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나아가 맹자를 보고는 가로대 “전일에 보기를 원했으되 가히 얻지 못하다가 모시게 되어서는 조정이 같이하여 심히 기쁘하였는데 이제 또 과인을 버리고 돌아가시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히) (써) 이를 이어서(계속해서)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하니,
맹자가 이미 도가 행해지지 못함으로써 떠나가시면 그 의리가 (가히 써) 다시 머무를 수 없는 것이거늘, 시자가 알지 못한즉 말로 드러내기 어려움이 있느니라. 이에 다만 ‘설사 내가 부귀하고자 할진댄 곧 내가 전일에 卿이 됨에 일찍이 십만의 녹을 사양했으니 이제 이 만종의 궤(饋)를 받으면 이는 내가 비록 부귀하고자 하더라도 (또한)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임을 말씀함이라.
<해설>
‘饋’는 ‘밥통 궤, 먹일 궤’로 여기서는 녹봉의 의미로 쓰였다. 주역 風火家人괘에 ‘在中饋면 貞吉하리라(중궤에 있으면 바르게 해서 길하리라)’가 나온다. ‘中饋’는 여자가 집안에서 하는 모든 일을 상징하는 말로써 이를 밥짓는다는 饋로 대표하여 나타냈다.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가서 집안에서 하던 큰 일중의 하나가 제사를 받들고(奉祭祀) 빈객을 대접하는 일(接賓客)이었다. 그러려면 여자가 음식을 마련해야하는데 이를 밥짓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자 역시 밖에 나가 일하는 이유는 결국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이다. 예로부터 ‘백성은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느니라(民以食爲天)’이라고 했듯이 먹는 것은 귀한 일이다. 이에 ‘밥 식(食)’변에 ‘귀할 귀(貴)’를 합한 글자가 ‘饋’이며 국가로부터 받는 녹을 ‘饋’로 나타냈다.
이는 맹자가 계손의 말을 인용함이라. 계손과 자숙의는 어느 때 사람인지 아지 못하니라. 농단(龍斷)은 뫼언덕이 끊겨 높음이니 뜻이 아랫글에 나타나니라. 대개 자숙의란 자가 일찍이 쓰여지지 않자 그 자식으로 하여금 卿벼슬을 하게 하거늘,
계손이 ‘(그) 이미 이에서 얻지 못했는데도 또 구하여 저에서 얻고자 하니, (이러한 행태가) 아랫글에 나오는 비천한 사내가 농단에 올라가서 한 바와 같은 것’임을 기롱함이라. 맹자가 이를 인용하여 (써) 도가 이미 행해지지 못하는데 다시 그 녹을 받는다면 (써) 그와 다름이 없음을 밝히심이라.
(맹자 가로대) “옛 적에 시장을 세운 것은 (그) 있는 것으로써 (그) 없는 것을 바꾸게 하였는데, 유사(시장을 맡은 관리)는 (세금은 거두지 않고 분쟁만) 다스릴 뿐임이라. (그런데) 비천한 사내가 있더니 반드시 농단을 구해 올라가서 좌우로써 (시장터를) 바라보고는 저자에서 이익이 되는 것을 망라하니(시장의 이익을 독점하니). 사람들이 다 (써) 비천하게 여겼음이라. 이에 (유사가) 쫒아 따라서 세금을 물리니 장사꾼에게 세금을 물림이 이 비천한 사내로부터 비롯되었음이라.” 하니라.
맹자가 농단의 말을 해석함이 이와 같음이라. ‘치지(治之)’는 (그) 다툼이 있는 송사를 다스림을 일컬음이라. 좌우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에 얻고 또 저에 취하고자 함이라. 망(罔)은 망라해서 취함을 이름이라. ‘좇아서 세금을 취함’은 ‘사람이 그 利를 오로지 함을 미워하는 고로 (나아가) 그 세금을 물리니 후세에 이로 인해 드디어 상인에게 세금을 물렸음’을 일컬음이라.
정자 가로대 “제왕이 (써) 맹자에게 대처한 바가 불가하지는 않고, 맹자 또한 나라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본받음을 즐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만 제왕이 실제로 맹자를 높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에) 利로써 맹자를 유혹하고자 함이라. 이에 맹자가 거절하고 받지 아니하심이라.”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