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스크랩] 公孫丑章句下 제13장 해설

ria530 2012. 6. 6. 15:48

<제13장>

孟子 去齊하실새 充虞 路問曰 夫子 若有不豫色然하시이다 前日에 虞 聞諸夫子호니 曰君子는 不怨天하며 不尤人이라 호이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나감에, 충우가 길에서 물어 가로대 “선생님께서 기뻐하지 못하는 빛이 있는 듯 합니다. 전일에 제(우)가 선생님께 듣건대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아니라며 사람을 허물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니라.

 

曰彼一時며 此一時也니라

(맹자) 가로대 “저도 한때며 이도 한때니라.” 며,

 

五百年에 必有王者 興하나니 其間에 必有名世者니라 由周而來로 七百有餘歲矣니 以其數則過矣오 以其時考之則可矣니라

“오백년에 반드시 (聖)王노릇할 자가 있어 일어나나니 그 사이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나는 자가 있느니라. 주나라로부터 내려옴에 칠백여년이니 그 數로써 한즉 지났고 그 때로써 상고한즉 可하니라.” 하니라.

 

 

<해설>

하은주 3대의 역사를 살펴보건대 오백년마다 聖王이 나오는데 그 사이에 성왕을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도 나오게 되어 있다. 맹자는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보고 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맹자가 기뻐하는 빛을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맹자는 반드시 그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다.

 

路問은 於路中問也라. 豫는 悅也라. 尤는 過也라. 此二句는 實孔子之言이니 蓋孟子 嘗稱之以敎人이시니라.

노문(路問)은 길 가운데에서 물음이라. 예(豫)는 기뻐함이라. 우(尤)는 허물이라. 이 두 글귀는 실은 공자의 말씀이니 대개 맹자가 일찍이 이를 일컬어서 (써) 사람을 가르침이라.

 

彼는 前日이오 此는 今日이라.

피(彼)는 전의 날이오, 차(此)는 요즘이 날이라.

 

自堯舜至湯과 自湯至文武가 皆五百餘年而聖人이 出하시니라. 名世는 謂其人德業聞望이 可名於一世者 爲之輔佐니 若皐陶, 稷契, 伊尹, 萊朱, 太公望이 散宜生之屬이라.

요순으로부터 탕임금에 이른 것과 탕임금으로부터 문왕 무왕에 이르기까지 다 오백여년이오. 성인이 나오심이라. 명세(名世)는 그 사람의 덕업과 들리는 명망이 가히 한 세상에 이름을 내는 자로서 (성인을) 위하여 보좌함을 이름이니 (요순 때의) 고요(법을 맡은 신하)와 직(농업을 맡은 신하)과 설(문서 맡은 신하), (탕임금 때의) 이윤과 내주, (문왕 무왕 때의) 태공망과 산의생 같은 부류이라.

 

周는 謂文武之間이오. 數는 謂五百年之期오. 時는 謂亂極思治可以有爲之日이니 於是而不得一有所爲하니 此 孟子所以不能無不豫也니라.

周는 문왕무왕 때를 이름이오, 數는 오백년의 기간을 이름이오, 時는 어지러움이 극하면 다스림을 생각하여 (가히 써) 일을 할 수 있는 때를 이름이나 이때에 하나도 얻어서 하는 바가 있지 아니하니, 이에 맹자가 (써한 바) 기뻐할 수가 없음이라.

 

 

夫天이 未欲平治天下也시니 如欲平治天下진댄 當今之世하야 舍我오 其誰也리오 吾何爲不豫哉리오

(이에 맹자 가로대) “무릇 하늘이 천하를 평치하고자 아니하니 만약 천하를 평치하고자 하실진댄 지금의 세상을 당해서 나를 버리고 그 누구가 하겠는가? 내 어찌하여 기뻐하지 않겠는가?” 하니라.

 

言 當此之時하야 而使我로 不遇於齊하니 是는 天未欲平治天下也라 然이나 天意는 未可知而其具 又在我하니 我何爲不豫哉리오

‘이때를 당해서 나로 하여금 제나라에서 (때를) 만나지 못하니 이는 하늘이 천하를 평치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러나 하늘의 뜻은 가히 알지 못하나 그 도구는 (또) 내게 있으니 내가 어찌해서 기뻐하지 아니하리오.’ 와

 

然則 孟子 雖若有不豫然者나 而實未嘗不豫也라. 蓋聖人憂世之志와 樂天之誠이 有並行而不悖者를 於此에 見矣로다

‘그런즉 맹자가 비록 기뻐하지 않음이 있는 것 같으나 실은 일찍이 기뻐하지 않은 것이 아님이라. 대개 성인이 세상을 근심하는 뜻과 하늘을 즐거워하는 정성이 (아울러) 행함이 있고 또한 (서로) 거스르지 않는 것을 이에서 봄’을 말함이라.

 

 

<해설>

공자가 광(匡)땅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하셨던 말씀과 비슷한 대목이다. 위(衛)나라에 있는 광땅은 한때 노(魯)나라의 양호(陽虎)란 자가 침입하여 난폭한 일들을 저지른 곳이다. 양호와 얼굴 모습이 비슷한 공자와 일행이 그곳을 지나가니, 광땅 사람들은 양호가 또 침입한 줄 알고 군사를 풀어 공자 일행을 붙잡아 5일간이나 구금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공자는 “文王旣沒하시니 文不在玆乎아 天之將喪斯文也신댄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어니와 天之未喪斯文也시니 匡人其如予何리오(문왕이 이미 돌아가시니 文이 이에 있지 아니한가? 하늘이 장차 이 文을 잃게 하실댄 후세 사람이 이 文을 더불어 얻지 못할 것이어니와, 하늘이 이 文을 잃게 하지 아니하시니 광사람들이 나를 그 어찌 하리오)”라는 유명한 말을 하였다.

 

이 문장에 나오는 ‘斯文’이 이후 유학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된 역사적 배경이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聖王이 출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며, 공자의 道를 이은 자신이야말로 성왕을 보필할 賢臣임을 자부하고 있다.

출처 : 家苑 이윤숙의 庚衍學堂(한자와 유학경전)
글쓴이 : 家苑 이윤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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