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년에 반드시 (聖)王노릇할 자가 있어 일어나나니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나는 자가 있느니라. 주나라로부터 내려옴에 칠백여년이니 그 數로써 한즉 지났고 그 때로써 상고한즉 可하니라.” 하니라.
<해설>
하은주 3대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오백년마다 聖王이 나오는데 그 사이에 성왕을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도 나오게 되어 있다. 맹자는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보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맹자가 기뻐하는 빛을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맹자는 반드시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요순으로부터 탕임금에 이른 것과 탕임금으로부터 문왕 무왕에 이르기까지 다 오백여년이오. 성인이 나오심이라. 명세(名世)는 그 사람의 덕업과 들리는 명망이 가히 한 세상에 이름을 내는 자로서 (성인을) 위하여 보좌함을 이름이니 (요순 때의) 고요(법을 맡은 신하)와 직(농업을 맡은 신하)과 설(문서 맡은 신하), (탕임금 때의) 이윤과 내주, (문왕 무왕 때의) 태공망과 산의생 같은 부류이라.
‘그런즉 맹자가 비록 기뻐하지 않음이 있는 것 같으나 실은 일찍이 기뻐하지 않은 것이 아님이라. 대개 성인이 세상을 근심하는 뜻과 하늘을 즐거워하는 정성이 (아울러) 행함이 있고 또한 (서로) 거스르지 않는 것을 이에서 봄’을 말함이라.
<해설>
공자가 광(匡)땅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하셨던 말씀과 비슷한 대목이다. 위(衛)나라에 있는 광땅은 한때 노(魯)나라의 양호(陽虎)란 자가 침입하여 난폭한 일들을 저지른 곳이다. 양호와 얼굴 모습이 비슷한 공자와 일행이 그곳을 지나가니, 광땅 사람들은 양호가 또 침입한 줄 알고 군사를 풀어 공자 일행을 붙잡아 5일간이나 구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공자는 “文王旣沒하시니 文不在玆乎아 天之將喪斯文也신댄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시니 匡人其如予何리오(문왕이 이미 돌아가시니 文이 이에 있지 아니한가? 하늘이 장차 이 文을 잃게 하실댄 후세 사람이 이 文을 더불어 얻지 못할 것이어니와, 하늘이 이 文을 잃게 하지 아니하시니 광사람들이 나를 그 어찌 하리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이 문장에 나오는 ‘斯文’이 이후 유학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 역사적 배경이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聖王이 출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며, 공자의 道를 이은 자신이야말로 성왕을 보필할 賢臣임을 자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