馳驅而不獲者也오. 管仲之功이 詭遇而獲禽이라. 曾西는 仲尼之徒也라 故로 不道管仲之事니라. (詭 : 속일 궤)
양씨 가로대 공자가 자로의 재주를 말씀해 가라사대 천승의 나라에 그로 하여금 부(賦=兵士)를 다스리게 할 만하다 하셨으니 그 베풀어 하는 것이 이와 같을 뿐이오. 그 제후를 규(九=糾)합하고 한번 천하를 바로 잡는데는 진실로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 하시니, 그렇다면 증서가 자로를 추존함이 이와 같고, 관중에게 비교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어째서인고? 말 모는 사람에게 비유컨대 자로는 (곧) (나의) 말 모는 법도에 따름으로써 (짐승을) 잡지 못한 것이고, 관중의 공은 속임수를 써서 짐승을 잡음이라. 증서는 공자의 무리라. 이에 관중의 일을 언급하지 아니함이라.
○ 曰 管仲은 曾西之所不爲也어늘 而子 爲我願之乎아
(맹자) 가로대 “관중의 일에 대해서는 증서도 (거론)하지 않은 바이거늘 그대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한단 말인가?” 하니라. |
▲ 曰은 孟子言也라. 願은 望也라.
왈은 맹자의 말씀이라. 원은 바람이라.
○ 曰 管仲은 以其君覇하고 晏子는 以其君顯하니 管仲晏子는 猶不足爲與잇가 曰 以齊로 王이 由反手也니라
(공손추) 가로대 “관중은 그 인군으로써 패권을 잡게 하고, 안자는 그 인군으로써 (세상에 명성이) 드러나게 했는데도 관중과 안자가 (그렇게 하고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하니, (맹자) 가로대 “제나라로써 왕노릇하는 것이 손을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쉬우니라)” 하니라. |
▲ 顯은 顯名也라. 反手는 言易也라.
현(顯)은 이름을 나타냄이라. 반수는 쉬움을 말함이라.
○ 曰 若是則弟子之惑이 滋甚케이다 且以文王之德으로 百年而後崩하샤대 猶未洽於天下어시늘 武王周公이 繼之然後에 大行하니 今言王若易然하시니 則文王은 不足法與잇가
(공손추) 가로대 “이와 같다면 저의(제자의) 의혹이 아주 심하나이다. 또한 문왕의 덕으로써(말하건대) (문왕은) 백년을 사신 뒤에 돌아가셨으되 오히려 (그 덕이) 천하에 미흡하시거늘 (이에) 무왕과 주공이 계승한 연후에야 크게 행해졌으니 이제 (선생께서) 왕노릇하는 것이 쉽다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문왕도 족히 본받을 만하지 못한것입니까?” 하니라. |
▲ 滋는 益也라. 文王이 九十七而崩하시니 言百年은 擧成數也라. 文王이 三分天下에 才有其二하시고 武王이 克商에 乃有天下하시며 周公이 相成王하사 制禮作樂然後에 敎化大行이라.
자(滋)는 더함이라. 문왕이 97세에 돌아가시니 백년은 완된 수를 들어 말함이라. 문왕이 천하를 삼분함에 그 둘을 두시고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는 이에 천하를 두셨으며 주공이 성왕을 도와 예(주례)를 짓고 음악을 지은 후에야 교화가 크게 행해졌음이라.
○ 曰 文王은 何可當也시리오 由湯으로 至於武丁히 賢聖之君이 六七이 作하야 天下 歸殷이 久矣니 久則難變也라 武丁이 朝諸侯有天下호대 猶運之掌也하시니 紂之去武丁이 未久也라
其故家遺俗과 流風善政이 猶有存者하며 又有微子微仲王子比干箕子膠鬲이 皆賢人也라 相與輔相之故로 久而後에 失之也하니 尺地도 莫非其有也며 一民도 莫非其臣也어늘 然而文王이 猶方百里起하시니 是以難也니라
(맹자) 가로대 “(내가) 문왕을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 탕임금으로부터 무정에 이르기까지 훌륭하고 성스런 인군이 여섯, 일곱이 일어나서 천하가 은나라로 돌아감이 오래되었으니 오래한즉 변하기 어려움이라. 무정이 제후들에게 조회받고 천하를 두는데 손바닥을 운전하는 것같이 하였으며 주(紂)왕은 무정과의 거리가 오래되지 않았음이라.
(그) 옛 가문과 남은 풍속과 이어져온 기풍과 선정(善政)이 여전히 보존함이 있으며 또한 미자, 미중, 왕자 비간, 기자, 교격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 서로 더불어 주왕을 보좌한 고로 (주왕이) 오랜 후에야 망하니, 한 자 땅도 그의 소유가 아님이 없었으며, 한 사람의 백성도 그의 신하가 아님이 없었거늘 그러하니 문왕이 오직 (사방) 백리의 땅만으로 일어나셨으니 이로써 어려우셨음이라. |
▲ 當은 猶敵也라. 商自成湯으로 至于武丁이 中間에 太甲太戊祖乙盤庚이 皆賢聖之君이라 作은 起也라. 自武丁至紂이 凡七世라. 故家는 舊臣之家也라.
당(當)은 맞서다는 뜻이라. 상나라가 탕임금으로부터 무정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태갑(4대), 태무(9대), 조을(13대), 반경(19대)이 모두 현군이고 성군이라. 작은 일어남이라. 무정으로부터 주까지는 무릇 7세라. 고가는 옛 신하의 가문이라.
○ 齊人이 有言曰 雖有知慧나 不如乘勢며 雖有鎡基나 不如待時라 하니 今時則易然也니라
(맹자 가로대) “제나라 사람이 말에 이르기를 가로대 ‘비록 지혜가 있으나 세를 타는 것만 같지 못하며 비록 농기구가 있으나 때를 기다림만 같지 못하다하니’ 지금의 때는 쉬우니라.” 하니라.(鎡:호미자) |
▲ 鎡基는 田器也ㅣ라 時는 謂耕種之時라
자기는 밭농사짓는 농기구라. 때는 갈고 심는 때를 이름이라.
○ 夏后殷周之盛에 地未有過千里者也하니 而齊 有其地矣며 鷄鳴狗吠 相聞而達乎四境하니 而齊 有其民矣니 地不改辟矣며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라
하후씨와 은나라 주나라가 번성할 적에 땅이 천리를 넘은 자가 있지 아니하였으나 제나라가 그만한 땅을 두고 있으며, 닭 울음과 개짓는 소리가 서로 들려서 (국도로부터) 사방 국경에 도달하니 제나라가 그만한 백성을 두고 있으니, 땅을 더 (고쳐) 넓히지 않으며, 백성을 더(고쳐) 모으지 않더라도 어진 정치를 행하여 왕노릇하면 능히 이를 막을 이가 없으리라. |
▲ 此는 言其勢之易也라. 三代盛時에 王畿不過千里러니 今齊已有之하니 異於文王之百里요 又雞犬之聲이 相聞하야 自國都로 以至于四境하니 言居民稠密也라
이는 그 세(勢)의 쉬움을 말함이라. 삼대(하.은.주)가 번성할 적에 왕이 직접 다스리는 영역이 천리를 넘지 않았거늘 이제 제나라가 이미 그만한 땅을 두고 있으니, 문왕의 백리땅과 다르고, 또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려서 국도로부터 변방에 이르기까지 백성이 많이 살고 있음을 말함이라.
○ 且王者之不作이 未有疏於此時者也하며 民之憔悴於虐政이 未有甚於此時者也하니 飢者에 易爲食이며 渴者에 易爲飮이니라
또한 왕노릇할만한 자가 나오지 않음이 이 때보다 멀리 떨어진 적이 없으며, 백성이 학정에 시달려 초췌하니 이 때보다 더 심한 적이 없었으니, 굶주린 자에게 쉽게 먹게 하고 목마른 자에게 쉽게 마시게 하니라. |
<해설>
제대로 왕노릇하는 자가 없어 백성들이 그동안 학정에 시달려 왔기에, 굶주린 백성에게 먹을 것을 주면 얼른 달게 먹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면 바로 달게 마실 정도이다. 이와 같은 때에 仁政을 행하면 그 성과가 금방 드러나니 정치하기가 이만큼 쉬운 때가 없다는 의미이다. |
▲ 此는 言其時之易也라. 自文武至此 七百餘年이니 異於商之聖賢繼作이요 民苦虐政之甚이 異於紂之猶有善政이라. 易爲飮食은 言飢渴之甚에 不待甘美也라.
이는 그 때의 쉬움을 말함이라. 문왕, 무왕으로부터 이에 이르기까지 7백여년이니 상나라에 聖賢이 이어서 나온 것과 다르고 (또한 지금은) 백성의 학정에 시달림이 심함이 紂왕 때와는 다름이라. 易爲飮食(이위음식)은 굶주림과 목마름이 심함에 감미로운 맛까지 기대하지 않음을 말함이라.
○ 孔子曰 德之流行이 速於置郵而傳命이라 하시니
공자 가라사대 “德이 흘러 행함이 파발로(우편으로) 명을 전하는 것보다 빠르다” 하시니라. |
▲ 置는 驛也요 郵는 馹也니 所以傳命也라. 孟子 引孔子之言如此하니라. (置 驛 郵 馹 : 모두 역마의 뜻)
치(置)는 역(驛)이요 우(郵)도 일(馹)이니 써한 바 命을 전달함이라. 맹자가 공자의 말씀을 이와같이 인용함이라.
○ 當今之時하야 萬乘之國이 行仁政이면 民之悅之 猶解倒懸也리니 故로 事半古之人이오 功必倍之는 惟此時 爲然하니라
이제 때를 당해서 만승의 나라가 仁政을 행하면 백성의 기뻐함이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을 풀어주는 것과 같으리니, 이에 일은 옛 사람의 반만 하고도 공적은 반드시 배가 됨은 오직 이 때가 그러하니라. |
▲ 倒懸은 猶困苦也라. 所施之事는 半於古人하고 而功은 倍於古人은 由時勢易而德行速也라.
거꾸로 매달리는 형벌은(倒懸)은 곤궁하고 고통스러움(困苦)에 비유함이라. 베푸는 바의 일을 옛 사람의 반만 하고도 공적은 옛 사람보다 배가 됨은 때와 형세가 쉽고 덕행은 빠르게 퍼져나가기 때문이라.
<해설>
이 장은 공손추가 문왕은 성인이라도 몇 대에 걸쳐 주나라를 세웠으나, 관중은 당대에 제환공을 패제후로 만들어준 역사적 사례를 비교하면서 문왕의 공적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자, 맹자가 답변한 내용이다. 맹자는 각기의 정치적 상황과 배경이 다르며 또한 패도정치와 왕도정치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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